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인터뷰에서는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달의 첫 번째 인터뷰에서는 지난 해 클라이밍 에세이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를 통해 '인생운동' 클라이밍과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던 설인하 작가를 만나봤습니다.
1. 작가님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건 없지만 해야 할 것은 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가야 하니까 초중고를 다녔고, 누구나 다 가니까 대학에 가야 하는 줄 알았고, 누구나 취업을 해야 하는 줄 알고 취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응당 가야 할 길로 차근히 살아가다보니 어느덧 직장 생활 8년차가 되어버린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2. 지난 해에 5년간 취미로 즐겼던 클라이밍 경험을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라는 책으로 출간하셨는데요. 해보셨던 많은 운동들 중 왜 클라이밍이었을까요?
클라이밍 에세이 <일단 한번 매달려보겠습니다> (제공=위즈덤하우스)
제가 운동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은 20대 후반부터였는데요. 숨만 쉬어도 체력이 정점을 찍던 20대 초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니 점점 가만히 있어도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거든요. 운동을 딱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것 또한 제가 인생에서 겪어야 할 수많은 '하고 싶진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수영, 필라테스, EMS 트레이닝 등 이런저런 운동에 많이 도전해봤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운동들을 거쳐서 클라이밍을 선택한 이유는 이 운동이 가장 재미있었기 때문이에요. 수영이나 필라테스를 할 때는 그 운동을 하기 위해 할애한 그 시간들을 어떻게든 버티고 견디는 느낌이었다면, 클라이밍을 할 때는 그런 '견디는'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예를 들어 암장에서 운동하는 동안에는 저는 시계를 잘 안봐요. 그냥 흠뻑 빠져서 몰입해서 벽에 매달리다 보면 어느새 2시간, 3시간이 훌쩍 지나있고... 힘이 다 빠져서 더는 매달릴 수 없을 때쯤에서야 시계를 보면 '어,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어?'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열심히 운동해서 몸은 기분 좋게 지쳐있는 상태에서 '내가 이만큼이나 몰입해서 시간 가는 것도 잊고 운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의 뿌듯함은 오직 클라이밍을 할 때만 느껴볼 수 있는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재미있고, 시간도 금방 가고, 그러면서 체력도 생기니 제 입장에서는 다른 운동보다 훨씬 더 애착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3. 작가님은 어떤 계기로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됐나요? 몇 년간 꾸준하게 지속해온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설인하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심심해서'였던 것 같아요.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당시 저는 20대 후반이었는데, 직장 생활도 한 2,3년 정도 해서 모든 상황이 굉장히 안정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참 간사한 게, 20대 초반에 인생이 불안정하고 질풍노도의 시기였을 때는 그렇게 안정을 갈구했었는데, 막상 고생고생해서 손에 넣은 그 안정이 너무 지루한 거예요.
친구도 별로 없고, 혼자 어디 나다닐 만큼 활동적인 성격도 아니고. 쉬는 날에는 늘 집에 누워서 뒹굴거리는 것도 지겨워질 때쯤에 당시 한창 유행하던 소셜 커머스 사이트에서 클라이밍 원데이 클래스를 발견했습니다. 평소에 한 번 쯤은 해보고 싶었던 운동인지라 바로 클래스를 신청했고, 그 날 체험 수업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집 근처의 암장을 찾아 회원 등록을 하고 수업을 신청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됐습니다.
이후로 몇 년간 꾸준하게 이 운동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한 마디로 재미였던 것 같아요. 왜, 상대성이론이라는 게 있잖아요. 공부할 땐 시간이 잘 안 가지만, 게임을 할 때는 시간이 금방 가는? 클라이밍은 제가 시간을 잊게 할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 같은 운동이에요. 분명히 운동이긴 하지만 매일 도전해야 할 문제가 출제되고, 그런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는 게 게임의 퀘스트를 해결해가는 과정하고 비슷해요. 그래서인지 게임처럼 중독성이 있었어요.
ⓒ 클립아트코리아
4. 스스로를 ’제자리걸음을 맴도는 거북이 클라이머‘라고 소개하시던데요. 주변에서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빠른 습득력으로 일취월장하는 분들을 보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다른 운동에 비해 클라이밍을 오래 꾸준히 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운동을 할 때만큼은 남과 제 자신을 비교하지 않을 수 있어서인 것 같아요.
