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이라는 세계 (김선오 시인) 첨부이미지 : 김선오.png

오월 한 달을 제주도에서 보내기로 결정한 뒤 SNS에 글을 올렸다. 업무 연락은 다이렉트 메시지나 개인 메신저가 아닌 메일이나 출판사를 통해 달라는 공지였다.
입지가 소박한 신인 작가임에도 SNS에 노출되는 일은 업무상 필수적인 동시에 상당한 피로감을 동반했다. 등단 반 년 만에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약속된 원고 작업을 원활히 해내기 위해 제주에서의 시간 동안만큼은 사적인 연락망을 닫아두고 고갈된 정신적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놀러 오겠다는 친구들의 제안도 만류한 채 조용히 숙소에 틀어박혀 지내리라 다짐했으나, 공지 후 첫 번째로 도착한 메일은 제주도의 한 독립서점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제주의 독립서점 '무명서점' 본점 입구 (출처=미디어제주)

서점의 이름은 무명서점으로 사 년 간 그 자리를 지킨, 제주의 대표적인 독립서점 중 한 곳이었다. 최근 책은선물이라는 분점을 개점하였고, 제주에 머무는 동안 하루쯤 그곳에서 서점지기와 낭독회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동쪽 끝에 위치한 숙소와 서쪽 끝에 위치한 서점 간의 거리는 왕복 다섯 시간가량이었으나……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러리라 답장을 보냈다.

▲제주의 독립책방 <무명서점> 본점 내부 모습 (출처=한산신문)

서점의 이름은 무명서점으로 사 년 간 그 자리를 지킨, 제주의 대표적인 독립서점 중 한 곳이었다. 최근 책은선물이라는 분점을 개점하였고, 제주에 머무는 동안 하루쯤 그곳에서 서점지기와 낭독회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동쪽 끝에 위치한 숙소와 서쪽 끝에 위치한 서점 간의 거리는 왕복 다섯 시간가량이었으나……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러리라 답장을 보냈다.

▲제주 무명서점의 분점 <책은선물> 입구 (제공=무명서점)

 
메일의 발신자가 제주의 대형서점 측이었다면 분명 거절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독립서점, 특히나 다양한 문화적 인프라가 활성화되어 있는 서울 중심지가 아닌 지방에서 운영되는 책방들은 이 땅의 영혼을 한구석 지탱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물론 서울의 엄청난 임대료를 감당하며 운영 중인 독립서점들에도 깊은 존경을 표하고 싶다). 또한 읽는 사람이자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나의 삶 역시 그들에게 일부 빚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출판과 독서에 관심이 있는 소수의 독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독립서점은 이름부터 낯선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매력을 알게 된다면 여행하는 도시의 독립서점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는 국내외를 막론한 대부분의 여행지에서 그곳의 로컬독립서점은 한 번씩 들러보는 편이다. 눈에 들어오는 책들도 몇 권씩 구입하고는 한다.
 
대형서점을 목적지 없는 미로처럼 찾아 헤매는 일도,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쌓아두고 하루 종일 읽는 일도 좋아하지만, 소자본으로 이루어지는 독립서점은 특별한 공간이다. 시류로부터 말 그대로 독립되어 서점 주인의 취향대로 꾸려진 서가를 뒤적거리거나, 서점마다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가늠해본다거나, 가끔 점원으로부터 책 추천을 받는 일도 그곳에서만 가능한 경험이리라.

▲책방지기를 하며 (제공=김선오)

독립서점의 매대에는 세상의 관심으로부터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으나 고유의 영역을 지켜내고 또 개척해가는 책들이 즐비하다. 처음 가는 도시의 골목을 걷다 우연히 독립서점을 마주치면 이곳에도 책을 좋아하고 모으고 또 나누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쁨과 안도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자본의 입맛대로 돌아가는 척박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독립서점은 그 존재만으로도 경제적 논리와는 무관한 어떤 것들이 아직 가능하며 앞으로도 가능할 것이라는 징표처럼 보인다.

▲김선오 시인의 첫 시집<나이트 사커> (출처=무명서점 트위터)

첫 시집을 출간하고 낭독회 등의 행사를 통해 독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던 장소 역시 대부분 독립서점들이었다. 작은 책방들이 갈 곳 없는 작가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해주지 않았다면 훨씬 고독하고 위태롭게 글을 써나가야 했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말이 길어졌으나 아무튼 이처럼 독립서점에 대한 나의 애정은 지대했기에, 그곳에서 불러준다면야 언제든 가서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출처=무명서점 트위터

서점지기로서의 하루는 무난하게 끝이 났다. ‘책은선물은 아름다운 바닷가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토요일이었고, 어버이날이었고, 미세먼지가 짙은 하루였다. 머물렀던 네 시간 동안 단 세 명의 손님이 들러 시집과 에세이, 환경 매거진 등 총 다섯 권의 책을 사 갔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북적거리는 도심의 대형 서점들에 비하면(책을 읽고자 찾아온 그곳의 손님들도 인구 전체에 비하면 소수일 것이다) 소소한 판매 현황이었지만 굳이 이 작은 책방에 들러 책을 구매한 손님들은 나처럼 독립서점들이 지탱하고 있는 것, 그 덕분에 우리가 아직 잃지 않은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임을 알기에 더욱 반가웠다.
 
해 질 녘 즈음 판매를 마감하고 낭독회를 진행했다. 먼 길 버스 타고 찾아오신 독자 분, 서울에서의 낭독회에 이어 두 번째로 와주신 분, 즉석에서 함께해주신 서점의 이웃 분들까지 총 일곱 명이 함께한 소규모 낭독회였다. 서울 밖에서의 첫 낭독회인 동시에 가장 적은 인원이 한 자리에 함께한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처음으로 독자 분들에게 시집의 시들을 함께 읽어주시기를 청했다. 시집을 읽어가는 동안 서서히 밤이 되어갔다. 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각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던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독립서점들이 늘어선 한국의 거리들을 상상한다. 내가 사랑하는 모국어로 된 책이 가득한 작은 공간들. 그 책 속에 깃들어 있을 각자의 이야기들을 상상한다. 서점 안에 들어찬 개성 있는 서가들과, 쌓인 책들이 유리창 속 풍경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 물으면 서점 주인이라 대답하는 미래가 가능해지기를, 더욱 다양하고 아름다운 장소에서 책과 함께하는 순간들이 늘어가기를 바라본다.

코로나 사태 이후 뉴욕이나 런던 같은 대도시의 유서 깊은 독립서점들도 폐업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년 전 포르투에서 들렀던 렐루 서점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저자인 조앤 K. 롤링이 머무르며 작업하던 카페의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고,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호그와트의 움직이는 계단의 모티프가 된 계단이 자리해 있었다. 물론 서점은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할 만큼 인파로 북적거렸다.
 

 
▲포르투의 유명 서점 ‘렐루 서점’ 전경 (이미지 출처=이지앤북스)

서점이 유명해지려면 그곳에서 최소한 롤링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작가가 탄생해야 하는 것인가. 그 생각에 이르니 갑자기 아득해진다. 위의 희망 사항들이 다소 거창한 것이라면, 다만 현재의 어려움을 견디고 있는 서점들이 자신의 공간을 잃지 않을 수 있기를,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그곳에 닿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곳이 지키고 있는 것들을 우리가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도록.



김선오

2020년 시집 <나이트 사커>를 통해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