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다양성 탐구 1.소재와 구성의 다양성 (서병기 기자) 첨부이미지 : 8.png

 

*본 게시물은 ‘K-드라마와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K-콘텐츠는 글로벌화와 디지털화를 양 수레바퀴로 해 맹렬히 굴러가고 있다. K-드라마도 이런 생태계 변화의 중심에 있다. K-드라마가 소재와 구성이 다양성을 띄게 된 것은 이 현상과도 직결돼 있다.
 
한류가 본격화하기 전 내수 비중이 절대적인 시절에 K-드라마는 로맨스물과 가족 드라마가 많았다. 드라마도 문화 상품인 이상 지속 가능하여지려면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을 주요 플랫폼으로 삼고 있던 그 당시도 장르물이 편성됐지만 드라마는 '로코(로맨틱 코미디)'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클리셰들을 모아 놓은 드라마가 외국에서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 드라마의 형식과 내용이 다양해진 것은 2016년 글로벌 OTT인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했을 때다. 소재가 확대되고 표현 수위가 높아졌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의 제작 방향도 기존에 한국에서 만들기 힘들었던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장르물과 B급 좀비, 크리처물의 유행이었다. <인간수업>, <보건교사 안은영>, <스위트홈> 등으로 구체화됐다.

 

 

(왼쪽부터) <인간수업> 포스터 ⓒ넷플릭스, <청담국제고등학교> 포스터 ⓒ내외경제TV

 

나는 2020년 4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드라마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이런 드라마의 대본을 받아줄 방송사도 없었고 제작하거나 편성해 줄 플랫폼이 없었다. OTT가 콘텐츠에 얼마나 큰 변화를 불러왔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시리즈물이다.
 
<인간수업>에서 주인공인 공부 잘하는 모범 고교생 지수(김동희 분)는 ‘사이버 포주’로 활동한다. 왜 그런 짓을 하냐고 묻자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한다. <인간수업>의 탈선은 기존 학원물과는 차원을 달리할 정도로 일탈의 강도가 세다.
 
웨이브와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청담국제고등학교>는 지금까지 나온 학원물 중 재산이 계급이고 서열임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기존 학원물의 여주인공은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구혜선)나 <상속자들>의 차은상(박신혜) 등 착한 캔디 ‘흙수저’다.
 
하지만 이젠 그런 여주인공으로는 현실을 반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에게 도파민도 선사할 수 없다. 그래서 인지 <청담국제고등학교>의 여자 주인공 김혜인(이은샘 분)은 일류 대학생을 사칭해 부잣집 중학생 나연의 과외 선생이 되는 데 성공한다. 나연의 명품 패션을 자기 것인 양 몸에 걸치고 SNS에 찍어 올리며 팔로워 수를 늘려 돈도 번다. 그러다 ‘짭수저(가짜 금수저)’가 돼버렸다.
 

<킹덤> 포스터, <지옥> 포스터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초기작인 <킹덤>은 할리우드 B급 좀비 장르물의 형식에 한국의 궁이라는 전통을 녹여내 지역성과 보편성 둘 다 확보하며 글로벌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서양인들이 인터넷에서 ‘갓’을 구입하는 현상이 생겼고, 포스트 말론은 내한 공연에서 갓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킹덤>에는 영의정 조학주(류승룡)의 국정농단이라는 권력 문제와, 할리우드 좀비와 달리 배고픈 민초 좀비와 혈연에 집착하는 권력자 좀비 등 상반된 2가지 좀비가 K-콘텐츠의 차별성과 매력을 함께 만들어냈다.
 
그러다, 2021년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고, 모순을 지적해 자본주의로 인한 경쟁 사회의 잔인함을 먼저 체험한 서양의 선진국에서 큰 반응이 나온 <오징어 게임>이라는 대박 시리즈물이 탄생했다. 전 세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물을 통틀어 시청 시간 1위에 올랐다. <오징어 게임> 뿐만 아니라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은 모두 무한 경쟁 시대의 양극화 문제, 가치관의 붕괴, 재난이 발생해도 작동하지 않는 구조 시스템에 대해 경각심을 불어넣어 준 작품들이다.
 
한국은 어떻게 해서 글로벌 세상에서 통하는 다양한 드라마를 계속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서양의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 드라마의 강점을 물어보곤 했는데, 그들의 공통된 답변은 “한국 드라마는 정(情)이나 휴머니즘 등 인간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는 깊이와 디테일을 갖추고 있다”로 요약된다. 미국 드라마의 강점은 사건 전개의 치밀성과 플롯의 완결성이라고 했다.
 

ⓒ클립아트코리아

 

그러한 한국 드라마의 강점에, 한국은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토양이 풍부하다. 지난 50~70년간 이뤄진 한국의 압축 성장 과정에서 생긴 과도한 현상과 모순점이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좋은 조건이 된다.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생긴 과도한 경쟁심과 역동성 등이 콘텐츠를 만드는 데는 절대 유리하다. 조직 사회의 괴롭힘 문화는 군대의 단면을 보여준 ‘D. P.’를 낳았고, 경쟁 사회의 위험성과 피곤함, 번아웃 증후군은 <오징어 게임>과 <갯마을 차차차>, <도도솔솔라라솔>을 낳았다. 한국 사회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함께 섞여 있는 상태다. 콘텐츠로 무한 경쟁 시대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 가치를 생성하기에는 한국만큼 좋은 곳이 없다. 외국인들도 서울의 경쟁에서 쌓인 피로를 조그만 어촌 마을에서 풀며 힐링하는 <갯마을 차차차>를 공감하면서 봤다는 사람들이 많다.
 
남미에서 마약 조직을 운영하는 한국인 마약왕과 함께 K-가장이 등장하는 <수리남>, 소년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다양하고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소년심판>, 인플루언서들의 화려하면서도 치열한 민낯을 그린 <셀러브리티>,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직장인의 파란만장 일대기를 그린 <마스크걸>, 일제 강점기 막바지 생체 실험하는 일제와 크리처물을 결합한 <경성크리처> 등은 다양한 소재로 외국 시청자들을 유입시킨 K-드라마다. 4대에 걸친 재일 동포의 삶을 그린 <파친코>와 운전 중 싸우는 일상적 분노를 작품에 녹인 에미상 8관왕 <성난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는 아니지만 한국 이야기와 연출 모두 한국
DNA가 있다. 다양한 플랫폼은 풍부한 자본과 높은 표현 수위로 다양한 한국 문화의 이야기를 강한 극성으로 그려내는 콘텐츠를 계속 제작할 것이다.

 

서병기
대중문화 선임기자, 문화평론가
문화 콘텐츠 산업 현장 곳곳을 취재하며 글을 쓰고 있다. 특히 콘텐츠 속 인물의 욕망 구조에 대해 관심이 많다.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 종합광고기획사 오리콤 AE와 서울신문사 기자를 거쳐 현재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로 근무중. 『유재석처럼 말하고 강호동처럼 행동하라』 (두리미디어), 『방탄소년단과 K팝』 (성안당) 등을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