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속 전통놀이의 재조명 (전영숙 대표) 첨부이미지 : 그림5.png

대한민국이 만들고 전 세계가 시청한 한국 놀이 콘텐츠가 글로벌 대중문화의 중심에 서는 시대가 열렸다. 바로 넷플릭스드라마<오징어 게임> 덕분이다.
이 드라마는 각종 패러디열풍과 드라마 속 놀이 따라 하기, 파리 체험관 줄서기 진풍경 등 글로벌 문화 현상을 일으키며 영어가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TV드라마 최초로 미국 대중문화계의 중심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넷플릭스 흥행 역사를 새롭게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스틸컷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누구나 한 번쯤 어릴 적 해보았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딱지치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달고나 뽑기’, ‘오징어놀이’ 등과 같은 전래놀이를 드라마에 소환함으로써 공감과 재미를 더했다.
서바이벌 데스 게임이라는 무거운 장르임에도 전래놀이라는 단순한 놀이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국적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전 세계인들의 유년기 추억 놀이의 향수를 자극한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스틸컷 ⓒ넷플릭스

 

그렇다면 ‘오징어 게임’ 속에 등장하는 놀이는 모두 우리나라 전래놀이일까? 궁금증을 유발한다.
 
‘오징어 게임’이 방영되고나서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신(神)이 말하는 대로’등에 대한 표절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일본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 또한 ‘오징어 게임’과 유사한 형태로 예고 없이 시작된 데스 게임으로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 스토리로 구성되었다. 그들이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여지없이 목이 잘려 나감과 동시에 머리가 피구슬로 터지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데스 게임의 시작 ‘다루마 상가고론다(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 오뚝이가 넘어졌습니다.)’는 ‘오징어 게임’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매우 흡사한 형식으로 진행된다. ‘다루마 상가고론다(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 오뚝이가 넘어졌습니다.)’ 라는 말은 11세기 가인(歌人) 후지와라 데이카(藤原定家)가 웃기는 말로 재미 삼아 노래한 것이다. 그것이 대대로 내려와서 아이들의 놀이로 자리 잡았다.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 홍보 이미지 <사진제공=싸이더스픽쳐스>

 

‘오징어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라꽃 무궁화를 모티브로 만든 놀이이다. 이 놀이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영향을 받은 놀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대부분이 놀이 삼매경에 빠진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무궁화를 ‘눈의 피 꽃’ ‘부스럼 꽃’이라 불러 폄하하고 짓밟았으며, 무궁화를 심기만 해도 ‘사상불온죄’로 간주했다. 겨레의 꽃 무궁화를 심어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나라의 독립과 미래를 열어가려는 무궁화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무궁화는 나라 사랑의 표상이 되었다.

일제가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일장기와 벚꽃을 보급하려 할 때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남궁억은 민족정신과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해 무궁화를 심고 아이들 놀이 안에서 무궁화 꽃을 피웠다. 교육이야말로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에 가정교육, 조선어 보충, 교과서를 제작하며, 1919년 강원도 홍천군 서면에 모곡학교를 세우고 이곳에서 일본 놀이에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우리말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남궁억은 이 놀이를 통해 유희적 의미를 넘어 보다 깊은 뜻을 담아내려 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자연스럽게 무궁화를 떠올리도록 했고 적이 어디까지 쳐들어왔는지 늘 경계하는 자세를 갖도록 한 것이다. 일본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그 자체는 무궁화 사랑 나라 사랑을 되새기며, 나라를 빼앗기면 우리 말과 글은 물론 우리 놀이문화까지 모두 말살된다는 당시의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담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만화 <한서 남궁억> 중에서 ⓒ키아츠 제공

 

