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결혼식, 획일성을 넘어 다양성으로(정헌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첨부이미지 : 그림2.png

문화인류학은 세계 각지의 여러 집단이 지닌 다양한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인류학계에 알려진 대부분의 사회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결혼이 그만큼 보편적인 관습임을 뜻한다. 물론 결혼제도가 보편적이라 해서 모든 사회의 결혼 관습이 같다는 건 아니다. 결혼 상대가 누구이며 결혼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그리고 한 사람이 몇 명과 결혼할 수 있는지는 사회마다 차이가 있다. 사회적으로 승인된 성적·경제적 결합을 의미하는 결혼의 방식에는 다양한 문화적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콰키우틀족의 축제 ‘포틀래치’ ⓒ 제인스G 스완

 

결혼의 시작을 나타내는 의례적 행사, 즉 결혼식의 형태 역시 문화마다 다르다. 이를테면 북아메리카 대평원 지역의 선주민 집단 중 하나인 위네바고(Winnebago)족의 경우 특별한 형태의 공식적 의례로서의 결혼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신부는 신랑의 부모님이 사는 집으로 가서 혼례복과 장식품을 벗어 시어머니에게 주는 대신 평상복을 받았고, 그것이 공식 행사의 전부였다. 반면 북아메리카 북서부 해안의 콰키우틀(Kwakiutl)족은 결혼식 의례에 주변 집단을 초대해 ‘포틀래치(potlatch)’라 불리는 성대한 잔치를 열어 방문자에게 성대한 선물을 제공하고 음식과 재화를 광적으로 낭비했다. 심지어 이 사회에서 가장 귀중한 재화인 구리판을 파괴해 집안의 부와 위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현대사회에 비유하면, 손님들 앞에 현금을 잔뜩 쌓아놓고 불을 붙인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렇듯 결혼식은 전 세계에 분포한 인간 집단의 문화적 다양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의 전형적인 예식장 (출처=클립아트코리아)

 

과거 한국의 결혼식 역시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담고 있었다. 전통적인 방식의 결혼식은 지금도 ‘전통혼례’라는 이름으로 명맥이 이어져 오고는 있지만, 한국인 대다수는 현대식 결혼식을 치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현대적인 결혼식 또한 한국의 과거와 현재, 서양의 영향, 상업화 등이 뒤섞여 현대 한국사회만의 독특한 문화적 양식을 보여준다. 결혼식을 전문으로 거행하는 공간인 ‘예식장’에서 치르는 현대식 결혼은 서양식 스타일에 대한 모방 욕구와 의례의 상업화 등을 바탕으로 한 외형에 한국의 전통적인 혼례 관습이 합쳐져 탄생한 문화적 혼종물(cultural hybrid)이다. 한국에서 신식 결혼은 19세기 말 개신교 전파와 더불어 등장했는데, 이후 1930년대 들어 신식 결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결혼식만을 위한 전용 공간, 즉 전문 예식장이 나타났다.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양이 지닌 이미지에 대한 동경이 강해지며 그를 향한 한국사회의 욕망은 결혼식의 변화를 통해서도 추구되기 시작했다.

결혼식 후 진행되는 폐백 (출처=클립아트코리아)

 

그 결과 현대 한국사회의 결혼식은 서양에 대한 모방과 한국의 전통이 뒤섞인 혼종적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예식장 안팎의 화려한 장식과 연출기법은 서구식 근대화의 산물인 낭만적 사랑 이데올로기를 충실히 재현하며 ‘결혼식의 주인공’으로서 신부를 부각한다. 다른 한편, 겉으로 보이는 예식의 이면에서는 전통적인 유교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두고 신랑과 신부를 둘러싼 가족·젠더관계가 재구성된다. 결혼 준비에서부터 예식 당일에 이르는 과정을 통틀어 신랑과 신부에게는 서로 다른 규범을 따를 것이 요구된다. 하객 앞에서 예식 절차를 치른 뒤 따로 신부가 신랑의 가족과 친척에게 인사하는 결혼식 당일의 의례인 폐백은 그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신부대기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또 하나 신랑과 신부 사이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식장에 설치된 신부대기실의 존재이다. 신부대기실은 1970년대 공포된 「가정의례준칙」에 따라 신랑대기실과 함께 예식장에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되었으나 이후 유명무실화된 신랑대기실과 달리 지금까지도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예식 전에 웨딩홀 바깥에서 부모와 함께 하객을 맞는 신랑과 달리, 신부는 신부대기실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하객만을 맞이한다. 이 같은 관습은 한국의 결혼식에서 신부는 한껏 꾸민 채 단지 수동적으로 대상화되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한국의 결혼식에는 일종의 표준이 존재해 왔다. 양가 간에 서로 예단과 예물, 혼수 등을 주고받고, 전문 예식장이나 호텔에서 지인 가운데 권위 있는 인물을 주례로 세워 신랑이 먼저 입장한 뒤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같은 예식 스타일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대안으로 주목받은 게 바로 이른바 ‘작은 결혼식’ 혹은 ‘스몰웨딩’이다. 90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서 예식과 폐백, 하객 인사 등 일체의 절차를 모두 마쳐야 하는 기존 형식을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결혼식을 올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등장한 것이다.

