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파스타를 배울 수 있는 집 (조성익 교수) 첨부이미지 : 썸네일10-9.png

*본 게시물은 주거 문화의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칼럼입니다.

‘레몬 파스타’라고 들어보셨는지? 여름철 이탈리아에서 즐겨 먹는 이 상큼한 요리는 마늘과 레몬의 풍미를 얼마나 깔끔하게 끌어올렸는가의 여부에서 성패가 갈린다.
사회 초년생을 위한 코리빙 <맹그로브>에 살고 있는 현수가 레몬 파스타의 레시피를 전수받은 것은 같은 집에 사는 입주자인 대준으로부터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이며, 현수는 건설 현장을 담당한 디자이너다. 집이 완공된 후, 우리가 가장 궁금했던 점은 우리가 설계할 때 의도했던 대로 입주자들이 잘 살고 있는지 여부였다. 그래서 담당 디자이너인 현수가 직접 들어가 살아보면서 입주 후의 상황을 세밀하게 체크하던 차였다.

ⓒ클립아트코리아

코리빙은 사회 초년생들이 서로 모여 살면서 개인의 방은 각자 가지되, 주방이나 거실을 공유하도록 만든 집이다. 코리빙이라는 집이 등장한 이유는 단순하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삼십 대 청년층은 도심에 위치한 양질의 주거에 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개인의 방은 작게 쓰되 주방과 거실을 넓게 공유하는 집에 살면 어떻겠냐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집이 바로 코리빙이다.
다시 레몬 파스타 이야기로 돌아가면, 현수는 공용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어 먹다가 자주 마주치던 대준이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레몬 파스타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깜짝 놀랐죠. 새콤한 레몬이 주재료로 쓰인 음식이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현수는 대준에게 요리를 가르쳐줄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대답은 흔쾌히 오케이. 이 요리 교실을 통해 현수는 레몬 파스타라는 장기 요리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대준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식사를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눠보니 여행을 좋아하는 대준은 다양한 도시를 다니며 음식과 문화에 대한 식견을 지니고 있었다.
대준을 비롯해서 많은 교류가 이어졌다. 함께 식사를 했던 다른 거주자가 추천해준 책, 『평균의 종말』은 올해 읽은 가장 인상적인 책이 되었고, 한 거주자는 넘치는 사업 아이디어를 열정적으로 설명해주면서 현수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이들과 한 집에 사는 경험은 코리빙에 살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이와 같이 이제 '누구와 사는가'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클립아트코리아

그동안 집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사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떤 동네에 살고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에 사는지, 한강이 보이는 라인인지 등 집의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단연 '위치'였다. 함께 모여 사는 코리빙에서는 그동안 생각지 않았던 관심이 하나 추가된다. ‘나는 누구와 함께 살게 될까?’라는. 어차피 공용 공간을 함께 나눠 써야 한다면, 성격 좋고 배울 점 많은 이웃이면 좋을 것이다. 취향이 비슷한 친구를 만나, 운동도 함께 하고 영화도 같이 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고 말이다.

유튜브를 검색하면, 레몬 파스타의 요리법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셰프의 동영상을 보며 정통 방식을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또래의 친구가 자신의 여행 경험을 녹여내어 알려주는 음식의 스토리, 함께 요리하면서 느끼는 오감의 체험은 그 어떤 전문가나 영상 콘텐츠가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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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집과 마을, 도시는 타인과의 교류를 위해 생겨났다. 나 혼자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힘을 합치는 것이 효율적이며, 생산된 쌀을 나 혼자 소비하는 것보다는 시장에 가지고 가서 고기와 바꾸는 것이 이익이다. 필요와 이익에서 발생한 교류의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존재함을 깨닫게 된다. 광장, 시장, 마을회관이 이런 타인에 대한 교류와 이해를 돕기 위해 도시에 지어졌다. 다양한 문화가 오고 가도록 지어진 집과 도시에 살면, 나와는 다른 타인에 대한 이해와 너그러움의 지수가 사회 전반적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현대의 아파트와 단독주택 중심의 도시는 타인과의 교류보다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는데 최적화되어있다. 대부분의 주거가 이웃과의 교류를 고려하지 않고 지어지다 보니, 우연히 타인과 마주쳤을 때 느끼는 감정은 호기심이 아니라 막연한 공포감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삶에는 무한한 관심을 두지만, 타인을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점점 희미해진 것이다.

나는 현수의 거주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코리빙 같은 주거가 단순히 이삼십 대의 주거 문제 해결하는 일보다 좀 더 폭넓은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즉 집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고, 갈등을 조정하고, 그리고 자신의 제한된 시야를 타인을 통해 확장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 말이다.
특히 본격적인 자신의 집을 마련하기 전 삶의 이행기인 청년기에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영감을 얻고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일이 중요하다. 관계의 확장은 혼자 사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다. 우리는 스침을 통해 성장한다. 좋은 집은 인간의 다양성과 공동체 의식을 배울 수 있도록 우리를 성장시켜 주는 인생의 학교다.  

 

성익
공간이 변화시키는 인간의 행동을 주제로 연구하는 건축 교육자이자 건축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이며 TRU 건축사 사무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예일대학교 대학원를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를 받았다. <시몬느 플레그십스토어>, <라일락 옥상집>, <부곡 프라이데이>를 설계했으며, '매력도시 연구소'를 설립하여 개별 건물이 모이면서 발생하는 도시 현상에 관한 연구를 함께하고 있다.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은 작품, <맹그로브 숭인>을 설계하면서 발견한 생각을 모아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주거 실험>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