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인터뷰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애니메이션, 게임' 테마의 첫 번째 인터뷰에서는 채식 만화 <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를 연재하고 있는 하토 작가님을 만나봤습니다.
1. 작가님 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많은 만화가 하토입니다. 네이버 시리즈에서 〈안녕, 나는 너를 좋아해〉를 연재했고, 비로맨스 여성서사 앤솔로지 「여명기」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세상은 거대한 거짓말〉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2020년부터 독립연재플랫폼 ‘딜리헙’에서 채식을 주제로 한 일상 요리 만화 〈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 <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 연재중인 ‘딜리헙’
2. 채식 요리 만화 <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를 제작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작가님의 경험이 담긴 이야기인가요?
만화에서 주인공 ‘두연’이 ‘어떻게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어요. 저도 살아오면서 채식 관련 서적을 읽기도 하고, 동물의 죽음을 직접 보고 놀라기도 하고, 여러 정보를 접하고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러면서 마음에 짐이 점점 커지다가 어느 날 이제는 해야겠다, 하고서 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채식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로 자연스레 이런저런 정보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관련한 이슈를 알게 될수록 채식이 정말 많은 문제와 얽혀있더라구요. 채식을 하는 이유를 크게 나누자면 인간의 건강, 동물권, 환경 문제인데, 이 세가지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근본적으로 이 모든 게 동물로서 꼭 필요한 ‘먹는다’는 행위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이었어요. 그런데 이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아야 할 정보인데 알 기회가 너무 적어서 이를 알리고 싶기도 했고, 이를 둘러싼 흥미로운 관점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작품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3. 만화 속 인물들이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모두 여자인 것을 알았을 때, 제가 성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혹시 이런 부분들은 의도하신 걸까요?
<두.잘.잘> 속 캐릭터들 © 하토 작가
아마 머리 길이가 짧거나 치마를 입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나오는 캐릭터가 ‘모두’ 여자라는 것 때문에 헷갈리셨을 것 같아요. 캐릭터 디자인과 그림 면에서는 실제 인간 여·남 간 외모에 큰 차이가 없고, 이야기에서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성별 간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그리고 있어요. 이미지가 주는 힘이 크다고 생각해서 되도록이면 캐릭터들을 성 고정관념에 기반해 그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작품을 제작할 때 여·남 간 비율을 어느 정도 맞춰야 한다는 불문율 같은 게 있는데 여성의 시선으로 여자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것에 더 집중해서 그리고 싶어서 등장인물들을 모두 여성 캐릭터들로 채웠습니다. 제가 원한 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거였지만 독자님들께 ‘어라? 이 캐릭터가 여자야? 왜 남자라고 생각했지?’ 하고 인지하는 순간이 있어도 좋은 것 같아요.
4. 만화 속 채식 요리 레시피들이 인상적입니다. 채식도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혹시 요리들은 모두 직접 만들어보고 쓰신 건가요? 혹시 그랬다면 맛있는 맛을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나요?
<두.잘.잘> 속 채식 레시피 © 하토 작가
만화에 그리는 요리들은 모두 직접 만들어서 먹어본 뒤 그리고 있어요. 해먹었는데 맛있었던 걸 기록해뒀다 쓰기도 하고요.
제가 요리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요리에 대한 전문 지식이나 특별한 요리 레시피를 소개하기보다는 ‘이런 것도 있어요.’하고 생각보다 쉽고 맛있는 채식 요리를 만들 수 있다고 소개하고, 동물성 식품을 대체할 대체재에 대한 정보와 팁을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채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이 있는데, 동물성 식품을 빼고 요리하면 맛에 자극이 덜하긴 하지만 맛이 없는 건 아니라서 맛있게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냥 간을 잘 맞추면 맛있어지니까요. 그런데 입맛이 순식간에 바뀌지는 않다보니 전에 먹던 걸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그것들을 재현해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했었어요. 집에서 비건치즈를 만들거나, 당근을 이용해서 훈제연어 비슷하게 만들어본다거나 하는 도전을 많이 했는데 만드는 것도 재밌었고 나름대로 맛있기도 했지만 동물성 식품처럼 재현되지는 않고 품이 너무 많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재현하는 것은 포기하고 가정식에 가까운 요리를 주로 만들게 됐는데, 그러는 사이에 채식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대체육 제품이랑 유제품 대체품이 시중에 많이 나와서 갈증이 있던 부분도 많이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족이지만 요즘 대체육 제품들이 정말 맛있어서 다들 먹어보시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딜리헙에 대체육 제품들을 소개하는 특별편을 올렸는데, 이것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5. 시즌1이 ‘텀블벅’에서 진행한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하셨는데요,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잘.잘>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웹툰『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 단행본 제작 프로젝트 크라우드 펀딩
2018년-19년을 지나면서 국내외에서 환경오염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비육식’이 소개가 되었고, 그러면서 더불어 채식에 대한 관심이 함께 높아졌어요. ‘환경’와 ‘채식’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분들도 많아지면서 고급 정보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지만 가볍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컨텐츠에 대한 수요도 함께 생겨났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화를 기획할 때 ‘채식’이라는 키워드가 먹는 것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요리’를 소재로 고른 것도 있지만, ‘요리’와 ‘음식’ 컨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요리 만화’를 그리자고 생각했어요. 만화 작업으로 진행한 것도 제가 가진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만화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에게 만화가 매체 특성상 접근성이 낮기 때문에 입문서로서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했고요. 시의적절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바랐던대로 타이밍을 잘 맞춘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습니다.
