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인터뷰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사회의 다양성 가치를 반영하여 사람 맞춤형 주택을 짓고 있는 사회적기업<아이부키>의 이광서 대표님을 만나봤습니다
1.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적 기업 ‘아이부키’의 대표 이광서입니다. 아이부키는 노인, 장애인, 예술가, 반려인 등 사회의 다양한 주거 수요를 파악하고요. 소셜하우징을 통해 그들에게 최적화된 공간을 기획하고 커뮤니티를 디자인하여 주거 본연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일을 합니다. 즉, 공간을 변화시키고 그 공간에 사람들의 새로운 삶을 담아가는 일입니다.
저를 움직이는 힘은 새로운 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새로운 가치 하나가 우리 사회에 싹트고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죠. 예술가들의 가슴 뛰는 영감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처럼, 저도 그들과 함께했던 경험 때문인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이 어려워도 더욱 힘을 쏟게 되는 거 같습니다.
와글와글 우리동네 도서관, 서초네이처힐 아파트 작은도서관 문화예술 프로그램 (사진 제공 = 이광서)
2. 소셜하우징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창업 초기 임대아파트 단지 내에 방치된 공간을 재생하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와글와글 우리동네 도서관’이라는 프로젝트인데, 방치된 공간을 작은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한 후 운영에 관심 있는 주민을 발굴하여 운영조직으로 육성하였습니다. 그 후 지역의 예술가들과 함께 동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도서관 학교를 열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했습니다. 그렇게 진행한 작업을 모아 아이들의 그림책을 출간하여 도서관에 전시하고 축제를 열었죠.
이렇게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사람들과 활동한 경험을 살려, 다음 프로젝트로 맞춤형 주택을 지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금천구청장을 지내신 차성수 전 구청장님과 인연이 닿아, 그분이 고민하던 홀몸 어르신 맞춤형 주택에 뜻을 같이할 수 있었습니다. 수급비로 생활하는 홀몸 어르신들은 경제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볕조차 희미한 반지하에 갇힌 사회적 고립으로 힘들어하시는 상황이었는데요. 이분들이 함께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집에 모여 살면서 고립을 벗어날 수 있는 무언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웃이 이웃을 돌본다는 뜻의 ‘보린保僯주택’은 우리 사회에 맞춤형 임대주택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공공기관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촉발했다는 사실이 저를 각성시켰습니다. 이게 맞는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3. 사회주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그리고 사회주택과 공공주택의 차이는 무엇인지?
우선 공공임대주택은 공공이 짓고 운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LH와 같은 공공의 미션은 양적 공급에 치중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의 시민사회는 성장했고, 선진국 수준의 문화적 역량으로 다양한 사회적 이슈가 생겨났으며, 계층도 세분화되고 있는데요. 이에 따라 노동자와 장애인, 예술가뿐만 아니라 반려인 등 각종 동호회까지도 그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회의 수준이 높아지는 현상인 거죠. 이러한 다양성이 우리 사회를 더 성장시켰고, 더 이상 우리는 공공의 양적 공급에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사회주택은 이런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는데요. 지금까지 공공 중심으로 양적 공급에 치중되어온 임대주택 공급 체계에서, 사회의 다양성 가치가 반영된 맞춤형 공급과 운영으로 전환하는 민간차원의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공의 힘을 빌려 주거비를 부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추면서도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 공간으로 기획하고, 그 안에 커뮤니티를 담아내는 섬세한 접근법을 접목하는 역할이 사회주택에 부여된 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아이부키에서 진행 중인 소셜하우징 사업 중 각 주택은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있는데요. 이런 맞춤형 주택을 설계하실 때 가장 크게 고려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2016. 따뜻한남쪽(예술가 공동체주택) 설계 회의
분명한 요구가 있지만 아직 사회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소수의 목소리를 주택에 담으려고 합니다. 특히 스스로 어떤 구체적인 형태로 주장하지 못하는 약자의 목소리요. 수급 생활을 하시는 홀몸 어르신이나 성인 발달장애인, 비진학 청년, 반려인, 어린이, 예술가 등등의 주제는 자칫 뒷전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그리고 주택은 큰 자본을 움직여야 하고 기획에서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시간도 상당해서, 소수의견 반영이 더욱 쉽지 않은 영역입니다. 그러나 가장 약한 목소리가 크게 울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고 또 선진 사회이기에, 우리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주택은 사람의 삶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반이기에 주거 부분의 혁신은 다양성의 실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의 가치를 담는 공간은 특히 공유공간에 반영되는데요. 공유공간, 공동시설, 커뮤니티 공간 등은 공동주택에 사는 모두의 공간이면서도, 누구의 공간도 아니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다양성의 구현은 바로 이 공유공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또 이곳이 공동체 운영 역량이 발휘되는 곳이라, 어려워도 섬세하게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하려고 애쓰는 부분입니다.
