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설이 다가오면 하루빨리 빨리 고향에 가기 위해 기차표 버스표 등 물리적인 노력보다 더 빠르게 마음은 고향으로 달려간다. 몸은 고향에 없지만, 마음은 이미 도착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막상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을 만나면 하루를 지나지 않아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경험을 반복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그 이유를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알아본다.
설 이름에 대한 유래는 세 가지 정도가 있다. 낯설다는 의미인 ‘설다’, 나이를 뜻하는 ‘살’ 그리고 새로운 날을 의미하는 ‘선날’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1년 내내 나의 삶을 살다가 갑자기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니 ‘낯설 수밖에 없는 날’이 설날인 것이고, 물리적인 시간을 따라 신체도 한 살을 더 먹기도 하고, 작년을 지우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것이라 세 가지 어원 모두가 모여 설날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어원의 3가지 측면은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는 불편함과 부담감 그리고 가족 간에 상처를 만들어낼 자극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에 따른 심리적 갈등과 해결에 대해 알아보겠다.
첫째, ‘나이’를 의미하는 ‘설’날은 부모의 입장에서 ‘걱정’을 가져다준다. 자녀로서는 ‘나잇살’을 먹지만, 부모에게는 ‘나잇값’을 언급하게 된다. ‘나이가 찾으니 결혼해야지’, ‘나이를 그렇게 먹고도 그러니’, ‘더 나이 먹기 전에 취업을 해야 할 텐데’ 이런 말로 인해 부모 세대와 자녀세대는 나이에 대한 충돌을 경험하게 되고, 심리적 거리가 가장 멀어진다. 가장 편해야 할 부모님이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말들이다.
명절 잔소리 ⓒ 클립아트
부모의 입장에서는 나잇살에 따른 학업, 졸업, 군대, 취업, 결혼, 자녀에 대한 것들이 꼭 이뤄내야 할 삶의 과업이라 여기고 그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만이 정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나잇살에 맞는 나잇값을 명절 때마다 토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속도와 삶의 목표를 자기 기준에서 결정하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부모의 말들이 쇳덩이보다 더하고, 화살보다 더 깊게 와서 박히는 것이다.
1971년 UCLA 심리학과 알버트 메라비언(Albert Mehrabian) 교수의 ‘무언의 메시지(Silent Message)’에 보면 의사소통 이론이 나온다.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미지라고 이야기 한다. 심지어 시각적 이미지가 55%고, 청각적 이미지는 38%다. 정작 ‘말’ 자체는 7%밖에 되지 않는다. 부모의 표정과 말투가 훨씬 중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설 명절은 자녀보다 부모가 말과 생각의 변화를 가질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무거운 단어와 쓰디쓴 표현들을 거두고, 솜사탕처럼 포근하고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말을 건네기에 좋은 기회의 날이다. 자녀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보고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낯설다’는 의미에서의 ‘설’날은 부모세대와 과거방식과 자녀세대의 현재방식이 충돌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만 올라가도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본인 등록금에 일조하는 이들도 많다. 더군다나 고향에서 멀리 떠나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부모와 20년을 함께했던 문화를 벗어버리고 직장에서 가지는 ‘사회적 문화’를 빠르게 흡수한다.
대리, 과장, 부장과 같은 직위를 부여받고 생활을 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가면 = 페르소나(persona)'라고 한다. 이런 직위에 맞는 가면을 1년 내내 쓰고 있다가 설날이 되어서 부모가 계신 고향에 돌아오는 순간 ’익숙했던 가면‘을 벗고 이제는 오히려 낯선 ’아들과 딸 가면‘을 써야 하는 것이다.
ⓒ클립아트코리아
이러다보니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들과 딸을 부르고 싶기도 했고 그리웠겠지만, 말에는 감정과 태도가 붙어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위아래를 드러내는 표현들을 하게 된다. ’씻어라‘, ’먹어라‘, ’나와라‘, ’들어라‘ 당연히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자녀의 입장에서는 1년 내내 익숙했던 자신의 직위에 맞는 가면이 아니라 이젠 낯설어버린 아들과 딸 가면을 써야하니 억색하고 힘들 수 있다.
심지어 결혼을 했다면, 여러 가지 가면을 쓰면서 번아웃(burnout)에 빠지는 문제점도 생긴다. 집에서는 아내와 남편가면을 자녀 앞에서는 부모가면을 설에 고향에 내려가서는 시댁에서는 며느리 가면을 친정에서는 딸 가면을 써야하니 내가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머리와 몸 모두 지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설날이 다가올 때 미리 자신의 가면에 대해 생각하고 그 역할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준비된 상황과 준비 없이 맞닥뜨리는 상황은 에너지 소모가 하늘과 땅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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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설날이라는 개념에서 오는 심리적 문제가 있다. 바로 작년에 털어내지 못한 습관이나 감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시간이 바로 1월과 2월이다. 심지어 1월에는 작년 연도를 사용해서 실수하거나 말을 할 때도 작년과 새해를 혼동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난다. 1월은 영어로 'January'다. 이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로마신화 중 문의 신 ‘야누스(Janus)'에서 왔다. 다시 말하면 작년 12월 문과 새해 1월의 문. 작년과 새해 두 얼굴을 가진 달이 바로 1월이다.
로마 바티칸박물관의 야누스 두상(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이처럼 몸은 새해에 와 있지만 생각과 마음은 아직도 작년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리가 되지 않은 말을 설날에 주고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 생각과 마음 모두가 행동보다 뒤처져서 엇박자를 타다 분위기가 싱숭생숭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설날을 기준으로 작년에 두고 와야 할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설날에 대한 세 가지 유래로 심리학적인 관점에서의 문제점과 그에 해당하는 갈등해결책을 살펴봤다. 설 명절에 부정적인 기억을 끌고 오는 날이 아니라 추억을 쌓는 날이 되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