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일간의 결혼행진!(이혜민,정현우 크리에이터) 첨부이미지 : 그림5.png

1. 이혜민정현우 크리에이터님 두 분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6년차 부부이자 동료로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900KM(구백킬로미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같은 밀레니얼 세대의 생각과 가치관을 담은 콘텐츠를 책과 영상 등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2. 의미 있는 방법으로 결혼하고 싶어 2016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걷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셨다고 들었습니다이러한 결혼식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초중고를 거쳐 사회에 나오기까지도 수많은 ‘남들 하는 만큼’의 기준에 시달리잖아요. 독립적인 존재로 내가 선택한 사람과 가족이 되는 일인 결혼만큼은 ‘남들 하는 만큼’의 기준에 맞춰가며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양한 대안을 찾았었죠. 기존의 틀을 깨고 우리다운, 나다운 방식으로 하고 싶었고, 우연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렸어요. 드넓은 들판 위의 길을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그려졌고, 이거라면 결혼식을 대신할 만큼 멋진 의식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때부터 2년 동안 준비해서 우리만의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을 다녀왔습니다.

ⓒ900KM

 

3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예비 신혼부부에게 결혼식은 어떤 의무나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그런데 두 분은 이를 재미있는 프로젝트로 생각하며 차근차근 준비해갔던 과정이 흥미로웠는데요그 준비 과정을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바쁜 것도 바쁜 거지만, 천편일률적이고 상업적인 것들로 가득 찬 기성의 결혼식 문화에서 오히려 가장 빛나야 할 우리 둘이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려는 것뿐인데, 예의와 전통이라는 명목으로 챙겨야 할 게 수두룩하죠. 누가 주인공인지도 모를 ‘식을 위한 식’ 말고 둘만의 의미 있는 의식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준비 과정도 여느 결혼식과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데이트 장소를 카페나 영화관이 아닌 체력 단련을 위한 등산로나 성곽길로 정하거나, 여름 휴가를 휴양지가 아닌 제주 올레길 ‘전지훈련’으로 다녀온다거나.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보러 다니는 대신 ‘등산복’과 ‘트레킹용 장비’를 준비하고, ‘결혼행진’을 콘셉트로 화관과 부토니에를 달고 친구들과 셀프 웨딩촬영을 하기도 했어요.
 
4. 꿈꿨던 결혼식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부딪쳤던 가장 큰 난관은 무엇이었나요그리고 이 과정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나요?

ⓒ900KM

 

당시 가장 크게 느껴졌던 난관은 역시 가족들을 설득하는 일이었어요. 일단 결혼식 자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필요했고,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해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어요. 당시에도 종종 나오던 ‘작은 결혼식’에 대한 기사들을 찾아 보여주거나, ‘결혼행진’ 계획안을 작성해서 이야기하는 등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히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가능한 일이고 심지어 꽤 멋진 일이다’라는 것을 알려드리려 했던 것 같아요. 결혼행진을 떠나기 한 달 전에는 생소한 결혼 방식을 정리한 소식지 형태의 청첩장과 그간의 준비 과정을 담은 웹사이트를 제작해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해주며 ‘진짜 한다’는 최후통첩을 알렸죠.

 

5.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포함해 3개월간의 여정을 앞두고 두 분 모두 과감하게 퇴사를 감행하셨습니다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 선택을 참 잘한 선택이라고 하셨는데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저희는 각자 다른 콘텐츠 회사에서 기획자와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좋아서 선택한 일이었지만 녹록지 않았죠. 한 달에 하루 이틀 밖에 쉬지 못하고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당시에는 그게 업계의 당연스러운 분위기였고요. 점점 지쳐갔지만 그렇다고 이제 막 3~4년차가 된 경력에 서른을 앞둔 이들이 퇴사를 결정하는 일은 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함께 결혼행진을 준비하면서 우리 삶에 조금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며, 이번 한 번쯤은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은 미래를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죠.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어요. 누구나 그렇듯 저희도 그때까지 휩쓸리듯 살아왔었는데, 퇴사를 하고 떠난 그 결혼여행이 처음으로 스스로 멈춰서서 우리가 진짜 원하는 삶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볼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900KM

 

6.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결혼행진을 통해 가장 크게 느끼고 배운 것은 무엇이었나요또 결혼행진 중 잊지 못할 순간을 꼽는다면?
 
