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 열풍, 스트릿댄스에 빠지는 이유 (윤대성 무용평론가) 첨부이미지 : 그림4.png

흑사병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무렵 유행하던 춤이 있다. 해골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광란의 파티, 일명 ‘죽음의 춤(Danse Macabre)’이다. 해골이 무덤에서 정말 일어났다는 괴담은 아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페스트에 걸려 절명하던 시기, 그림의 표현 방식 중 하나인 ‘알레고리(암시적 비유)’로서 춤추는 해골의 이미지가 유행한 것이다. 예컨대 15세기 스위스 벽화 모습을 담은 <바젤의 죽음의 춤(Danse Macabre of Basel)>에서는, 이 해골의 손에 교황부터 서민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이끌려 간다. 신분과 지위에 관계없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런데 왜 하필 ‘춤’이었을까?

죽음의 춤, 요한 루돌프 파이어아벤트, 1806년, 스위스 바젤(출처=한겨레)

 

Mnet의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2021년 하반기를 그야말로 강타했다. 줄여서 ‘스우파’는 여성 스트릿댄스 크루 8팀이 배틀을 벌이는 컴피티션이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Mnet

 

댄스씬의 쟁쟁한 여성 크루 YGX, 라치카, 원트, 웨이비, 코카앤버터, 프라우드먼, 홀리뱅, 훅 등이 출연해 1대 1 배틀부터 팀별 퍼포먼스까지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놀라운 사실은 화면의 가장자리에서 가수를 빛내던 댄서들이 독자적으로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10주 연속 비드라마 부문 화제성 1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유튜브 ‘스우파’ 관련 콘텐츠의 누적 조회수는 4억뷰에 이르고 전국 투어 서울 공연은 1분 만에 매진되었다 하니, 열풍이란 말이 과하지 않다.

2021년 11월 21일에 열렸던 '스우파 ON THE STAGE' ⓒMnet

 

스트릿댄스는 이름만 들어도 제도권 밖이 고향이다. 댄스 스튜디오나 정식 무대가 아니라 길바닥에서 태어나 노상에서 자라났다. 근본이 저항이자 비주류 문화 정체성의 표출이니, 무용수 학력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에서 여전히 제도권 춤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춤이 다 춤이지 뭐가 다른가도 싶지만 그것은 ‘소설이나 시나!’ 혹은 ‘다빈치나 피카소나!’ 정도의 당혹스러운 장르 대통합이다.
 
대중무용으로 수렴돼 온 스트릿댄스와, 흔히 순수무용이라 불리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은 가지고 있는 문화와 지향점이 매우 다르다. ‘발레’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왕립 아카데미를 세우면서 꽃을 피운, 이를테면 ‘고귀한 혈통의 마드모아젤’이다. 반면 발레의 인위적인 몸 사용에 반기를 들면서 출발한 ‘현대무용’은 개념과 의미를 중시하는 소위 ‘먹물’들의 춤이다. 예컨대, 피아노 앞에 앉아만 있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그냥 서있어도 작품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스트릿댄스의 매우 강렬한 신체 수축과 이완을 수용하기도 하는데, 단 그것을 통해 ‘의미’와 ‘메시지’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뜻없이 몸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무용은 다수가 그 이칭을 ‘전통춤’으로 생각하는 만큼 종가집 며느리와 같은 존재감을 지녔다. ‘승무’, ‘살풀이’처럼 과거의 맥을 잇는 모습을 떠올릴 텐데, 실제론 생각보다 그 스펙트럼이 넓다. 특히 요즘 세대의 한국무용은 하체를 기반으로 호흡하는 전통적 메소드를 활용해 새로운 동작을 고안하고 작품을 만드는 데 가치를 둔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 순수무용은 최근 장르에 관계없이 ‘컨템포러리 댄스’라는 현대적, 실험적인 집합으로 묶이고 있다. 해외에선 더 넓게, 스트릿댄스와 순수무용의 교집합이 커지기도 했다. 일례로 프랑스에선 국립안무센터 수장 자리에 스트릿 기반의 안무가를 임명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주로 현대무용의 정신을 받아들인다.
 