5. 소셜하우징 사업을 하시면서 사회적가족에 관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관련하여 얻게 된 인사이트가 있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의 생활 양식은 지난 몇십 년 간 급변했습니다. 특히 절대인구가 감소함에도 가구 수는 증가하는 현상에서 보이듯, 1인 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편입한 것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제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적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1인 세대의 문제는 사회에 깊이 잠복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가족 단위가 큰 경우엔 경제도 스스로 작동하고 교육도 관계도 어느 정도 가족 내부에서 해결 가능한 부분일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나 1인 세대는 집에서 밥을 해 먹기도 쉽지 않고, 그 외 생활의 무언가를 집에서 혼자 해소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 불완전성이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불완전성은 ‘사회적 가족’이라는 해법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사회적 가족이 잘 형성되면 오히려 관계가 역동적으로 바뀌고, 전에 없던 더 다양하고 새로운 관계의 실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사회적 가족은 혈연도 아니고 집이라는 고정된 공간에 한정되지도 않으므로 유연하게 만나고 헤어지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깊은 결사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사회적 가족에 대한 실험이 더 본격화되고 깊어지려면 그에 걸맞은 공간 환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양한 주제에 따른 공유공간, 이 공유공간을 관리하고 생기를 불어넣을 관리 주체도 필요하죠. 불완전한 1인 세대들이 사회적 가족으로 진화하려면 주택에 대한 양적 공급의 관점을 넘어 공동체가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는 섬세한 공간과 이들을 존중하고 잘 성장시킬 사회적 관심 그리고 지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6. 사회주택 내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공동체는 기획을 잘한다고 한 번에 딱 생겨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공동체는 생명 같아서 공간이라는 좋은 토양에서 싹을 틔우고 지속적인 보살핌을 통해 긴 시간에 걸쳐 자라나는 것이죠. 그렇다고 온실의 화초처럼 멸균상태를 만들고 양분만 잔뜩 준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요. 비바람 불고 천둥도 치고 가뭄도 닥치는 곳이 세상인 것처럼 공동체도 그 모든 환경을 거쳐나가면서 점차 성장하게 되고, 그렇게 성장해야 건강한 지속성을 가집니다. 물론 지원을 통해서 비교적 쉽고, 빠르고, 예쁘게 꾸밀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은 금방 시들게 마련입니다.
먼저 우리가 공간 환경을 만들고,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활동가를 키우고 지원하면, 그 후 사람들이 공간 환경 개선, 공동기금 사용 소모임 조직 등 스스로 의사결정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공동체는 성장하게 됩니다. 타인과 함께 부딪히고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의사결정 하는 훈련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7. 소셜하우징 사업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뿌듯했던 일은 무엇인가요?
생각했던 것이 기획을 거쳐 완성되고, 그 완성된 것이 다시 우리 사회에 이슈를 만들고 더 많은 사업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굉장히 뿌듯합니다. 그리고 건축 설계, 시공, 금융, 그리고 공동체를 운영하는 다양한 주체들과 협업하면서 조화롭게 일을 진행한다는 것, 한 배를 탄 팀이 되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사실이 제가 하는 일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게 합니다.
8. 사회주택, 소셜하우징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까지 주거는 부동산 자산이라는 왜곡된 산업화 시대의 가치에 함몰되어 우리를 허우적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주거는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주거를 경제적 수단으로 보는 편협한 가치를 벗어나야 비로소 생활이라는 근본적 가치가 드러날 것입니다. 주거가 안정되면 우리 삶의 많은 문제가 해소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셜하우징의 혁신과 도전은 그러한 인식의 전환을 유도하고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9. 현재 새로이 주목하고 있는 주거의 주체는?
2022.11. 다다름하우스 (사진 제공 = 이광서)
최근에 성인 발달장애인과 비장애 청년이 어울려 사는 ‘다다름하우스’라는 주택을 완공했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과제입니다. 누구나 남다른 구석 하나쯤은 있게 마련인데, 그게 보는 관점에 따라 장애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나이가 들면 신체 기능이 저하되는데 이게 바로 장애기도 하고요. 장애는 어디나 누구에나 있을 수 있는 것이죠. 저는 장애라고 하는 것을 우리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함께 할 수 있는 단어로 받아들이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지역이 다다름하우스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무척 흥미진진할 것이고요. 저는 결국 다다름하우스가 이웃을 설득하고 지역을 설득해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에 예술가들의 감성이 한몫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다른 것을 특별하게 보는 시선을 가진 사람입니다. 장애와 예술이 만나면 더 흥미진진한 공동체를 만들 것입니다.
10. 아이부키가 꾸는 꿈, 앞으로의 목표는?
저는 소셜하우징이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는 꿈을 꿉니다. 아주 작은 목소리도 선명하게 건축물에 반영되고, 그렇게 다양한 가치가 건축이 되고 건강한 공동체가 될 때 우리나라가 진정 세계를 호령하는 선진 문화를 가진 나라가 될 것입니다. 아이부키의 그렇게 되는 과정에 작은 초석이라도 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1. 끝으로, 대표님이 생각하는 문화다양성은?
모든 생명의 본성입니다.
이광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어린이 창의미술 브랜드 ‘바탕소’를 창업하였다. 그 후 미술교육연구 출판 등의 활동을 하다 사회적기업 아이부키를 창업하였다. 본인을 움직이는 힘은 새로운 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한다. 새로운 가치 하나가 우리 사회에 싹트고 자라는 것을 다수 경험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이 어려워도 더욱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