앞에서도 저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하나씩 해결하는 형식으로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런 '해야 하는 것'의 기준은 항상 제 주변의 저와 비슷한 타인의 삶을 참고하며 만들어 왔었어요. 그만큼 평소의 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혹시라도 그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나, 너무 튀는 것은 아닌가.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제 인생의 많은 우울한 고민도 '나는 왜 남들처럼 살지 못하지?'라는 부분에서 비롯된 것이었고요.
그런데 클라이밍을 할 때는 어쩐지 그런 것들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을 신경 쓰기보다는 오직 제 자신에게만 포커스를 두게 되거든요. 남들을 신경 쓰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어차피 다른 사람과 저는 타고난 신체 조건도, 키도, 근육량도 다르니까. 심지어 암장에서 같은 볼더링 문제를 푸는 타인을 보더라도, 그의 정답을 제가 참고는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게 저의 정답은 아닌 거죠.
비교의 대상은 오직 과거의 자신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암장에 방문했을 때보다 오늘의 내 실력이 조금 더 성장했나? 내 컨디션이 그 때보다 조금 더 괜찮은가?'
그리고 제가 나이가 30대 중반이잖아요. 그래서인지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습득력이 빠른 친구들을 봐도 별로 저랑 비교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좀 있어요. 저보다 어리고 습득력이 빠른 친구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저의 경쟁 대상은 아니니 별로 열등감을 느끼거나 하진 않아요. 오히려 멋진 등반을 보여주면 눈이 즐겁고 고맙죠. 어쨌든 암장에서는 모두가 서로의 퍼포머이자 관객이니까요!
5. 실력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게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인 것 같은데요. 이 운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자신만의 목표가 있다면?
ⓒ 설인하
저는 평소 굉장히 안정 지향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인데요. 살아가면서 작은 것도 하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는데, 이렇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과거가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실패에 대한 극도의 불안이 있는데, 제가 너무 일찍부터 삶에 안정성만 추구하니까 주변에서 안타까워하기도 했어요. 어른들은 예전부터 제게 한살이라도 젊을 때 좀 더 많은 것에 과감히 도전해보고 실패해보라고 하는데, 그런데도 저는 그게 너무 무서운 거예요.
클라이밍은 그런 제게 처음으로 실패에 대한 면역을 갖게 해준 운동이었던 것 같아요. 저의 존버로그 유튜브 영상을 보면 아시겠지만, 클라이밍을 하다보면 한번 만에 오르는 문제를 푸는 것은 실력 향상에 별로 도움이 안되거든요. 한 단계 레벨업을 하려면 수없이 시도하고 떨어진 끝에 마침내 완등할 수 있는 문제에 도전해야 되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실패에 익숙해지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었어요. 이 세계에서는 실패 한 번 한다고 해서 뭐 세상이 무너질 것도 아니고. 그냥 실패 자체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거든요.
제가 참 좋아하는 문장이 있는데요. 김동조 트레이더의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의 책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우리가 목표로 둬야 할 건 최선을 다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경기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슬아슬하게 지는 경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그런 아름다운 경기를 할 수 있다.
그런 경기를 계속하다 보면 우리 자신에 대해 점점 깨닫게 된다."
원래도 좋아하는 문장이었지만, 클라이밍을 하면서 저 문장에 좀 더 공감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클라이밍을 통해 이렇게 아슬아슬한 패배의 경험을 반복하면서 늘 조금씩은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실패해도 스스로를 다그치는 대신 '괜찮아! 한 번 더 하면 되지 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요. 이렇게 좋아하는 운동을 하면서 앞으로도 저 자신하고 늘 사이좋게 지내는 게 제 나름의 목표입니다.
6. 글과 영상으로 클라이밍에 대한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운동을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요? 존버로그를 찍으면서 일상의 특별한 변화가 있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이건 저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클라이머들의 특성 같아요. 클라이머들은 유독 영상을 찍어서 기록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활발한 편인데요. 아마도 클라이밍이 비주얼적으로 굉장히 있어보이는 운동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실제로 암장에 가 보시면 상당히 비주얼적으로 영감을 주는 요소가 많은 것을 보실 수 있는데요. 알록달록한 홀드가 붙어 있는 암장의 벽이나, 컬러풀한 디자인의 운동복, 암벽화, 초크백 등등.. 그래서인지 찍기만 해도 그림이 되는 느낌이라 .. 암장에 가시면 다들 삼각대를 설치해두고 등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기 바빠요.