모든 순간을 잊지 못해요. 매일이 행복한 꽃밭이라서가 아니라, 정반대였기 때문이죠. 실제로 걷는 42일 중 반 이상이 비가 왔고 우리는 매일 진흙밭을 걸어야 했거든요.(웃음) 게다가 맨날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나 두드리던 저질체력 친구들이 갑자기 커다란 배낭을 메고 하루에 2~30km씩 걷는 일은 아무리 체력 단련을 했다고 해도 역부족인 일이었어요. 첫날부터 악명높은 피레네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3월 중순인데도 눈이 많이 쌓여있어 우회길로 걷다 보니 10시간을 산속에서 헤매기도 했고요. 그렇게 헤맬 줄 모르고 식량도 물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해서 정말 힘들었죠. 첫 목적지였던 수도원 표지판이 보이자마자 엄청 울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하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죠.(웃음) 물론 길 위에서 만나 우리의 결혼행진을 축하해주던 순례자 친구들과의 추억도 잊지 못하죠.

ⓒ900KM

 

이렇게 매일을 걸을 때는 사실 삶의 큰 깨달음 같은 건 생각을 틈이 없어요.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는 게 중요하죠. 오늘은 어떤 마을에 몇시쯤 도착할지, 어디서 밥을 먹고, 어떤 숙소를 잡을지, 빨래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등을 생각하기도 바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기본으로 돌아가서 하루하루 나에게 필요한 것에만 집중해서 살다 보니 삶이 단순해지고 잡념이 사라졌죠. 도시에서 살면서는 이렇게 나에게 집중할 틈이 없잖아요. 그리고 처음엔 막막했지만 하루하루 할 수 있는 만큼, 내 속도대로 걷다 보니 끝내 900km에 다다랐고요. 그러면서 자기확신이라는 게 몸에 체득된 것 같아요. 내 걸음은 내가 걸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막막해도 속도보다 방향을 생각하며 걷다 보면 언젠가는 도달한다는 것.

ⓒ900KM

 

7. 결혼 전에는 계속되는 야근주말 출근 등으로 바쁜 일상에 시달렸다고 들었습니다결혼식 이후 두 분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떤가요일과 삶의 균형은 이루고 계신가요?

여전히 우리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자발적 야근을 하는 삶을 살고 있어요.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은 좀 더 주체적으로 일하고 내 삶의 키를 나 스스로가 잡게 되었다는 점인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사람들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쫓으며 아등바등 살아왔다면, 이제는 나다운 답을 내가 찾아가며 살아가게 된 거죠. 우리는 지금 하는 일이 우리와 같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상상하게 하고 삶을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만으로도 일과 삶의 만족도는 훨씬 높아진 것 같아요.
 
8. 결혼행진이 끝나고또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책을 내고 난 이후 주변의 반응은
어떠했나요기억에 남는 후기나 반응으로는 무엇이 있었나요?

이혜민, 정현우 부부가 함께 일하는 모습 (제공=900KM)

 

당시 책을 내기도 전에 몇몇 언론에서 저희 사연을 소개해주시기도 했고, 책을 내면서 많은 분들의 메시지를 받게 되었어요.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스스로 ‘아 이게 가능하구나. 꼭 정해진 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걸 느끼며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고 말해주는 분들도 많았어요. 저희 또한 그 전까지는 ‘우리만 이런 생각 하나?’ 했다면, 이렇게 세상에 우리 이야기를 말했더니 우리와 같은 꿈을 꾸고 갈증을 느끼던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고 또 다른 용기가 되었어요.

ⓒ900KM

 

9. 결혼 후두 분이 함께 기획한 <요즘 것들의 사생활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결혼행진 이후, 우리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는 앞으로도 세상이 내미는 정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의지대로 기성의 문화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을 한번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요즘 것들의 사생활>(이하. 요즘사)이었죠. 요즘 것들이란, 기성세대가 '요즘 것들은 이래서 안돼' 라고 하는 것에서 가져온 단어예요. 어른들이 볼 때는 하라는 대로 안 하고, 제멋대로고, 청개구리 기질이 다분해 보이는 우리이지만, 우리에겐 우리 나름의 가치관이 있고 삶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죠.

