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피, 한국의 지하철은 어떻게 이렇게 깨끗해? 정말 놀라워. "
“루피, 지하철에서 진짜 와이파이가 잡혀. 너무 신기하지 않아?”
4년 전 어느 날, 저와 함께 8일 동안 한국을 여행하던 영국 60대 부부 지니와 스티브가 연신 제 이름을 부르면서 아이처럼 말합니다. 여행 정보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에 한국에서 반드시 체험해 봐야 하는 곳 중 하나로 지하철이 올라와 있었다며 꼭 타봐야 한다고 말해 추가된 일정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무료 와이파이가 잡힌다는 후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아내인 지니는 연신 와이파이가 잡히는 것에 신기해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인 스티브는 한국전쟁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국을 처음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처음 방문한다며 자기가 상상했던 한국과는 너무 다른 깨끗하고 깔끔한 모습이 인상적이라 놀랍다고 합니다. 늘상 이런 지하철을 타고 다닌 저에게는 신기할 것 하나 없는 풍경이 지구 반대편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신선한 경험을 선물했나 보네요.
한국 지하철 풍경ⓒpixabay
저는 루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11년차 관광통역안내사입니다. 관광통역안내사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여행자에게 한국의 다양함을 소개하는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주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포함해 베트남어, 인도네시아어, 아랍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로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합격한 뒤에는 외국인에게 한국을 안내하는 자격이 부여됩니다. 저는 영어가이드로 활동하는 동안 전세계 12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오신 8천여 명의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했고 덕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님, 헐리우드 배우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을 막 시작하던 2011년만 하더라도 방한 외국인이 10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정확히는 남한)을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가 많이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국이 아주 매력적인 여행지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세계를 미사일로 위협하는 북한과 함께 사는 용감한(?)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까요?
그 뒤로 제가 일하는 10년 동안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은 국적, 목적, 규모, 체류기간 모든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음을 체감하는데 저는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새삼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루피, 내가 올해 64살인데 눈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야"
사계절이 축복이라는 것도 이 직업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아들 내외, 손자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말레이시아에서 오신 압둘이라는 할아버지가 경복궁에서 마침 내리는 눈을 한참 올려다보시더니 제게 건넨 말이었습니다.
눈 내리는 경복궁 ⓒ클립아트코리아
손자 손녀에게 겨울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다며 선택한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가이드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순간 저는 흠칫 놀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어요. '아 맞다! 말레이시아는 겨울이 없지?'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여행자의 상당수가 봄과 가을에 입국하는데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한국의 봄과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방한합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지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눈 덮인 설경을 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인데, 누군가에게는 시간과 비용을 내야 ‘경험’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좌)가을에 감을 따는 체험을 하는 싱가폴 관광객,(우)단풍을 즐기는 베트남 관광객 ⓒ호기헌
"서울에 오셨으니 꼭 가보셔야 하는 경복궁을 가려고 합니다. 괜찮으시죠?“
"루피,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먼저 이걸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미국에서 오신 두 중년 부부와 투어를 하기 위해 호텔 로비에서 11시에 만났습니다. 두 분이 원하는 일정을 짜야했고, 저는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코스를 제안해 드렸습니다. 남편분이 제게 핸드폰을 내미시더니 한국의 유명가수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보여주시더군요. 따님이 이 티셔츠를 사오지 않으면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 했다며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딸을 위해 한국 가수의 노래를 처음 들어보았다는 아버지를 보니 '아! 이제는 미국 중년들까지도 한국을 다양한 방식으로 접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는 달라도 아버지의 역할은 공통이네요.
강남스타일을 따라하는 호주 학생들 ⓒ호기헌
이전까지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Lonely planet과 같은 가이드북이나 여행사를 통해서 접했다면 이제는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먼저 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한국을 처음 마주하는 방식이 변하니 한국의 유명 관광지 위주로 다니는 패키지여행보다 내가 가고 싶은 곳만 정해서 자유롭게 다니는 개별여행이 2019년 기준 77%까지 증가했습니다. 유명한 한국 음식도 좋지만 소주 한잔 마시고 캬~ 라고 따라 해보고, 야구장에서 응원하며 치맥을 먹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먹었던 편의점 핫도그를 맛보는 등 소소하지만 나의 경험과 취향을 중요시하는 외국인이 한국을 만나고 싶어 하는 방식은 더욱 구체적이고 다양해졌습니다. 한국인의 삶에 한층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한국 유행 기념품을 체험중인 스탠포드 대학원생 ⓒ호기헌
"루피, 한국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경제 성장을 했어?"
한국 정부의 초청을 받아 연수를 오신 에티오피아의 한 공무원이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특히 DMZ를 방문하고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나누고 난 다음에는 더더욱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럼 저희들은 한국전쟁 이후에 민주화와 산업화 과정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을지로 풍경 ⓒ클립아트코리아
제가 속한 가이드쿱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하면 직접 경험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끝에
한복을 입고 있는 캐나다 고등학생 ⓒ호기헌
한국은 유네스코 유산을 52개나 보유하고 있는 역사콘텐츠가 무궁무진한 나라입니다. 또한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고 빠르며, 한국영화와 케이팝, 그리고 DMZ와 같은 한국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최근 한 조사에서 코로나 이후 가장 가고 싶은 도시로 서울이 선정되기도 했듯이 한국관광은 어쩌면 이제 시작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외국인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나라, 한국! 그래서 우리 앞에는 더 많은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기헌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면서 살고 싶은 꿈 많은 여행기획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