이처럼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놀이 일부는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놀이이다. 그러나 일본 놀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각국의 놀이 정체성을 바르게 인지하고, 우리에게 유입된 경로를 알아야 한다. 역사는 흘렀지만, 우리 아이들의 놀이와 노래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일제 35년의 기억을 유산처럼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흥겹게 노래 부르며 즐기는 놀이와 노래 속에서 일본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문화적으로 승화해서 문화자산으로 이어오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철저하게 규명하고,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우리 것을 되찾아 이제는 놀이 독립을 할 때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윷놀이도 한때 수난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명절과 민속놀이를 억제하는 과정에서 압제를 받았던 윷놀이가 전 세계를 대표하는 놀이임을 미국의 민속학자 스튜어트 컬린은 125년 전 그의 저서 「한국의 놀이 – 유사한 중국, 일본의 놀이와 비교하여」에 윷놀이의 우수성을 어필했다.

스튜어트 컬린의 저서 <한국의 놀이>. 초판 발행은 1895년 500부 한정으로 이뤄졌다. (출처=교보문고)

 

그는 한국의 윷놀이는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판 놀이의 원형이다윷놀이는 판 위에서 주사위를 갖고 하는 모든 놀이의 조상 또는 원형이라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윷놀이는 세상 모든 판 놀이의 기원이다. 선조들의 삶의 철학이 담겨있는 윷놀이에는 천지와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는 시스템이 담겨 있다. 윷판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이 회전하는 모습을 도식화한 것이다. 음양오행을 비롯한 24절기와 천원지방의 천문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윷놀이의 원형이 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듯이 놀이도 디아스포라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윷놀이는 국경과 민족을 넘어 많은 이들이 즐기고 있다. 놀이의 이주를 시작으로 그 나라 문화와 환경에 알맞게 정착을 하며, 일정한 규칙과 방법에 따라 전래놀이가 재조명되고 있다.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우리 놀이가 역사적 연원이 깊고 미래에까지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크게 작용할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세계 어느 나라마다 오랜 기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전래놀이가 있다. 오랜 기간 역사와 문화 속에서 융화된 전통놀이는 상대와의 경쟁성,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모험성, 흥을 뜻하는 유희성, 즐김을 나타내는 오락성,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성, 사회인이 되기 위한 교육성, 신을 위한 제의성, 지역의 언어와 문화 예술을 반영한 향토성을 지닌 활동이다. 각 나라마다 환경과 문화에 따라 놀이 방법과 규칙이 다소 상이할 뿐 놀이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일시되고 있다. 세계의 모든 국가에 공통된 놀이가 있고, 또 동북아시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놀이도 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놀이도 있고 한국, 일본, 중국의 놀이 정체성이 서로 뒤섞여 있기도 한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놀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지역사회 결속력과 상호교류는 물론이며 공동체 문화를 생활 속에서 실천했다. 세시풍속 놀이로 심신이 단련된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추억 놀이에 심안이 밝아지며,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공동체 놀이 속에서 통합적이고 가슴 따뜻한 인성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감싸는 따뜻한 가슴으로 사는 세상이 놀이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다. 공동체 놀이의 신명과 풍류를 즐기면서 한국인의 인성과 감성을 길러왔다.
 
전 세계적으로 문화다양성이라는 시대적 가치가 화두로 조명되고 있는 요즘,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전래놀이 문화를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재창조하는 일은 팬데믹 시대에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우리의 미래는 대중이 원하는 콘텐츠로 문화 이질감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조상들의 얼과 슬기가 담겨 있는 한국 전통놀이를 21세기 건전한 놀이와 여가 문화로 재창조할 때, 아름답게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전영숙
전통놀이다문화교육연구소 다놂, 신바람광주놀자학교 대표
MBC, KBS, tvN , EBS 등 전통놀이 출연, 연출 및 자문
송원대학교 휴먼산업대학원 글로벌한국학과 외래교수
한국영상대학교 유아교육학과 전통놀이와 음악 강사
원광디지털대학교 웰니스문화관광학과 놀이와 여가 강사
전통놀이 및 세계놀이문화 강사 양성 등 매년 300여회 이상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