 

ⓒ900KM

 

 지금 요즘사는 일과 삶 전반에 있어 다양한 삶의 선택지를 이야기하는 3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이자 동명의 인터뷰집 시리즈를 선보이는 미디어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2017년만 해도 ‘결혼생활’이라는 주제로 소박하게 시작을 했었어요. 그때가 저희가 결혼한 지 2년이 채 안 되었을 때거든요. 앞서 소개해드렸던 것처럼 나름 대안적이고 주체적인 방식으로 결혼을 했지만, 그 후 들어선 현실 결혼의 세상은 여전히 조선시대 같았거든요. 뿌리 깊게 자리한 가부장적이고 불합리한 것들과 마주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저희처럼 이런 기성의 결혼 문화에 답답함을 느끼고, 더 나아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요즘 부부’를 만나보기로 했죠.

 

10. ‘결혼탐구생활의 인터뷰이들을 만나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만난 부부들은 기존의 결혼식에 대해 ‘싫은 거 빼니까 남는 게 없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요즘 것들’이었어요. 당연한 듯 대물림 되어온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여전히 육아로 인한 남편의 ‘칼퇴’는 용인되기 힘들지만 일하느라 바쁜 여성은 ‘나쁜 엄마’로 낙인찍히는 사회의 불합리함을 지적했죠. 그리고 이것을 단순한 불평이나 하소연으로 끝내지 않고 남다른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고 살아가기 위한 시도와 도전으로 이어갔어요. 당당히 두 사람이 주체가 되는 즐겁고 창의적인 결혼식을 올리고, ‘의무와 역할’에 매몰되지 않는 진정한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며, 부부가 서로 헌신하거나 희생하는 것을 지양하고 공정하게 공유할 방법을 강구하는 능동적인 사람들이었어요. 이 친구들을 통해 저희는 세상이 말하는 결혼의 기준에서 벗어나 ‘나답고 우리답게’ 살아가는 새로운 결혼생활의 대안을 엿볼 수 있었죠.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생각과 방식으로 살아가면서도, 남들의 인정이라든가 시선보다는, 각자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갖고 나답게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어요.
 
 
11. 자신에게 맞는 의미 있는 결혼식을 꿈꾸거나 허례허식 없는 간소화된 결혼식을 원하지만부모나 친척사회적인 기준 때문에 이를 고민하는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에게 결혼이란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해보고, 그것과 가장 어울리는 방식을 택하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납득하게 하는 결혼식 말고, 두 사람이 스스로 납득되는 방식을 찾아보세요. 꼭 특별하고 특이할 필요도 없어요.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괜찮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재미난 방식을 찾아봐도 좋겠죠. 중요한 건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아도 별일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결혼과 이 인생은 부모님도, 지인들도 아닌 내 것이잖아요.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대로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오히려 그 용기에 박수 쳐줄 수 있는, 진짜 내 인생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얻게 될 거예요.
 
12. 결혼 6년차현재 두 분이 부부로서 함께 꾸고 있는 꿈은 무엇이 있을까요?

ⓒ900KM

 

저희는 '한 가지 길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모양이 자연스러운 세상'을 꿈꿔요. 그래서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 또래와 우리 다음 세대가 그런 다양한 삶을 선택지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데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지금은 그것들을 담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더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의 안전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이 일을 더 오래 지치지 않고 지속하면서 잘 먹고 살 수 있는 여러 방법도 시도해 볼 거고요. 부부로서는 서로가 서로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삶의 지지자로서 오래 잘 지내고 싶어요.

 


이혜민정현우
우리에게 의미 있는 방법으로 결혼하고 싶어 2016년 봄, 결혼식 대신 산티아고 순례길 900km를 42일간 함께 걷고 돌아와 부부이자 동료가 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담은 책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을 함께 쓰고 펴냈습니다. 기성의 문화에 작은 균열을 내고, 새로운 선택지를 탐구하는 콘텐츠를 함께 만듭니다.
세상의 정답 말고 나다운 삶의 레퍼런스를 기록하는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고 동명의 인터뷰집 <요즘 것들의 사생활> 시리즈를 쓰고 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