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주거 문화의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칼럼입니다.
얼마 전,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요즘 세대의 가족 모습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주인공 우영우네는 아버지와 딸로 구성된 한부모 가족, 우영우의 멘토 정명석 변호사는 무자녀 돌싱, 우영우의 입사 동기 권민우와 우영우의 애인(?) 이준호는 하우스 메이트, 우영우의 절친 동그라미는 부모에게서 독립한 비혼 싱글로 말이다.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정상 가족에 얽매이지 않은 채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 세태가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출된 셈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우리네 가족의 변화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1인 가구의 놀라운 상승세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 4.8%, 1990년 9.0%에 불과하던 1인 가구는 2022년 통계청 자료에서는 4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70대 이상이 18.6%로 가장 많았고, 60대 17.8%, 50대 17.1% 순으로 뒤를 이었다. 동시에 30대 1인 가구 비율은 16.6%, 20대는 15.7%로 나타났다. 연령에 따라 어떤 경로를 거쳐 1인 가구가 되는지, 그 과정에 가족의 눈부신 변화가 오롯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
ⓒ클립아트코리아
1인 가구가 되는 길 중 하나는 20대 30대 미혼 혹은 비혼층이 부모에게서 독립해서 가구를 꾸린 경우일 것이다. 이들 중에는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독립을 모두 완수한 경우도 있을 테지만, 둘 중 하나만 이룬 경우에다 ‘무늬만’ 독립을 선언한 경우까지 다양하리라 예상된다. 특별히 여성 입장에서 결혼하는 이유가 ‘부모의 감시와 통제로부터 합법적으로 독립하고자 함’이 단골 메뉴였음을 고려할 때, 결혼과 관계없이 독립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여기에는 평균 초혼 연령이 남성 33.2세 여성 30.9세로 만혼 경향이 두드러짐에 따라 생애주기 상 길고 긴 “미혼기”가 출현했음이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배우자와 사별 후 1인 가구가 되는 두 번째 길도 과거와 비교해보면 획기적 변화의 산물임이 분명하다. 1990년대만 해도 장남의 분가(分家)는 부모로부터 완전한 분리 독립이라기보다는 일시적 분거(分居)에 가깝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장남의 가족주기를 추적해보면 2세대 핵가족에서 시작한다 해도 부모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3세대 확대가족을 구성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었다.
부모 부양을 누가 책임져야 할 것인가를 두고, ‘장남의 책임’에서 ‘아들과 딸이 함께’를 거쳐 ‘가족과 국가가 분담하자’에 머무는가 했더니 지금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입장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장남의 일시적 분거 시대를 끝내고 노인 단독가구 시대로 진입한 셈이다.
세 번째 길은 이혼율 증가와 함께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으로 이혼 후 돌싱이 되어 1인 가구를 구성하는 경우이다. 이들은 재혼을 통해 1인 가구를 벗어나 복합가족의 일원이 되기도 하고, 자녀가 있는 경우는 모자 혹은 부자가족으로 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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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1인 가구가 확산하면서 주거 양식에도 다채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과거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했던 하숙집 로망을 대신하여, 20대가 밀집한 대학가 주변에는 원룸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요즘은 원룸의 고립감 및 폐쇄성에서 탈피하여, 싱글 라이프의 강점과 공동체적 삶의 장점을 결합한 셰어하우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 간 공존을 도모하는 셰어하우스, 비혼 싱글과 딩크 부부가 함께 어울리는 셰어하우스, 간호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위한 셰어하우스 등 다양한 유형의 셰어하우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연령대의 비혼 여성들이 함께 투자해서 단독주택을 짓고 ‘따로 또 같이’를 모토로 싱글 그룹 홈을 이루며 사는 것도 흥미로운 시도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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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은 새삼 가족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멋진 기회를 안겨주기도 했다. 이제 가족은 결혼이나 혈연이라는 제도적 경계나 속박에서 자유롭기를 원하면서,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관계, 자연스럽게 희생과 헌신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라는 의미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사생활을 보호받으며 자유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1인 가구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위험과 위기에 속수무책 노출될 수밖에 없는 단점을 어떻게 보완해줄 것인가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가족!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병을 같이 앓게 하고, 같은 치약을 쓰게 하며, 디저트를 더 먹겠다고 다투게 하고, 서로의 샴푸를 몰래 훔쳐 쓰게 하며, 돈도 빌려주고, 아픔을 주기도 하면서, 또 그 아픔을 달래주기도 하는, 울고 웃으며 사랑하게 만드는 작고 신비로운 끈이다.… 각자의 방문을 잠그고 살다가도, 어려운 고통에선, 모두가 힘을 합쳐 서로를 지켜주는, 그런 특별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 그것이 가족이다.” 2007년 발표한 에마 봄베크의 시에 담긴 가족의 소소한 풍경 속에서, 가족만의 진정성을 오롯이 느껴보면 어떨까.
함인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칼럼니스트. 현재는 자유칼럼과 데일리 임팩트에 칼럼을 게재하고 있다. 가족 사회학자로 한국가족의 변화에 담긴 의미를 규명하는 동시에, 세대 다이내믹 및 생애주기의 특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로 <인간행위와 사회구조>, <문화로 읽는 페미니즘>(공저), <가족과 친밀성의 사회학>(공저), 번역서로 <가족 난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