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는 어떻게 다양성을 획득할까? (김헌식 문화평론가) 첨부이미지 : 그림5.png

*본 게시물은 ‘K-컬처의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칼럼입니다.

한국문화는 획일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그렇지 않다그렇게 보일 수 있을 뿐이다왜 한국문화는 획일적으로 보이면서도 다양성을 지니고 있을까. 미국의 예를 들어보자. 미국의 문화를 언급할 때 샐러드 볼(salad bowl)을 언급한다. 이는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샐러드용 접시를 뜻한다. 샐러드 볼 이론은 1970년대 프랑스어와 영어를 같은 쓰는 퀘벡(Quebec)주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샐러드가 각종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특성을 유지하듯 마찬가지로 문화다양성 면에서 각각 인종과 민족에 따른 문화가 지닌 고유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서양 문화가 아닌 비서양, 백인 문화가 아닌 소수 인종 문화도 개별 정체성이 살아 있게 해야 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샐러드 볼의 상대적 개념으로 ‘멜팅포트’(melting pot)가 있다. 이는 ‘용광로’를 뜻하는 말이다. 용광로에 들어가면 무엇이든 녹아버린다. 원래의 형체는 찾을 수 없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수프나 죽이 될 것이다. 문화적인 면에서 예를 들면 ‘중화인민공화국’은 56개 민족을 한족 중심으로 녹여내고 있다. 샐러드 볼과는 차원이 다를 수 있다. 각각의 문화적 특성이 계승 발전되지 않고 억압되어 버린다. 세계적 보편성에는 관심이 없게 된다. 자신의 문화만 최고라는 배타적 태도가 강화된다. 용광로를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흩어지거나 깨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때문이다.

 

ⓒ클립아트코리아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유형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김칫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문화는 김치처럼 발효를 시킨다. 샐러드 볼은 신선한 상태인 것처럼 보이지만 채소는 곧 시들고 썩어 버린다. 오래 저장할 수 없을뿐더러 새로운 창조가 없다. 그냥 각각의 맛을 지니고 있다가 유효 기간이 쉽게 지나간다. 하지만, 김칫독의 채소들은 그냥 그대로 있거나 녹아들어 곤죽이 되지 않는다. 채소와 부재료들이 각각의 맛과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제3의 창조적인 음식이 된다. 또한, 그냥 섞인 것이 아니라 발효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보존하고 즐길 수가 있다. 한국문화의 특징도 마찬가지다. 여러 문화 요소가 같이 섞여 있지만, 그냥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잘 삭혀져 새로운 문화 결과물로 만들어진다. 다양한 식재료가 들어갈수록 김치는 독특한 맛과 건강 효과를 낸다.

지정학적 위치나 그 규모를 볼 때 한국은 외부의 문화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해양 문화와 대륙 문화가 만나는 곳이면서, 인도와 중화 문화가 융합되고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유럽 문화와 미국 문화가 익숙하지만 낯설게 재발견 되기도 한다. 서구적이라 아랍에서 배척당할 것 같지만 공동체적이면서 가족을 중시하는 면 때문에 주목을 받는다. 더구나 수천 년 역사 속에서 문화 유전자는 재배열 되어왔다. 그동안 영향을 받았던 문화가 문화 지층으로 축적되어 있고 새로운 문화를 그것에 융합시킨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역사가 짧고,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문화의 변화에 둔감하다. 그들만의 문화에 침잠 되기 쉽다. 샐러드 볼처럼 그 안에 그대로 담아주는 형태를 취한다. 글로벌 OTT 넷플릭스도 글로벌 디지털 시대의 문화적 샐러드 볼과 같다. 하지만 세계 각지의 콘텐츠를 담아둘 뿐이다. 넷플릭스 자체가 창조적 역량을 갖거나 생산을 하지 않는다. 플랫폼의 본질이다.

ⓒ넷플릭스

 

하지만 우리는 여러 문화적 요소를 섞고 삭혀서 세계인들의 입맛에 맞게 내놓는다. 그 장르는 영화, 드라마, K팝, 다큐멘터리, 예능, 애니메이션 등등 마다하지 않는다. 케이팝은 댄스음악과 힙합에 기본을 두지만, 특유의 집단 댄스와 팬덤 문화로 글로벌 청년 음악으로 발돋움했다. ‘킹덤’과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한국적 좀비물이나 ‘피지컬: 100’과 ‘오징어 게임’ 같은 생존 포맷 콘텐츠, 영화 ‘정이’가 보인 감성형 SF는 대표적이다. 뮤지컬 ‘벤허’, ‘헤드윅’처럼 외국 유명작을 우리의 기획력으로 재창조하기도 한다. 한식은 비록 자투리, 버리는 식재료라고 해도 그것을 버무리거나 우려내어 한 끼 영혼의 식탁을 만들어낸다. 우리 문화도 다른 나라에서는 소소한 것을 중요하게 만든다. 음악에서 발라드나 트로트를 꼽을 수 있다. 한국적 정서가 결합해서 본래 장르의 특성과 다른 독특함을 보인다.

ⓒ클립아트코리아

 

우리 음식 문화가 다 함께 즐기는 특징이 있듯이 문화도 다 같이 어울림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으려면 다양한 요소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는 글로벌 시대에는 더욱 부합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K-콘텐츠는 어떤 문화 요소나 문화 흐름도 발효시킬 수 있다. 다만 그냥 담는 샐러드 볼이나 무조건 녹이는 멜팅포트보다 조건이 필요하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고, 잘 발효될 수 있게 핵심적인 재료를 잘 버무려 주어야 한다. 김칫독은 숨을 쉬는 옹기가 좋다. 한옥이 그러하듯 밀폐된 것 같지만 바깥과 소통하는 원리가 중요하다. 발효의 범위는 끝이 없다. 다만 인간의 작위만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가 따라야 한다. K-콘텐츠도 인본주의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따르기 때문에 보편성을 얻는다. 김치냉장고를 통해 더욱 우리 발효음식은 오래 널리 전달이 되었듯,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우리 문화의 가능성을 더욱 배가시키고 세계인들의 마음에 깊숙하게 오래 간직될 수 있는 첨단의 기회를 맞고 있을 뿐이다. 발효의 정신은 우리 문화의 본질을 잊지 않고 세계 모든 요소를 우리 방식대로 재창조하는 것이며, 그 속에 다양성이 살아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박사,
미래학회 연구학술 이사
카이스트 미래세대 행복위원회 위원
대구대학교 장애학과 외래 교수
KBS 3 라디오 '다문화 영화 리뷰' 코너 담당 등.
지은 책으로 '영화로 읽는 문화다양성 코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