실제로 인스타그램에서 #클라이밍 #암벽등반 과 같은 해시태그로 검색을 해보시면 영상이 진짜 많이 나올 거예요. 이렇게 영상을 남기는 이유는 남들에게 나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성장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다만 제 영상은 다른 클라이머들에 비해서 조금 더 과정 중심적이긴 해요. 저는 클라이머로서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다른 클라이머들처럼 멋진 무브가 가득한 완등 영상을 찍기는 어려웠어요. 보기만 해도 '우와!' 소리가 나는 그런 동작들이 가능한 영상을 올리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니,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존버'하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다 찍어서 기록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존버로그'라는 컨셉의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이렇게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과정 자체가 마치 오답노트같이 작용해서, 제 등반 실력을 향상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도 했고요. 영상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제가 떨어졌던 과정이나 안타깝게 놓쳤던 과정을 좀 더 상세하게 복기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존버로그를 그렇게 열심히 찍을 수 있었던 이유는.... '좀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서?'
사실 클라이밍을 직접 해보지 않은 분들은 제 존버로그 영상 초반에 도전에 계속 실패하는 모습들만 보고서 '이건 도저히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실수도 있는데요, 오히려 클라이밍을 한 번이라도 해보신 분들이라면 제 영상을 보고 다 같은 생각을 하실 거예요.
'좀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한번만 더 매달려보면 될 것 같은데?'
이로 인한 일상의 변화로는 옷을 살 때 백 프린팅이 되어 있는 옷 위주로 사게 되었고요. (영상에 잘 나오기 위해서!) 그리고 어려운 볼더링 문제를 봤을 때 예전에는 '아, 안되겠다 다른 거 하자.'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어, 이거 유튜브 감인데?' 하고 몇 번은 더 매달려 보는 근성이 생긴 것 같아요.
7. 지금까지 다양한 암장을 가보셨는데요. 이렇게 주기적으로 센터를 바꿔가며 클라이밍을 하는 이유가 있나요? 새로운 공간을 대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클립아트코리아
일단 주기적으로 센터를 바꿔가며 클라이밍을 하는 이유는 제가 책에서 쓴 것처럼 가끔씩 찾아오는 '클태기(클라이밍이라는 운동에 잠시 권태기가 오는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인 게 커요. 늘 같은 곳에서만 운동하면 살짝 지겨울 수 있는데, 그럴 때 다른 암장에 가면 좋은 자극이 되거든요.
암장마다 스탭이 다르고, 따라서 볼더링 문제들도 출제하는 선생님들이 다르신데요, 가던 데만 계속 가다 보면 문제가 익숙해져서 진짜 난이도보다는 좀 쉽게 느껴지더라구요. 제가 맨날 다니던 암장에서는 4단계까지도 풀 수 있었는데, 다른 암장에 가면 처음에는 고작 2단계의 난이도도 너무 어렵게 느껴져요.
그래도 그런 낯섬을 극복하고, 한두시간쯤 지났을 때에는 새로운 암장의 문제들과도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어요. 그럴 땐 뭔가 제 안에서 한 가지 어려운 고비를 극복한 듯한 느낌도 들고, 그런 감정이 제게 또 새로운 성취감을 주며 리프레시할 기회를 주기도 해요.
8. 클라이머들은 실력 여하를 막론하고 처음 보는 사람이더라도 함께 응원해주는 문화가 있다고 들었어요. 이런 문화가 자리 잡게 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이런 응원을 받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클립아트코리아
제가 책 속에서 클라이밍은 '지,덕,체를 갖춘 운동'이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요. 이 중에서 '덕'이 바로 클라이밍의 가장 큰 숨겨진 매력이 아닌가 합니다.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사람들한테 시달릴 때면 어두운 마음으로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한 것인가?' 하는 성악설을 믿다가도, 암장에 가서 운동하는 클라이머들을 만나면 그 모든 어두운 감정들을 싹 다 잊고 '사람들은 원래 착한 존재인가봐!' 하고 성선설을 믿게 될 정도예요. 어쩜 그렇게 사람들이 착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뿜하는지!
암장에 모인 우리가 어떻게 그토록 서로를 순수하게 응원할 수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은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가 아니라서 더 순수하게 응원해줄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은 기본적으로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고, 눈앞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 저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잖아요. 암장에서 누군가 암벽을 오르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 등반자가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아마도 단 한 명도 없을 거예요. 우리는 언제나 서로가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기거나, 지더라도 최소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하길 바라요. 그런 마음에서 클라이머들은 서로에게 아낌없이 '나이스!'를 외치는 것이 아닐까요.
