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문화다양성 (조희정 교수) 첨부이미지 : 썸네일11-1.png

*본 게시물은 주거 문화의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칼럼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기원을 따져보면 탈서울의 움직임은 하나가 아니다. 넓게 보면 그저 서울을 오가는 것도 일종의 탈서울이다. 그러나 좀 더 길게 서울을 떠나는 흐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세 개의 흐름이 있다.

첫 번째 트랙은 인위적인 탈서울이다. 1980년대에 정부는 지원금을 주며 영세민의 지방이주정책을 전개했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철거민과 도시빈민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탈서울을 권장했다. 일종의 둥지 내몰림 현상이다.
두 번째 트랙은 고령자의 귀농·귀촌이다. 은퇴한 고령 인구들은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귀농이 아니라) 귀촌했고 별장을 지어 연금으로 생활했다. 귀농·귀촌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고, 1세대 귀촌 인구는 병원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역귀촌, 즉 도시로 돌아오는 형국이 되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귀촌·귀농은 이어지고 있다.
세 번째 트랙은 최근 5년 사이에 형성된 새로운 청년 탈서울 층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다양한 이유로 서울을 떠나기 때문에 여전히 탈서울 인구 규모를 정확한 숫자로 파악하긴 어렵지만 지금 이렇게 유독 청년층이 서울을 떠나는 새로운 흐름에 대해서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 상황을 간단하게 육하원칙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클립아트코리아

 

1. 누가 떠나는가
초기에 지역에서 창업하는 청년의 대부분은 30대 초중반, 어느 정도 직장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각자도생과 승자독식의 도시 생활에 번아웃을 느껴서 떠났다고 말했다. 그 시기는 공정성, 갑질, 감수성이라는 말이 등장하던 시기와 비슷하다.
한편에서는 도시를 떠나 지역에서 창업한 사람들이 전개하는 서비스나 프로그램을 경험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적극적으로 도시를 떠나 지역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거의 80~90%가 20~30대 여성들이다.
 
2. 언제 떠나는가
능동적으로 혹은 수동적으로 떠날 수 있지만 ‘기회’의 수가 이탈을 촉진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1997년의 IMF나 2008년의 글로벌 경제위기 그리고 산업화에 따른 유일 목표의 양적 성취라는 삶의 방식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넉넉한 기회가 많지 않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2020년대의 대한민국은 과거의 성장방식에 대한 의문과 한계에 직면해있다. 지금 지역으로 떠나는 청년들은 자연재해를 예측한 동물들이 전조현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경제 위기와 사회 위기에 대한 일종의 신호(signal)를 보내고 있다.

3. 왜 떠나는가
초기의 창업자들이 도시 생활에서의 번아웃을 이야기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대책 없이 아프고 힘들다며 도시를 탈출(exit)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의 접근은 지역이 그들을 위한 병원의 역할만 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는 자기 성취감과 효능감 때문이다. 즉, 망해도 흥해도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큰 듯하다. 조직의 일부(one of them)로서 소모되는 삶은 내 삶이 아니라는 일종의 각성이 탈서울을 촉진한다.

ⓒ클립아트코리아

 

4. 어디로 가는가
흔히 이주자의 종류를 UJI턴으로 구분한다. 다시 고향으로(U턴), (서울 외 지역 출신이기 때문에) 익숙하진 않지만 전혀 낯선 것만은 아닌 다른 지역으로(J턴), 지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도시에서 지역으로 가는 것(I턴)이 그것이다.
어디로 가든 그곳이 정착지가 아닐 수 있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계속 살던 사람에게는 누가 들어오면 영원히 같이 살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5. 무엇을 하는가
이 점에 문화다양성이 있다. 탈서울화를 한 사람은 원주민이 모르던 지역의 자원을 발견하기도 하고, 버려진 공간을 다시 쓸만하게 재생하기도 한다. 단순 숙박시설이 복합문화공간이나 카페로 변신하는 것도 이제는 낯선 현상이 아니다. 그렇게 갤러리, 독립서점, 코워킹스페이스가 탄생한다. 먹거리 시장을 식음료(F&B) 시장으로 확대하거나 농업과 같은 소외된 산업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려는 창업도 한다. 전통적인 신문뿐만 아니라 지역을 달리는 다양한 미디어와 콘텐츠도 새로운 창업의 종류에 포함된다.
 
6. 어떻게 하는가
여기에 많은 창의성이 반영된다. 전통적인 문화와 예술의 범주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기법들이 적용된다. 연극, 미술, 음악뿐만 아니라 가히 하이브리드 범주의 창의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초기에는 1인 창업이 많았지만, 지금은 팀 창업도 많이 나타나고 있고, 단지 탈서울한 청년뿐만 아니라 그대로 살고 있는 토착 인구, 청년 외 귀촌·귀농 고령층, 중장년층도 나름대로 합류하고 있다.
 
이제 막 5년 정도 무르익은 현상이지만 당분간 이 흐름은 계속될 것이고, 어쩌면 더욱 확대될 수도 있다. 지역이 더 많은 기회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 누구라도 그 기회를 나와 우리의 기회로 잡고 싶을 테니 말이다.

 


조희정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이자 더가능연구소 연구실장(정치학 박사). 청년창업이 지역의 좋은 변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입법조사처에서 근무했다. 청년창업의 방식, 아이템, 콘텐츠의 지역 파급효과를 분석하며, 과거와 다른 새로움이 지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각종 저술과 논문을 출판한다. 저서로 <로컬, 새로운 미래>, <로컬의 진화>가 있고, 공동번역서로 <마을 만들기 환상>, <마을의 진화>, <인구의 진화>, <시골의 진화>, <창업의 진화>, <로컬의 발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