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K-영화와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필자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소녀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여름을 생각하면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떠오르고, 겨울을 생각하면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이 떠오르는 것처럼. 부드럽고 말랑한 느낌, 분홍빛, 좋은 향기, 까르르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가느다란 손목, 찰랑이는 머릿결. 소녀라는 단어에는 그런 느낌이 포함되어 있었다. 작고 여리고 미성숙한 존재.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정작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소녀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건 내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이런 편견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나는 답을 알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들. 거기 등장하는 소녀들은 언제나 그랬다. 고민이라고는 오직 친구와 남자친구에 대한 것뿐인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 그건 미디어가 제시하는 소녀의 자격이자 미덕이었다. 영화와 드라마는 그렇게 모두를 속여 왔다. 한때 소녀였던 나조차도.
그리고 2019년 여름, 한 영화가 내게 왔다. 별다른 기대 없이 그냥 누군가 좋다고 해서 보게 된 그 영화의 제목은 <벌새>다. 근처 빵집에서 올리브 치아바타를 사들고 상영관에 입장했던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내 인생 최초의 눈물 젖은 빵이었기 때문이다.
<벌새>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난 1994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14살 소녀 ‘은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을 소개할 때마다 나는 막막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 어떤 말로도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설명할 수 없어서. 영화는 그저 한 소녀의 일상을 담담하고 건조하게 보여준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중학생 은희의 시선으로.
은희의 세계는 분홍빛이 아니다. 오히려 잿빛에 가깝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폭력적인 오빠, 고된 노동과 가사일에 늘 지쳐 있는 엄마. 그 밑에서 은희는 하루하루 세상을 배워 간다.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은희의 우울감은 그동안 숱하게 보았던 상업영화에 등장하는 소녀들의 가벼운 슬픔과는 다르다. 그것은 오직 세상을 아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우울. 그래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감정이다.
영화<벌새>스틸컷(제공=엣나인필름)
은희가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94년, 나는 고작 4살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문화적 배경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들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세대는 아니다. 그런데 왜일까? 은희를 보며 나는 많이 울었다. 너무 울어서 영화관을 나올 때쯤에는 눈이 뜨겁고 목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상업영화와 드라마에서 납작한 스테레오타입으로 소비되는 소녀들만 보았던 내게 은희의 등장은 충격이었다. 발랄하지 않은 소녀, 세상 물정을 너무 잘 아는 소녀, 사랑과 우정 말고도 고민이 많은 소녀, 내면에 깊은 어둠을 가지고 있는 소녀, 때로는 죽음을 생각하는 소녀. 나는 그제야 내가 아는 수많은 현실의 소녀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한때 소녀였던 나와 내 친구들을.
(좌)영화<우리들>스틸컷(제공=엣나인필름),(우)영화<우리집>스틸컷(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그 뒤로 ‘진짜’ 소녀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열심히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들의 복잡한 생태계와 삶에 대한 무거운 고민들을 소름 끼칠 만큼 세밀하게 그려낸 <우리들>은 친한 친구와의 빈부 격차를 실감하며 깊은 좌절을 느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보듬어주었다. 주거 불안정에 대한 아이들의 현실적인 공포를 다룬 <우리집> 역시 비슷한 고민으로 밤잠을 설친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다음 소희>스틸컷(제공=트윈플러스파트너스㈜)
한편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 사건을 모티브로 한 <다음 소희>는 같은 경험을 해본 적 없음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사회로 내몰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소녀들을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알렸다. 그들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도록. 이 작품은 2023년 2회를 맞은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 상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미디어가 만들어 온 환상 속 소녀 대신 현실을 살아가는 진짜 소녀를 보여주는 작품을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자주 만나게 된다. 이 작품들이 그려내는 진짜 소녀의 세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히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녀가 아닌 한 사람으로. 그게 얼마나 벅찬 일인지 너무 늦게 깨달았다.
영화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간절히 바란다. 앞으로의 한국영화가 더 많은 소녀들의 세계를 비춰주기를. 그들의 삶과 고민, 어른의 것과 다르지 않을 깊은 내면을 성의껏 다뤄주기를. 상업영화 밖에는 이런 소녀들이 존재한다. 분홍빛이 아닌 다채로운 색을 가지고 있는 진짜 소녀들이.
하현
김포와 망원과 일산을 오가며 책을 쓰고, 책을 팔고, 책을 읽는다.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 《우리 세계의 모든 말》 《달의 조각》 등을 썼다. 장래희망은 부유하고 명랑한 독거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