반면 ‘스우파’가 다루는 것은 댄스씬의 비주류 문화이다. 스포츠에 가까운 배틀 문화를 조명하면서 거칠게 살아 숨쉬는 에너지와 정제되지 않은 즉흥성을 강조한다. 출연자들은 기원전 수메르 점토판에도 써있는 ‘요즘 애들은!’ 타박이 수십 개의 활용형으로 쏟아질 만한 외형과 직업을 가졌다. 게다가 ‘여자’. 코 뚫고 입술까지 뚫고, 패싸움하듯이 과격한 춤을 춘다. 흔히 소비당해오던 성적인 판타지도 없다. 에두아르 마네가 고전적인 누드화를 비꼬기 위해 (관람자인 남성을) ‘째려보는’ <올랭피아>를 그렸다면, ‘스우파’ 속 그녀들은 ‘의식조차 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나는 엉덩이가 아니라, 사고할 수 있는 뇌와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가진 강한 여성”이라고 외치면서, 날 때부터 만인에게 주어진 몸뚱이 하나로 돌진한다. 세상이 가치 있다고 말한 적 없는, 그렇다고 주목받지도 못할 댄서의 길을 자기 신념을 따라서 그냥 걸어온 사람들이다.

 

 
‘스우파’의 출연자들이자 그 화제성을 이끄는 ‘MZ 세대’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상대적으로 최근이다. Z세대가 대체로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말하는 것이니 주목의 대상이 되기엔 과거에 너무 어린 나이였다. M세대는 1980년대 초반 이후에 태어난 Z세대의 언니 오빠 격으로 몇 년 전부터 이들과 묶여 불리기 시작했다. 통칭하는 ‘MZ 세대’란 말은 기억하기로 코로나 불과 1~2년 전부터 사회, 정치적 관심을 받았는데, 특히 작년부턴 트렌드를 주도하는 MZ의 취향과 성향을 잡기 위해 온 사회가 혈안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10대, 20대 집단에 이만한 영향력이 쥐어진 적이 있었는지, 하위문화로 불리던 비행(非行) 소집단의 정체성에 사회가 이토록 긍정적 관심을 쏟은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역사 속의 전염병 사태가 기존의 권위를 해체시킨 깨달음이 이것이다. 바젤의 <죽음의 춤> 벽화에선 권위 있는 성직자든 평범한 사람이든 해골의 손을 잡고 간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코로나는 예기치 못한 급발진의 촉매가 되어 과격한 방식으로 관습과 관행을 무너뜨리고 있다. 젊은이가 기성세대만 못하지 않고, 여자와 남자가 다를 것 없고, 유명인사와 일반인이 결국 다 사람이다. 변화의 물결은 어느 방향으로도 서서히 오지만 사회의 지각변동에 대한 이토록 광범위한 수용을 세계적 위기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넓게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연장이지만, 인류는 분명 방향을 틀었고 그것은 곧 새로운 언어로 규정될 것이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Mnet

 

굳이 이 시점에, 춤에 열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죽음이 이토록 가까운 세상이기에 춤인 것이다. 춤은 ‘살아있음’을 상기하게 만드는 생명 그 자체이고, ‘죽음의 춤’ 알레고리처럼 병존할 수 없는 죽음과 삶을 예술은 하나로 녹여내는 힘을 지녔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처절한 생존의 여정이 ‘춤 예술’로 승화되는 서사는 생존이란 말이 피부에 와닿는 이 시대에 더욱 큰 울림이다.
 
주목받지 못하던 것, 주류가 아니었던 것들이 부상한다. 노인의 연륜만큼 젊은이의 지혜에 기대를 거는 사회이다.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한 늙은 어부를 보살피는 것은 작은 아이다. 마찬가지로 중년 여인이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키오스크 주문하는 법을 묻는다. 기성세대의 전유물이던 지혜와 깨달음 “그래도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다(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라는 늙은 어부의 처절한 자기확신과 투쟁의 정신은 이제 젊은 춤꾼들의 메시지가 되었다.
 
‘스우파’ 전에도 숏폼 콘텐츠는 춤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제는 노래에 딸린 춤이 아니라, 댄서라는 직업을 인식하면서 노제가 안무한 ‘헤이마마’ 춤을 추고, 효진초이가 있는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에 간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30년 전 대사인데 여전히 와닿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숨이 멎고 차가워져서 죽게 되지.
이쪽으로 와서 과거의 얼굴들(고인이 된 평범한 사람들)을 봐라.
… 잘 들어보면 그들의 속삭임이 들릴 거란다.
자, 귀를 기울여 봐, 들리니?
 
카르페,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독특한 너의 인생을 살아라!”

윤대성(월간 댄스포럼 편집장)
심리학과에서 뇌를 들여다보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무용씬의 한가운데 착지했다. 그래서 때론 외부자의 시선으로, 때론 내부자의 시선으로 공연예술을 바라보고 소개하는 ‘양면’ 프린터의 기능을 갖게 됐다. 융통성 없는 성격에 열심히 살다보니 한국춤평론가회 최연소 회원이 되었고, 남성미 풍기는 이름과는 달리 ‘여자’라는 것을 경력 10년쯤 되니 관계자들이 알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