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작가의 웹소설로 먹고 사는 법 (정무늬 작가) 첨부이미지 : 그림9.png

문화다양성 인터뷰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순문학과 웹소설을 넘나드는 활동을 펼치고, 또 웹소설 작가를 위한 유튜브 채널도 운영중인 정무늬 작가님을 만나봤습니다.

 

 1. 안녕하세요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웹소설 쓰고, 순문학도 하고, 유튜브에 영상도 올리면서 늘 분주히 지냅니다.
최근에는 청강대학교에서 웹소설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한 과목을 맡아 가르칩니다.
이것저것 하는 게 많아 보여도 따지고 보면 전부 글 쓰고 이야기 만드는 일과 닿아 있어요. 전부 다 재미있어서 하는 일이고요.
저 혼자 규정하는 정체성은 그저 ‘성실한 이야기 생산자’인데, 뭔가 좀 재미없어 보이네요.
안녕하세요. 웹소설 써서 먹고사는 정무늬입니다.

 

2. 작가님께서 웹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스무 살 무렵부터 단편소설 습작을 시작했어요. 공부가 어느 정도 됐다고 판단한 뒤부터 꾸준히 신문사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을 두드렸는데 매번 문지방에 걸렸죠. 서양화를 전공한 덕분에 미술학원 강사, 중고등학교 방과후 교사로 근근이 밥벌이는 했는데, 하루아침에 짤렸어요. 나이는 자꾸 먹어가는데 뭐 하나 이룬 것은 없고……. 우울했죠. 한 이틀.
할 수 있는 것 중에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웹소설을 시작하게 됐어요. 예전부터 웹툰이나 장르 소설을 즐겨 봤는데, 이게 제법 팔린다는 소문을 주워듣고는 그날 당장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게 『세자빈의 발칙한 비밀』이었어요.
순문학에서 맛본 실패들과 달리 데뷔작으로 공모전에 덜컥 당선됐죠. 카카오페이지에서 좋은 프로모션 줘서 매출도 잘 나오고 웹툰으로까지 만들어졌으니 웹소설은 처음부터 내게 굉장히 우호적인 편이었어요. 이후 작품마다 부침이 있지만 저도 의리를 지켜야죠. 그래서 매년 장편 하나씩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어요.

 

3. 첫 웹소설 작품의 소재는 어디서 영감을 받으셨나요평소에는 어디서 글감을 얻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음엔 재벌 2세가 등장하는 현대로맨스를 떠올렸는데, 변변한 직장 생활 경험조차 없는 내가 재벌가의 화려한 일상이나 음험한 암투 같은 건 감도 안 오고, 어찌어찌 흉내 내서 써본들 얄팍한 바닥만 금방 드러나지 싶고. 안 되겠더라고요.
당시 사극풍 로맨스가 유행이었어요. 인기작들이 드라마로도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아! 저거 쓰자, 이랬죠. 내가 재벌 얘기는 못 써도 왕족 남주는 웬만큼 쓰겠다 싶어서 시작한 소재였어요.
그러니까 영감을 받아서 썼다기보다 뭘 골라야 내가 쓸 수 있을까가 중요했던 거죠.
 
숨 쉬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게 글감이에요. 글감이란 게 어느 날 갑자기 번쩍, 하고 떠오르거나 어디서 뚝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나중엔 글이 돼요. 흔하게 스치는 일상도 이미 내게 있던 정서적 경험을 만나고 약간의 사유가 입혀지면 글감이 되는 거죠. 뭐든 떠오르면 일단 메모해둡니다. 어딘가에는 꼭 쓸 데가 생기더라고요.

 

4. <터널왈라의 노래>라는 순문학 작품으로 등단까지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순문학을 쓰다가 웹소설도 동시에 쓰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문학으로 꿈을 먹고 웹소설로 밥을 먹습니다. 문단문학 소설가로 등단하는 게 내 오랜 꿈이었으니까 긴 호흡으로 계속 가는 거고 웹소설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도록 밥을 먹여주니까 역시 그만둘 수 없는 거죠. 올 안으로 에세이가 출간됩니다. 이어서 단편소설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어요. 신작 웹소설도 이미 시작했고요.
사실 글 쓰는 일 외에 다른 잘하는 게 별로 없어요. 가장 오래 매달린 일이기도 하고요. 어느 쪽이든 하는 데까지 해보는 거예요. 할만하니까요.
 
문단문학 쓰다가 웹소설 쓰다가 하면 힘들지 않냐? 묻습니다.
힘들어요. 스포츠 종목마다 선수들이 쓰는 근육이 다르듯 작가가 사용하는 뇌가 그만큼 달라집니다. 문단문학에서는 주제를 완성하는 문장 하나하나의 밀도를, 웹소설에서는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서사의 힘을 고민해요. 사실, 땡볕에서 잔디 밟고 축구하다가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 신고 하키 스틱 휘두르는 기분이에요.
아무튼 창작 피지컬이 허용할 때까지 계속 둘 다 해보려고요. 역시, 할만하니까요.

 

5. 현재 유튜브도 운영하면서 웹소설 쓰는 방법과 일상 등을 공유하고 계신데채널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웹소설에서 내가 겪은 시행착오들 대부분이 미리 알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것들이었어요. 실패하는 과정에서도 무언가는 배운다고 하지만, 그걸 미리 배워두면 실패의 규모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일천하지만 이 분야에 새롭게 도전하는 지망생분들께 약간의 도움을 드리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제 유튜브를 통해 큰 도움을 얻었다 말해주십니다. 빵무늬 덕분에 이번에 출간 계약했다, 꿈만 꾸던 걸 현실로 만들게 됐다, 고맙다, 유튜브 해줘서 정말 고맙다…… 이런 말씀들을 전해주세요.
덕분이긴요. 전부 그분들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결과겠지만, 기쁜 소식 들려주시는 게 제겐 정말 큰 보람이에요. 제가 먼저 가서 알게 된 걸 나눠드리고, 이것으로 누군가의 인생에 작게나마 바람직한 도움을 드렸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아, 물론 저의 집필 생활에는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시간과 체력이 제법 소모되는 편이니까요. 그래도 3만 넘는 구독자님들과 끝까지 의리를 지킬 생각이에요.

