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전후로 하여 이 주 정도 경주에서 지내다 왔다. 연고가 전혀 없는 경주에 올해만 세 번째로 머물렀던 이유는 단지 경주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곳의 고요함을, 볕이 따뜻한 오후를, 시내 한복판에 늘어선 거대한 무덤들을.
경주의 중앙도서관에서, 크고 작은 카페들에서, 시내에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숙소에서 다음 시집의 원고를 마무리했다. 신기하게도 경주에서는 글이 잘 써졌다. 나는 이 도시에 깃들어 있는 시간의 흔적들이 몹시 좋았다. 신라 천 년의 역사를 이룩한 왕들이 묻혀 있는 곳이므로 신성하게 보존될 수 있도록 고요함을 유지해달라는 안내방송이 대릉원에 울려 퍼질 때에는, 앙상한 가지들의 아래에서 순간적으로 천 년 전의 경주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경주 대릉원 ⓒ경주시청
혼자 일하고 혼자 먹고 혼자 걸으며 시간을 보내다 설을 맞이하게 될 줄 알았으나 서울과 부산에서 친구들이 놀러 왔다. 함께 불국사에 들렀다가 각자의 집에서 싸 들고 온 명절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마침 지난 연재에 적었던 이른바 ‘대안 가족’의 명절 풍경이었다.
다음 날에는 다 함께 국립 경주 박물관을 찾았다. 진행 중인 특별전의 제목이 무척이나 우리의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 - 다름이 만든 다양성”이라니, 한국에 최초로 들어온 외래계 문물이라니. 외계인이 자신의 문물을 가져다준다면 지금의 우리가 느낄 충격과 비슷한 강도의 놀라움을 당시의 사람들이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도착한 전시장의 풍경은 우리의 예측보다도 더욱 대단했다.
ⓒ국립경주박물관
서역인을 묘사한 것이 분명한 웅장한 모습의 석상들, 카자흐스탄 혹은 동유럽의 것과 유사한 형태의 황금보검, 실크로드를 타고 넘어온 것이 분명한 유리구슬과 다채로운 토기들, 심지어 백인의 모습을 한 원성왕릉의 거대한 무인상은 무려 왕릉을 지키는 자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와 같은 흔적들로 미루어 보아 고대 신라는 사실 굉장히 타 문화에 포용적인 국가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내면의 보수성은 강화되는 것이 아닐까? 조금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존재들에게 배타적으로 구는 태도가 일상화되고 있는 지금보다, 오히려 고대 신라에서 더욱 열린 태도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블랙 미러>시즌3 에피소드 ‘샌 주니페로’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국의 SF TV 시리즈 ‘블랙 미러’ 단편 중 시즌3의 ‘샌 주니페로’는 나의 최애 에피소드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내용의 핵심을 짧게만 말해보자면 ‘샌 주니페로’는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한 공간 ‘샌 주니페로’에서 만나게 된 두 명의 여성, 요키와 켈리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곳은 퀴어가 더 이상 ‘queer(이상한)’라고 불릴 필요조차 없이 다양성이 인정받는 곳이다. 그러나 긴 시간을 살아온 그들의 마음속에는 과거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삶으로부터 받아온 상처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요키와 켈리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떠난다. ‘블랙 미러’ 시리즈 중 몇 안 되는 해피 엔딩이다.
<블랙 미러>시즌3 에피소드 ‘샌 주니페로’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블랙 미러’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미래의 시간이 언젠가 도래하여 지금의 시기를 돌아보는 상상을 해 본다. 아마 어떠한 부분은 고대 신라보다도 못하다 여겨질지 모르겠다. 사실 비혼주의자가 소수적 삶의 형태로 여겨진다든가, 결혼이라는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랑의 형태는 이성애뿐이라든가, 성별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분류로 나눈다든가, 하는 일들이 기이하게 느껴질 시대의 도래는 단지 SF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서구권에서는 빠르게 변화 중인 사회의 모습이다. 고대의 신라가 서구 문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체화했듯 이러한 변화의 흐름 역시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하지만 확고한 믿음을 가져 본다.
경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숱한 무덤들을 지나왔다. 역사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시간은 어쩌면 찰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함께하게 된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모습을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