6. 두연씨의 채식 선언 후, 주변 인물들이 은근히 채식에 스며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실제로도 선한 영향력의 힘을 믿으시나요?
우리는 보고 듣는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아요. 누군가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없고, 항상 발화자가 바라는 쪽으로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품을 그리고 있다보니 독자님들이나 주변분들께서 만화를 보고 채식을 시도해보게 되었다거나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씀을 전해 주시곤 해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제가 이런 저런 정보들에 노출되면서 받았던 영향으로 지금 채식에 대한 만화를 그리고 있듯이 타인에게 가닿아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두.잘.잘>에서 채식을 시작한 주인공 마두연의 채식 기록 계정
7. 시즌1을 재밌게 본 독자들을 위해 시즌2와 시즌3는 어떤 이야기들을 다루는지 살짝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시즌3까지 연재할 예정이었는데, 사정상 분량을 줄이게 되어서 시즌2, 3에 들어갈 이야기들을 합쳐 예정보다 조금 짧게 끝내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딜리헙에서 시즌2를 연재중인데, 시즌 2는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시즌1에서 동물권과 동물적 인간을 중심적으로 다루었다면 시즌2에서는 채식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문제의 근원에 맞닿아있는, 거시적인 관점으로 봐야하는 문제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전염병, 농업과 산업으로 인한 환경 문제, 그리고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8. 채식에서 나아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영향력)를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본 만화는 채식 관련 이슈를 알리고 채식을 돕는 컨텐츠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일상 드라마를 그리고 있어요. 고민을 짊어진 개인이자 주변인들한테 실망하고 기대하는 사람으로서, 세상 수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고 이런저런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에 대한 거예요.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두.잘.잘> 메인 이미지 © 하토 작가
9. <두.잘.잘> 연재를 마치면 다음엔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친구들이 모여 생활공동체를 맺어 함께 살면서 입양아를 키우게 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대안가족에 대한 만화와, 레즈비언 예술가들이 주인공인 사랑이 뭔지에 대해서 뜯어보는 로맨스 만화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맞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지금 두잘잘에서 말하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고민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10. 문화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만화 또는 작가 중에 소개해주시고 싶으신 작품이 있을까요?
두 가지 작품을 소개드리고 싶은데요.
하나는 리디북스에서 연재중인 하람 작가님의 〈쉼터에 살았다〉라는 작품입니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주인공이 쉼터에서 산 경험에 대해 그린 이야기이고, 그가 어떻게 쉼터에 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과, 함께 지낸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에세이 만화입니다. 우리가 가족에 대해서 생각할 때 흔히 정상가족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많은 가족이 저마다의 문제를 갖고 있다는 걸 상기하고, 지금 당장도 가족 밖 청소년들이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지역의 사생활99 © 네이버 책
다른 하나는 〈지역의 사생활99〉이라는 프로젝트입니다. 전북 군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출판사 ‘삐약삐약출판사’가 진행하는, 지방 지역을 배경으로 한 지역중심적 만화를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방지역이 타자화되고 있다는 점이 계속 지적되었는데 이런 부분을 해소하는 시도를 만화로 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잘 몰랐던 지역들을 접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각 지역마다 다른 작가님이 작업하셔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작년 2020년에 9개 지역을 배경으로 한 9개의 책이 나왔고, 10년간 매해 9개 지역씩, 99개 지역을 조명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큰그림이라고 합니다. 관심가는 지역이 있다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1. 이 세상 모든 ‘마두연’을 위해 한 마디 해주세요!
저한테 마두연은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저도 고민이 많은 사람으로서 말씀드리면, 때로는 유연해지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고민하다보면 문제는 점점 복잡해지고, 완벽한 답같은 건 없다는 것만 확인하게 되어서 좌절하곤 하지만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아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무엇이 옳은지, 최선인지를 계속 고민해나갈 것이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다들 너무 지치지 말고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작가 하토
네이버 시리즈에서 〈안녕, 나는 너를 좋아해〉를 연재하고, 비로맨스 여성서사 앤솔로지 「여명기」에 참여하여 〈세상은 거대한 거짓말〉을 그렸다.
2020년부터 독립플랫폼 딜리헙에서 〈두연씨, 잘 먹고 잘 살아요.〉를 연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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