9. 작가님의 책을 보신 독자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었나요?
개인적으로는 "나도 해볼 수 있을까 하던 운동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게 만든 책" 이라는 리뷰가 가장 마음에 남았습니다. 비록 제 책의 가장 첫 장이 '당신은 클라이밍을 하면 안된다'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누군가 용기 내어 발걸음을 해 준다면 기쁠 것 같거든요.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에 대해서 꼭 누군가처럼 잘 하지 않아도, 멋지지 않아도, 그냥 한번 해 볼 수도 있는 운동이라고 그렇게 좀 더 친근하게 받아들여줬으면 해요.
ⓒ클립아트코리아
10. 학창시절에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고백하셨는데요. 최근에는 운동하는 여성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나 관심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어떤 때 체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본문에 제가 학창시절에 운동을 싫어했다고 쓰긴 했는데, 지금에 와서 다시 그 시절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제가 싫어했던 '운동'은 정확히는 '운동'이 아니라 '체육'이라는 교과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서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운동장에서 줄 맞춰 체조를 하고, 이런저런 수행평가를 받기 위한 체육을 하는 것이 싫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뛰어노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좋아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더라구요.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슥슥 금을 그어서 뛰어노는 땅따먹기라던지, 콘텐치빵 같은 게임을 할 땐 잘 못하면서도 빠지지 않았고, 오재미나 고무줄 놀이를 할 때도 잘 못해서 깍두기 취급을 받으면서도 빠지지 않고 나갔어요. 산으로 밤을 따러 다니거나, 개울가에 가서 뛰어노는 것도 좋아했고요. 놀이터에서 한 발 뛰기 같은 걸 할 때에도 저는 꼭 끼어서 놀았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배드민턴에 꽂혀서 점심시간마다 라켓을 들고 달려나가기도 했고요.
성인이 되어 클라이밍을 하면서 더더욱 느낀 것은 저는 늘 몸을 움직이는 것에 재미는 느꼈지만, 그것이 강제적이거나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이 싫었을 뿐이라는 것이었어요. 몸을 움직이는 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고, 재미있다면 얼마든지 여자들도 운동을 하면서 '놀' 수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여자들이 운동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몸매관리나 다이어트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에는 좀 더 많은 여자들이 그냥 운동이 '재밌어서' 하는 모습들에 더 주목해주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TV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모여서 축구를 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 있잖아요. 여자들이 단순히 예뻐보이기 위해 운동한다기보단, 그저 모여서 몸을 움직이면서 뭔가를 하는 게 재밌고, 그 재미있는 걸 좀 더 잘 하고 싶어서 체력 훈련을 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11. 혹시 클라이밍 말고 도전하고 싶은 다른 운동도 있으신가요?
서핑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물을 좋아하지만 늘 물이 무섭거든요. 서핑을 하려면 코어 근육이 중요하다던데, 클라이밍을 열심히 해서 코어가 단단해지면 그런 운동에도 한 번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12. 마지막으로 자신을 포함하여 존버중인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정말 버티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수없이 실패하고, 재도전하면서 결국 '완등'해내는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멋진 사람이니 너무 지나치게 무리하거나 스스로를 혹사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좀 더 잘, 오래 버틸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제가 제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있는데요.
"결국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한 뼘씩만 더 나아가면 된다.
비록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다시 시작한 나는 분명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을 것이다."
어차피 인생 길고, 암장의 벽이 어디 가지 않듯이 직장도 어디 가지 않으니까요. 좀 더 오래 가는 직장 생활을 위해서 직장인들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냥 어제의 나 자신보다 딱 한 뼘씩만 나아지면 되는 거 아닐까요.
설인하
어쩌다 보니 30대 중반 8년차 직장인.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공상은 많이 하지만 실제의 삶은 모험과는 영 거리가 멀다. 30대가 되자마자 찾아온 ’인생 노잼‘ 시기에 재미를 만들어보고자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일상에서 매 순간 드라마틱한 일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암장에서 경험하는 작지만 확실한 성취 덕에 그럭저럭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서른 무렵에 시작한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며, 2021년 10월 평범한 직장인 개미 투자자로서의 경험을 담은 투자 에세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브런치 : @seul-et-un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