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뻗어나가는 K-전통공예(정다혜 말총공예작가) 첨부이미지 : 9.png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공예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지닌 로에베 공예 공모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 등 K-전통공예의 저변을 넓히고 있는 정다혜 작가를 만나보았습니다.

 

1. 안녕하세요. 정다혜 작가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말총으로 작업하는 정다혜입니다. 조선시대 말총공예 기술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 전통공예, 그 중에서도 말총공예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2017년 KCDF(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진행한 ‘지역공예마을육성사업’에 신진작가로 참여하면서 말총공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주 지역 공예에 대한 프로젝트였는데 신진 작가들이 지역 공예 소재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게 미션이었어요. 저는 섬유 분야 신진작가로 지원해서 말총을 소재로 하게 됐고, 그게 인연이 되었습니다. 

 

3. 작가님의 작품 제목에는 유독 'time'이란 단어가 많이 들어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말총으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들어갑니다. 일일이 손으로 만들기 때문인데요. 좋은 말총을 골라내고, 나무 틀에 말총을 둘러서, 바늘로 한 올씩 엮습니다. 제 작품에 time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갔던 이유는 당시의 긴 작업 시간이 저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스스로 많이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긴 시간을 들여 작업을 하는데 과연 이 작업물로 먹고 살 수 있을지, 나 자신 말고도 나의 작품을 인정해줄지 하는 고민이 늘 많았거든요. 그 때 찾은 해답이, 성실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말총을 엮어서 만든 작품이니 그걸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거였어요.  

 

 

 

(좌)Weaving Time, (우)Shaping Time (이미지 제공=SOLUNA CRAFT)

 

4. 공예가라는 직업을 택하셨는데 이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또 공예가로서 언제 가장 보람과 행복을 느끼나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몰두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동안의 저를 쭉 돌아보면 저는 창작욕이 굉장히 많은 편이더라고요. 제가 뭔가를 만들어 냈을 때 가장 성취감을 느끼는 편입니다. 원래 대학에서는 조소를 전공했거든요. 당시에는 미술이 참 어렵게 느껴졌어요. 만드는 일은 분명히 좋은데 작가로서 자질이 있나? 하는 마음이 늘 들더라고요. 어떤 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도 몰랐고요. 대학원에서 섬유 공예를 전공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늘 역사와 함께 한다는 점, 그리고 소재를 시작으로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처음부터 뭐든지 창조하는 일은 어려운데 말총이라는 소재와 조선시대 기술이라는 것을 잡고 저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은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말총으로 공예품을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유물 조사를 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지 상상하는 일들이 참 즐거웠습니다. 나 혼자 동떨어져서 낯선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해오던 일이라고 생각하면 늘 안심이 돼요.

말총 공예가로서만 살아봐서 다른 경우는 잘 모르지만 제 경우에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을 말씀드리자면, 개인적으로는 말총을 틀에서 빼낼 때 입니다. 만드는 과정동안에는 나무틀에 끼워져 있기 때문에 저도 완성된 모습을 상상하면서 만들어야 해요. 중간에 틀에서 빼내면 형태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완성 후에만 빼거든요. 틀에서 나와 면이 아닌 선으로 존재하는 작품을 봤을 때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는 마음도 들고요. 또 말총공예가 현재는 하는 사람이 많이 없잖아요. 말총공예에 재해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보람있죠.

 

5.소품 위주의 커머셜한 작업을 많이 해오다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완성하는 전문작가로 도전을 
해나가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소품 위주의 작품을 했던 이유는 당연히 작업을 하면서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말총공예 자체가 원래 모자나 장신구를 주로 만들던 소재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어 소품을 만들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더 많이 표현하고 싶더라고요. 말총이 작고 아기자기한 소품이 되는 것도 정말 좋지만 크고 멋있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작정 큰 작품을 하는 것은 저에게도 무리가 있었어요. 아주 소량이지만 그래도 말총 선추나 모빌 등의 주문 제작이 꾸준히 있었거든요. 그것을 뒤로하고 작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어요.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요. 그래서 공모전을 마감일로 두고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공모전이 안되더라도 작품은 남을 테니 두고두고 포트폴리오로 쓰면 되지 하는 마음에서요. 
 

6. 대표작 ‘성실의 시간’은 어떤 작품인가요?
'성실의 시간'은 청주공예비엔날레에 백말총으로 빗살무늬 토기를 만든 이후 네번째 토기 형태 작품이었어요. 갈색 말총을 이용했고 가운데에 무늬는 16세기 유물로 전해지는 사방관에 있던 무늬 일부를 재구성한거고요. 로에베 공예상 모집요강에 지역의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면 좋다고 되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오래된 무늬를 넣어 우리나라 말총공예의 오랜 전통도 담으면서, 형태는 전통적인 모자나 장신구가 아닌 ‘기’의 형태로 표현했죠. 말총은 빛을 받으면 머리카락처럼 빛을 투과시키면서 빛나거든요. 갈색 말총이라면 빛이 날 때 더 아름다울 거 같더라고요. 전통적으로 말총공예는 검정색을 많이 쓰거든요. 색만 달라져도 새로울 것 같았고요. 

 

 

A Time of Sincerity_Loewe winning piece (이미지 제공=SOLUNA CRAFT)

 

7.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서 한국 최초로 우승을 했는데 당시의 소감은? 
당시에 정말 기뻤어요. 시상식에서는 처음 느끼는 희열 같은 것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수상 이후에 오히려 좀 무서웠다고 하면 강한 표현이지만 뭔가 불안했던거 같기도 해요. 이런 상을 받을 만큼의 실력이 아닌데 과분한 상을 받아버린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그 시간을 즐기라고 해주셨지만 당시에는 즐긴다기보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야할까 고민이 많았던 거 같아요. 

