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K-게임과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완성된 세계관과 확보된 팬덤을 기반으로 한 IP 확장
IP, 즉 지적재산권이라는 말은 본래 상법상의 용어였지만 최근 대중문화계에서는 특정 콘텐츠가 만드는 일련의 세계를 묶어낸 그룹, 조금 더 나아가자면 일종의 세계관처럼 활용되는 개념이다. 소설과 웹툰이 드라마와 영화로 탈바꿈하는 모습은 이제 신기하기보다는 콘텐츠 제작의 공식 루트로까지도 보일 정도로 IP 확장은 최근의 주요한 트렌드다.
IP확장을 통한 콘텐츠 제작의 강점은 산업적 관점에서라면 첫 손으로 경제성을 꼽는다. 세계와 인물, 사건을 처음부터 새로 설계하는 것에 비해 완성된 IP를 가져와 새 매체로 만들어내는 것은 시간과 자본, 인력면에서 압도적으로 경제적이며, 이는 오늘날 콘텐츠산업에서의 활발한 IP확장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IP 확장은 세계관이 만들어져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일련의 성공을 거둔 IP는 그만한 팬덤을 확보하고 있고, 그 팬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소재가 새로운 매체를 통해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완전히 새로운 IP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팬덤을 보유했다는 점 또한 IP확장 기반 콘텐츠가 갖는 큰 장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점들은 디지털게임 분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게임에서의 IP확장 사례들: 성공과 실패
코믹스에서 영화로 성공적인 확장을 이뤄내 현대 IP확장의 모범사례로도 불리는 마블 코믹스는 시네마틱 시리즈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2022년 모바일 카드배틀 게임 <마블 스냅>을 출시했다. <하스스톤>, <매직 더 개더링>처럼 디지털 디바이스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카드 수집과 배틀 시스템이라는 카드배틀 게임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캐릭터와 세계관을 전세계에 안착시킨 원작 IP의 힘을 훌륭하게 결합한 <마블 스냅>은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고, 영향력있는 게임어워드인 TGA에서 2022년 베스트 모바일게임 상을 수상하는 등 평단과 시장 모두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었다.
모바일 카드 게임으로 거듭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은 <마블 스냅>의 전략성과 길지 않은 플레잉타임과 결부되며 모바일 카드 게임 분야에서 나름의 팬덤을 확보했다. (이미지 출처:스팀 홈페이지)
<해리 포터> 시리즈는 수 차례 게임으로의 IP확장을 시도했고, 그 때마다 나쁘지 않은 성과와 평가를 받아들곤 했다. 2000년대부터 매 단행본의 이야기에 맞춰 출시된 게임들 외에도 작중 가장 유명한 스포츠 활동인 ‘퀴디치’를 모티프로 스포츠 게임을 만들기도 했고, 2023년에는 ‘위저딩 월드’라는 해리 포터 기반의 세계관을 통한 프리퀄 격 게임인 ‘호그와트 레거시’가 전세계 해리 포터 팬덤의 힘을 받아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전세계적 팬덤을 자랑하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2023년 게임 신작은 원작 IP를 활용한 마법 활용과 세계 디자인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미지 출처:스팀 홈페이지)
그러나 게임으로의 IP 확장이 매번 성공적인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코리안 좀비로 눈길을 끈 드라마 <킹덤>은 2024년 3월 원작 기반 액션 어드벤처 게임 <킹덤: 왕가의 피>를 출시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원작의 요소들은 들어가 있지만, 정작 게임으로서의 핵심요소들인 쳐내기의 애매한 타이밍, 구르기의 디테일 문제 등이 크게 부각되며 게임으로서의 가치는 잘 드러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킹덤: 왕가의 피>는 원작 드라마를 활용한 액션 어드벤처로 출시되었지만, 액션게임의 기본인 공격/방어 스킬 자체가 원작과는 무관한 디자인인데다가 기존의 문법을 벗어나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지 출처=액션스퀘어 공식 홈페이지)
웹툰 영역에서 성과를 낸 작품들이 게임으로 넘어오는 사례들 또한 전반적으로 성공작을 꼽기 어려운 추세다. 큰 인기를 모았던 성장형 배틀 웹툰 <신의 탑>은 자체 IP 기반으로 총 세 개의 게임이 출시되었는데, 셋 모두 과도한 뽑기 또는 콘텐츠 부족과 같은 이슈를 극복하지 못하고 성공작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임 매체 특유의 방법을 이해해야 IP기반 게임에서 성공한다
게임으로의 IP확장에서 실패하는 사례들은 대체로 원작 IP가 보여준 힘을 게임이라는 매체 특유의 방식으로 그려내지 못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잘 짜여진 세계관 속에서 영화와 웹툰 등은 각각 영상과 그림과 같은 고유의 방법을 통해 특유의 재현을 만들어내는데, 게임매체 특유의 재현법인 규칙에 의한 조응에는 원작 IP를 잘 녹여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시중에 넘치고 있는 카드수집 및 강화라는 규칙에 단순하게 원작 IP의 스킨만 덧씌우는 것과 같은 간단한 방식으로 제작되는 게임으로의 IP 확장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초반에는 IP의 인지도에 의한 관심을 이끌어내지만, 정작 플레이 이후에는 이 게임의 규칙이 원작 IP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금새 질려버리게 된다.
<마블 스냅>의 헐크 버스터 카드는 실제 헐크 버스터처럼 다른 카드에 합체시켜 사용된다. 게임으로의 IP확장은 이처럼 게임 규칙 디자인 자체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이미지출처: 마블스냅 공식홈페이지)
규칙에 의해 작동하는 게임이라는 매체의 특성은 게임으로의 IP확장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다. <마블 스냅>에서 원작의 팬들이 감동받은 점은 ‘헐크버스터’ 카드가 실제 원작에서처럼 일종의 슈트로 활용되어 게임 상에서 다른 카드에 덧씌워 활용할 수 있다는 디테일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게임에서의 IP활용은 게임 규칙 자체를 원작 IP에 맞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점임을 알 수 있다. IP확장은 매체마다 매체의 성격에 맞는 방식으로 새롭게 디자인되어야 하며, 게임의 경우라면 규칙에 대한 디자인이 원작 IP의 세계관 하에서 새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 대전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떤 IP라도 게임으로 넘어와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경혁
2014년 매체 비평지 〈미디어스〉에 게임 비평 칼럼을 연재하면서 게임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게임 관련 비평 및 연구자로 활동하며 인터넷 게임문화 웹진 〈게임 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