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가 문화다양성을 포용하는 이유 (이성민 교수) 첨부이미지 : 10.png

 

*본 게시물은 ‘K-드라마와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지난 몇 년간 K-드라마는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성장을 보여주었다. 넷플릭스가 2023년 12월 11일 처음으로 공개한 상반기 오리지널 시청자료에 따르면, <더 글로리>가 전체 시청 시간 3위를 기록하는 등 다수의 한국의 영상 콘텐츠가 높은 순위를 기록한 바 있다. 넷플릭스 최고의 흥행 작품인 <오징어 게임>의 시즌2는 주주들에게 보내는 투자 서한에 담긴 2024의 핵심 계획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디즈니+를 통해서 공개된 <무빙>은 디즈니+가 2023년 4분기에 약 700만 명의 추가 가입자 확보에 기여하는 등 글로벌 성과를 거둔 주요 작품으로서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글로벌 OTT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로컬 OTT 서비스에서도 K-드라마는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라쿠텐비키(RakutenViki), 뷰(Viu)와 같은 OTT 서비스를 통해 공개된 <소용없어 거짓말>과 같은 작품은 해외 141개국에서 시청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소용없어 거짓말>의 포스터 ⓒ라쿠텐비키, <재벌집 막내아들>의 포스터 ⓒ뷰

 

이렇게 K-드라마가 좋은 성과를 보여줄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산업적으로는 그동안 축적되어 있었던 콘텐츠 제작 역량이 OTT라는 미디어 산업의 혁신이 가져온 글로벌 유통 확대와 결합한 결과라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로컬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늘려서 현지 구독자의 주목을 얻고자 했던 글로벌 사업자들의 현지화 전략의 진화도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K-드라마에 대한 글로벌 대중의 주목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생산과 유통 측면의 요인뿐 아니라, K-드라마에 관한 관심의 배경이 되는 문화적 저변, 즉 수요의 측면에서의 변화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다양성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맥락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문화다양성 측면에서 아시아 콘텐츠에 관한 관심의 증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기생충>과 <미나리>, <비프(BEEF)>와 같은 아시아 계열의 작품들이 영화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존의 문화 산업에 만연했던 서구 중심주의와 획일성에 대한 반성 속에서 아시아를 비롯한 보다 다양한 문화에 관한 관심과 기대 역시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상 콘텐츠는 문화 다양성에 대해 높아진 요구 속에서 매력적인 대안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한 것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기존의 주류 콘텐츠와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원했던 대중의 욕망도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의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K-드라마는 로맨스라는 장르에 있어서 다른 국가가 보여주기 어려운 독보적인 매력을 담아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서바이벌이나 좀비, 범죄 등 장르물에서도 기존의 장르 팬덤의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한국적 매력을 더하고 있었다. 즉 문화다양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한국 영상 콘텐츠의 진화와 결합한 결과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성취의 중요한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왼쪽부터) <이재, 곧 죽습니다>의 포스터 ⓒ티빙, <웰컴투 삼달리>의 포스터 ⓒ티빙

 

K-드라마가 단순히 ‘동양의’ 한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K-드라마의 매력은 더욱 다양한 주체들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소재와 의미를 찾아내고 있는 것에서 출발한다. 장애의 문제에 대해 섬세한 표현을 통해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작품은 물론, 성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슈룹>, 지역과 다양한 주체의 진정성을 담은 <우리들의 블루스> 등은 지금의 한국 드라마가 문화다양성의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웰컴 투 삼달리>, 죽음과 자살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재, 곧 죽습니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뤄 글로벌 3위의 시청 시간 기록을 세운 <더 글로리>까지, K-드라마는 소재와 표현에 있어서의 한계를 넘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넘나들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다양한 소재에서 삶의 모습을 담아냈던 웹툰과 같은 다양한 원작에서 출발하는 드라마들은 K-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K-드라마의 이러한 진화의 과정 역시 문화다양성과 무관하지 않다. 기존에 고착된 산업 구조 속에서 안전한 작품들의 기획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도전하는 여러 노력을 통해 산업의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다양한 소재와 새로운 이야기의 발굴, 새로운 창작자의 성장과 도전과 같은 산업 내적인 다양성의 확대를 통해 한국 드라마의 질적인 도약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화다양성은 한국의 영상 콘텐츠 산업의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가치이기도 한 것이다.

 

ⓒ클립아트코리아

 

K-드라마의 성취의 배경에 문화다양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K-드라마가 전 세계의 대중에게 지속적해서 사랑받기 위한 노력의 방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K-드라마는 점차 문화다양성 측면에서 더욱 진일보한 태도를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미 몇몇 작품들이 해외 시청자와 만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반발과 비판을 불러일으킨 사례들이 존재한다. 현지 문화에 대해 사려깊지 못한 표현이나, 특정 국가나 인종에 대해 편견을 담은 장면들, 다른 문화권의 상징과 표현을 충분한 이해 없이 가져다 쓰는 문화적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에 대한 논란 들이 대표적이다. 한국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글로벌 대중이 바로 이러한 문화다양성의 쟁점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집단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시급히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산업 구조의 측면에서도 문화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큰 주목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콘텐츠 제작 시장 양극화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해외 시장을 목표로 하면서 제작비 규모가 크게 확대되면서, 좀 더 작은 규모의 국내 시장 중심의 작품들이 설 자리가 위축되고 있다. 이러한 산업의 집중화가 가속화된다면, 그동안 다양한 이야기의 힘으로 성장해 왔던 K-드라마의 경쟁력의 토대가 흔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K-드라마에 대한 글로벌 대중의 기대는 결국 앞으로도 새롭고 다양한 이야기를, 더욱 사려깊은 표현으로 보여주길 원하는 것이라고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안의 다양성에 주목하고, 다양한 창작자가 활동할 수 있는 건강한 산업의 구조를 고민하며, 다른 문화에 관한 관심과 존중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들어갈 때, K-드라마는 산업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K-드라마가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문화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더욱 적극적으로 품을 수 있길 기대한다.

 

이성민
미디어-콘텐츠 정책 분야와 미디어 역사 분야에서 다수의 연구를 수행해왔다. 문화정책 분야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콘텐츠 산업 현장의 변화를 정책의 언어로 담아내는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현재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에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