스몰웨딩의 표본이 된 이나영, 원빈의 결혼식 (출처=중앙일보)

 

하지만 자신의 결혼식에서 직접 틀을 깨는 실천을 하기에는 아직 어려움이 많은 게 현실이다. 온전히 개성 있는 예식을 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결혼 준비과정에서의 선택권이 부모로부터 자녀 세대로 상당 부분 넘어와야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결혼식은 기본적으로 신랑·신부가 아니라 혼주, 즉 양가 부모의 행사이다. 부조금이나 예물·예단은 물론, 신혼집과 살림을 비롯해 결혼식에 드는 제반 비용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부모가 직접 부담하는 경우가 많기에 부모 세대의 의중이 결혼 준비과정 전반에 크게 반영된다. 예식 당일의 연출 요소 역시 너무 튀지 않는 것을 원하는 대다수 부모의 성향으로 인해 형식에 변주를 가하기도 쉽지만은 않다. 그러다 보니 자녀 세대의 양보로 일반적인 형식의 결혼식을 치르는 것이 아직은 우세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온전히 본인의 뜻을 온전히 반영한 예식을 행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대안을 찾는 움직임이 조금씩 등장하고 있는 것이 결혼식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풍경이다. 특히 결혼식의 상업화 과정에서 자리 잡은 한국의 일반적인 예식 형태를 부자연스럽고 촌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젊은 신랑·신부는 예식 당일의 절차만이라도 변화를 주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양가의 체면과 자존심 탓에 자녀 세대가 쉽게 개입하기 힘든 예물과 예단 등과 달리, 예식 당일의 절차는 그래도 크고 작은 변화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실제로 진행되는 서구식 예식을 접해 온 최근의 젊은 세대 사이에는 한국의 전문 예식장에서 연출되어 온 요소들을 이도 저도 아닌 괴상한 혼종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서양의 결혼식에도 어떤 ‘원전’이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다. 전문 예식장에서 연출되는 혼종적 요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반대로 서양식의 ‘원전’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미디어를 통해 서구식 예식을 접한 젊은 세대가 지금껏 한국의 예식장에서 진행된 결혼식이 얼마나 ‘키치(kitsch)’적인지 파악해내는 문화적 감수성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적합하다. 한국의 일반적인 예식 절차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상의 원전을 근거로 한 키치일 뿐이라면, 키치의 부자연스러움을 참을 수 없게 된 젊은 세대에게 이는 굳이 따라야 할 문화적 전통이 아니다. 과거 산업화 시기와 뒤이어 1990년대 소위 ‘세계화’ 초창기를 거치면서 단순히 서양 스타일에 대한 모방 욕구를 바탕으로 현대 한국의 예식이 자리 잡았다면, 이제는 ‘키치’를 넘어 자신의 뜻을 반영한 결혼식을 치르고자 하는 욕망이 등장한 것이다.

모델 최소라 & 이코베의 개성있는 결혼식 (출쳐=SPOTV NEWS)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 여전히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부장적 친족관계의 형성 도구로서 결혼이 지닌 본질적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결혼식이라는 통과의례 이후로는 본격적인 ‘어른’의 삶, 즉 친족 구성원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삶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 있는 결혼식의 추구는 결혼 이후에도 자기 방식대로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는 첫 단계일 수 있다. 그러나 의례 단계로서 예식 형태에 변화를 주는 정도만으로는 젊은 세대가 갖는 결혼에 대한 부담을 해소하기에 한계가 있다. 이처럼 결혼이 주는 부담과 무게를 ‘스몰웨딩’이라는 대안적 예식을 선택하여 조금이라도 덜어보려 하는 양상에 더하여, 일부는 아예 결혼 자체에 대한 거부, 즉 ‘비혼’이라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 한국사회의 단면이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결혼에 관한 부담이 사회 전반의 지속과 재생산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한국의 현실에서, 우리가 지금의 결혼 관습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 참고자료
김수아·이소연, 2005, “결혼 의례의 기호학적 분석: 낭만적 사랑의 신화와 성 역할 이데올로기”, 『한국언론정보학보』 28집, 43-76쪽.
루스 베네딕트 (이종인 옮김), 2008, 『문화의 패턴』, 연암서가.
송도영, 1995, “의례공간 소비의 ‘키치’화: 예식장”, 『한국문화인류학』 28집, 319-350쪽.
캐럴 엠버 & 멜빈 엠버 (양영균 옮김), 2012, 『문화인류학』 제11장 “혼인과 가족”, 피어슨에듀케이션코리아.

 


정헌목
도시공간과 주거, 공동체를 연구하는 인류학자. 도시화를 비롯한 현대 한국의 사회적 변동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문화 현상을 연구해 왔다. 지은 책으로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와 <두 가지 스타일의 결혼식>(공저)이 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류학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