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다양성

 

우리가 문화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또는 그것을 어떤 식으로 정의하든 간에, 인간은 문화라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환경─자연환경과 사회적인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이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의 행위에까지 문화의 개념을 적용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인간만이 문화를 가지고 있고 문화적 행위를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모든 행위가 다 문화적 행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본능적이고 생리적인 행위들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것이 표현되는 양식들 또는 생물학적 욕구들이 충족되는 양식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기에 문화의 범주 속에 포함된다.

 

앞에서 살펴본 문화의 개념에서도 어느 정도 분명해졌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문화와 인간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인간은 문화 없이는 살 수 없고, 인간 없는 문화는 존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떤 점에서는 문화란 인간과 환경의 중간에 위치한 매개체라고 말해도 좋겠다. 기술과 도구를 통해서 인간은 외계의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식량자원을 채취해서 우선 먹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며, 사회조직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의 공격과 방어를 원만하게 수행해 내고, 종교와 신앙을 통해 특정의 환경에 대처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이 직면하는 모든 근심, 걱정, 불안, 긴장 등을 제거해 나가고 생을 영위할 수 있다. 이 모두가 문화적 항목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과 문화 간에 긴밀한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말은 특정의 인간 또는 특정의 인간집단(또는 사회)과 특정의 문화형식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진술은 아니다. 인간은 문화라는 수단을 통해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지만, 그 적응수단으로서의 문화는 단지 한 가지의 방법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cultural variation)을 이야기할 수 있고, 인류학의 모든 분야들이 이런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각 사회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상의 문제들을 다른 식으로 해결해 나간다. 물론 여기에는 개인적인 차이도 있지만, 같은 사회 내의 사람들에게는 고도의 규칙성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사회에서는 길에서 친지를 만나면 정열적으로 끌어안고 얼굴을 부비기도 하지만, 일본 사람들같이 정중히 거의 90도의 절을 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느 식의 인사방법도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일본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그런 인사방법을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런 전통이 있는 나라에 태어나서 그것을 학습한 결과에 불과하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면 특정 문화의 사람들은 바로 지금 그가 따르고 있는 그런 문화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한 것이어서, 특정 문화와 특정 인간집단 간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해도 좋겠다. 이것은 해외의 한국인 교포 2세, 3세들이 모국의 관습에 불편을 느끼고 있는 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네들의 관습적인 행동과 태도가 가장 옳은 것이고, 다른 나라의 관습은 비도덕적인 것 또는 비윤리적인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관습을 볼 때 똑같은 식으로 부정적 평가를 내릴지도 모른다.

 

특정의 음식물을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영양학적인 칼로리 함유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의복도 인체를 보호하려는 목적 이상의 것이다. 거의 모든 인간사회에서 특정의 음식물을 꼭 사용해야만 하고 또 어떤 것을 금지해야만 하는 규정, 즉 음식에 대한 금기 또는 터부(taboo)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힌두교도들은 쇠고기를 먹지 않으며, 회교도들은 돼지고기 먹기를 금지하고, 미국 사람들은 개고기와 말고기를 터부로 규정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물고기 중에서도 비늘을 가진 것만을 먹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타스마니아(Tasmanian)족은 비늘을 가진 물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사실상 인간이 소화시킬 수 있는 모든 음식물은 어디에선가 사람들에 의하여 식량으로 소모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모든 먹을 수 있는 동물은 어디에선가 누구에게는 터부로 규정되어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의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착용한 의복에 의하여 다른 사람 또는 다른 계급이나 계층의 사람과 구별되고 있으며, 추운 지방에도 거의 벌거벗고 사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뜨거운 열대지방에서도 옷을 많이 걸쳐 입고 사는 민족도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문화들 간에는 그 어느 것이 더 좋고 옳은 것이며, 또 어떤 것이 더 나쁘다거나 틀린 것이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단순한 예로 우리나라의 부인들이 치마저고리를 입고, 일본의 부인들이 기모노를 입지만, 그중 어느 것도 옳다거나 틀렸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사촌 간의 혼인을 금하는 관습을 가진 우리가 사촌 간에 혼인하는 것을 용인하는 어떤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선진적인 것도, 더 개화된 것도 아니다. 그런 나라에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이에 관련된 다른 문화요소들이 그런 특정의 관습을 허용하게 짜여 있다. 이와 같이 각 사회의 문화 간의 차이는 상대적이다. 그 사회의 문화는 그 사회의 성원들에게는 가치가 있지만 다른 형식의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기이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문화 간의 비교 연구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인류학자들에게는 반드시 이런 문화의 상대성(cultural relativity)을 인정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출처] 문화의 다양성 (문화인류학, 2011. 9. 15.,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