경계를 허무는 패션 (김송희 칼럼니스트) 첨부이미지 : 22인사이트-패션1.jpg
여자 거 남자 거가 어딨어, 예쁘면 하는 거지.
여자 남자 거가 없어, 패션은. 난 그렇게 생각해.

 MZ 세대의 유행을 따라하는 중년 남성 캐릭터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핫쫓남'(핫한거 쫓는 남자) 지석진은 유튜브에서 절친 김수용과 함께 놀이공원에 간다. 하이틴룩을 입고 놀이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놀이 기구를 타는 것이 젊은 이들 사이에 유행이라고 하자, 교복 대여소에 들른다. 그가 교복 착용 후 체크 리본 타이를 고르자 직원은 ‘여자 거’라고 만류하자, 지석진의 대답이 위와 같았다. “여자 거 남자 거가 어디있어. 예쁘면 하는 거지.” 그가 젠더리스 패션이 유행하는 것을 알고, 위와 같이 답했을리는 없다.

출처=유튜브<지-편한세상>

 

대학가의 예쁜 카페를 방문해 수플레와 파르페를 주문하고, 쟁반을 들고 사진을 찍은 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40대 아저씨 지석진과 김수용은 트렌드를 좇다가 거기서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40대가 훌쩍 넘은 중년 남성이 Z세대의 유행을 따르는 것이 불쾌하기는커녕 귀엽고 유쾌해 보인다. 그들이 나이와 성별의 경계를 떠나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이 끌리는 것을 착용하고 자기 행복을 찾는 데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패션 쪽에서 트렌드라 언급되는 젠더리스 패션을 정의하면 기존에 남성적, 여성적이라 불리던 착장의 편견을 타파하고 성별 구분이 없이 자유로운 의상을 입는 것일테다. 남성이 치마나 다양한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작은 핸드백이나 핑크색 등의 컬러를 선택한다. 그 예시로 주로 제시되는 것이 명품 브랜드들의 패션쇼 사진이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마른 다리를 드러내고 트위드 재킷과 하이힐을 신은 남성 모델이 런웨이를 거침 없이 활보한다.

출처 =얼루어코리아, 세븐틴 민규 인스타그램

젠더리스 패션은 여성 패션보다는 남성 패션에서 두드러 지고, 무엇보다 '런웨이 한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TV나 패션 매거진 밖에서는 일반 남성이 짧은 치마를 입거나 스타킹이나 하이힐을 착용한 것을 자주 보진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옷을 입은 남성이 길을 걷는다면, 사람들이 그를 집요하게 바라보지 않고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을까? 아마도 신기한 듯 돌아보고 동행에게 '저기 봐'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것이다. 그렇게 입은 사람이 다수가 아니라는 소리다.

지금 세대에게 젠더리스란 성별 구분이 없이 몸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하는 바디 포지티브한 것이 아니다. 팬데믹 기간에 SNS에서는 몸을 가혹하게 가꾸어 사진을 찍는 바디 프로필이 유행했다. Z세대가 학교, 회사 등과 같은 단체 활동보다는 개인의 시간과 자율성을 중시하고 자기 주장을 자유롭게 한다는 주장 또한 과거 세대의 편견에 불과하다. 가혹한 특훈을 통해 만들어진 아이돌의 몸은 마르다 못해 앙상한데, 이는 남녀 아이돌을 불문하고 자기 관리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현상이다.

출처=캘빈클라인 웹사이트

바지 포지티브를 위해 젊은 여성들이 와이어 없는 브라렛을 착용하고 스포츠 브라를 착용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몸은 시선 감옥에 갇혀 있다. 마르지 않은 통통한 내 몸 또한 사랑하고 긍정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사회가 규정한 패션이 아닌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젠더리스이고 바디 포지티브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젠더리스한 것은 마른 몸에 대한 추종이고, 몸은 진정 잘 가꾸어졌을 때에나 긍정된다. 나답게 살아도 사람들에게 배척당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때 진정한 바디 포지티브, 젠더리스 패션은 가능할 것이다.

 

글 김송희 (<빅이슈코리아편집장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