 

8. 작가님의 평범한 일상은 어떤가요?매일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작업을 하시나요?
일상은 평범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 먹고, 청소하는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남편이 출근하고 작업방에 앉으면 그 때부터 남편이 퇴근해서 오기 전까지 늘 작업을 합니다. 집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자칫 게을러질 수 있어서 저 나름대로 규칙이 있는데요. 꼭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것, 일과 시간 동안 눕지 않는 것이에요. 영감을 받는 곳이 특별하게 있지는 않고 말총으로 어떻게 하면 더 아름다운 형태의 입체로 만들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면서 살아요. 그러다 보면 산책을 하다가도 떠오르고, 전시를 보다가도 떠오르고, 책을 읽다가도 떠오릅니다. 매일 특별히 비장한 마음으로 작업하진 않고, 오늘은 여기까지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연필로 금을 긋고 그 선까지 할 수 있게 부지런히 작업하고 있어요. 

 

9. 매일 쓰는 작업일지에는 어떠한 내용을 쓰나요? 지치지 않고 작품활동을 꾸준히 해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인지요?
작업일지에는 하루 작업에 대한 사진을 찍어서 첨부하고, 작업 시간, 그리고 작업하면서 들었던 생각 등을 주로 써요. 요즘에는 작업하면서 얻은 노하우 등을 주로 써야 하나? 싶어서 적어볼까 하는데 작업 일지를 쓸 때면 항상 까먹고 그 날 생각한 내용을 쓰게 돼요. 꾸준히 하는 원동력은 마감에 있더라고요. 다음 전시를 위해 작품을 몇 점 만들고 싶다고 목표를 잡으면 한달, 하루 해야하는 양이 나오거든요. 벼락치기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서 매일 꾸준히 하고 있어요.

 

10. 유물조사 또는 또 유물 재현을 하며 옛 장인들의 고민의 흔적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고요. 당시의 특별한 감정이나 깨달음을 소개해주신다면?
논문을 준비하며 유물 조사를 했던 시간은 저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입니다. 지금도 물론말총공예를 하는 장인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탕건, 망건, 갓 분야만 계시거든요. 그런데 유물은 선추(남자 부채 장신구), 노리개, 토시 등으로 다양한 쓰임과 형태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무늬도 다양해요. 염색한 말총도 쓰고요. 제가 말총공예를 이용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할 때 사실 좀 두려웠어요. 제가 잘 알지 못해서 말총공예를 이상하게 활용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요. 그런데 유물을 찾을수록 오히려 유물이 저의 고정관념을 깨주더라고요. 검정색 말총만 주로 쓰는 줄 알았는데 장신구에는 흰색 말총도 쓰고, 염색한 말총도 쓰기도 하고요. 남자 모자만 만드는 줄 알았는데 여자 모자도 만들고요. 짜임이 몇 개 없는 줄 알았는데 무늬도 무궁무진하게 만들어낼 수 있고요. 오히려 유물이 저에게 말총의 가능성에 대해 알려주었어요. 어떻게 짰을까 싶어서 따라 만들다 보면 노하우들도 배우게 되고요. 마치 그것을 만든 분께 속성과외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11. 말총의 대표 공예품인 '갓'이 K드라마 ‘킹덤’으로 주목받기도 했었는데요. 또 해외전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을 때, 현지인들이 감탄하는 특별한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말총공예를 만드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어요. 바늘로 말총을 엮거나, 말총을 날실과 씨실로 직조하는 방법이요. 그 중에 말총을 엮는 방법이 또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탕건이나 망건을 만들 때 쓰는 방법으로 말총을 고리 감아가면서 엮는 방법이고, 하나는 갓을 만들 때 쓰는 방법으로 말총 여러 가닥을 기둥 말총에 꼬아가며 엮는 방법이에요. 저는 첫번 째 탕건이나 망건을 만들 때 쓰는 방법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정확히는 갓을 만드는 방법과 다릅니다. 킹덤으로 ‘갓’이 주목을 받을 때는 말총공예가 주목 받았다기보다 갓이라는 모자가 주목을 받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도 ‘갓’이 주목 받는다는 건 말총공예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해외 관람자들에게 킹덤의 갓이 말총으로 만든 것이다라고 설명했을 때 말총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말총으로 만든 모자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바로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으니까요.  해외에서 저의 작품을 전시했을 때 대부분의 관람자들이 섬세함에 대해 많이 언급해주셨어요. 그리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또 놀랐었고요.    

 

12. 세계에 말총공예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는데, 전통의 현대화를 위해 중요하다고 것은?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기를 꿈꾸시나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기를 원하나면, 말총이 자유롭게 입체가 되는 작품을 만들길 원해요. 그리고 더욱 더 섬세한 작품이길 바라고 있어요. 말총을 섬세하게 짜는 것과 입체가 되는 것은 결국 같은 말인데요. 말총을 섬세하기 짜지 않으면 입체가 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에요. 말총이 입체가 되고 다양한 모양이 되는 것은 곧 제가 다양한 모양이고 입체적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현대화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말총공예를 현대화 해야 해야겠다는 거창한 목표를가지고 시작 한 건 아니라서 뭐라고 해야 할지 쉽지 않지만요. 제가 말총공예를 통해 배운 점은 유연함이에요. 전통은 사실 어렵고 딱딱해질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바라보는 사람도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정관념 없이 유연하게 접근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다혜
말총공예가, 조선시대 말총공예 기술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3년 문화예술발전 유공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공예 디자인 부문 수상
2022년 Loewe Foundation Craft Prize Winner
2021 청주국제공예공모전 공예부문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