 

 

(좌)방송 중인 정무늬 작가, (우)빵무늬 유튜브 채널에 등장하는 캐릭터 ⓒ정무늬

 

6. 로맨스 판타지 장르를 주로 쓰시는데 그 이유와 도전하고 싶으신 다른 장르들이 있을까요?

사실 ‘로맨스 판타지를 써야지!’라며 작정하고 쓰는 건 아니에요. 어떤 세계관을 그려놓고 하나씩 이야기를 꾸리다 보니 로판이 가장 어울린다 싶어서입니다. 어느 한 장르에 가두고 싶지는 않아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중요하지 장르가 우선인 건 아니니까요. 머잖은 미래에 스릴러 장르에는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7. 치열한 K-웹소설 시장에서 작가님 작품만의 차별점은 어떤 것들인가요또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웹소설 시장은 냉정한 세계예요. 트렌드를 놓친 작가는 막차 놓친 취객이 되고 말아요.
그래서 신작 웹소설 인기작이 뜨면 꽤 챙겨 보는 편이에요. 문장이나 구성이 문단문학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작가님들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부쩍 더 그래졌어요.
웹소설이 유치하다고 흘겨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동의하진 않아도 견해를 존중합니다.
제 작품에도 딱히 차별점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좀 유치해 보여도 쉽게 읽히는 이야기, 푹 빠져드는 이야기가 웹소설의 본분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작가로서보다, 작품이 기억나야 할 텐데요. 아직은 그런 작품을 쓰지 못했어요.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그런 작품도 나오겠죠.

 

8. 웹소설 공모전에서 두번이나 수상하신 만큼 공모전 공략법이 있으실 것 같은데공모전을 지원할 때 중요한 포인트와 당부하고 싶은 바를 간략하게 알려주실 수 있나요?

무엇보다 시놉시스를 탄탄하게 다져놓으라 당부드리고 싶어요. 투고형이든 연재형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작품을 한두 줄 문장으로 서술할 수 있어야 독자도 눈길이 가요. 시놉에서 이 소설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면 작가도 완결까지 길을 잃고 헤매지 않게 됩니다.
 
순문학 등단제도와 웹소설 공모전은 방식과 경로가 너무나 달라 함께 놓고 비교하긴 어려워요. 다만 신춘문예 같은 문단문학 공모전이 신예의 가능성을 사주는 무대라면, 웹소설 공모전의 패권은 익명의 독자 다수가 쥐고 있습니다. 잘 쓴 글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산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라요.
 

9. 8년차 웹소설 작가이시지만지금도 웹소설을 쓸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호흡을 놓치지 않는 게 가장 어려워요.
이 ‘호흡’은 트렌드일 수도 있고, 독자층의 보편 정서일 수도 있어요. 이야기 전체의 리듬이거나 한 회차의 구성이기도 해요.
이 변화가 매우 빠릅니다. 빨라도 너무 빨라요. 원고 시작할 때 다르고 탈고할 때 다릅니다. 지난달까지 핫한 트렌드였는데 런칭 달에는 이미 한물 가 버린 이야기가 되는 일이 부지기수예요.
시대와 관계없이 공감하며 좋아하는 이야기, 그 안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디테일을 찾아내는 균형감각이 웹소설 작가의 생명력을 좌우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게 가장 어렵기도 하고요.

 

ⓒ정무늬

 

10. <세자빈의 발칙한 비밀>, <개미 조연이 다 가진다등 작품들의 제목이 눈에 띄는데요작품의 제목 선정 시에 고려하는 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웹소설 제목을 ‘소나기’, ‘광장’, ‘토지’, ‘혼불’, ‘태백산맥’, 이렇게 지으면 열에 아홉 망합니다. 회화적이거나 추상적인 제목보다는 좀 더 영상적인 제목을 항상 고민해요.
제목에서 연상되는 작품의 줄거리, 어떻게 흘러가는 이야기인가를 제목으로 알려주려고 하는 거죠. 그래야 클릭하고, 클릭해야 독자가 되니까요.
 

11. 순문학과 웹소설의 세계가 다르지만 무엇 하나를 고집하지 않고서서로 존중하고 배울 점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작가님의 마인드에서 문화다양성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특별히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계기 또는 순간이 있나요?

 

작업 중인 정무늬 작가 ⓒ정무늬

 

신춘문예 등단 이후, 웹소설 작가가 순문학으로 등단했다고 흥미 어린 시선들을 받았습니다. 드물게는 순문학 작가가 웹소설이나 쓰고 앉았다며 멸시 어린 조롱을 받기도 했지요.
어느 쪽이든 사실 제게 그런 자의식은 없습니다. 그저 쓰고, 쓰는 시간 외에는 읽거나 놉니다. 작가나 작품의 무대에 서열과 계급을 나누는 무의식에 동조하지 않아요.
드물게 순문학과 웹소설을 겸하는 작가로 이왕 알려진 터라, 각각의 독자들이 서로 다른 장르의 간극을 좁히고 장벽을 허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을 갖습니다.

 

12. 마지막 질문입니다우리나라 웹소설이 최근 해외에서도 잇따라 번역돼 런칭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K-웹소설만의 강점과 추후 보완해야 할 점에 대해 짧은 생각을 말씀해주세요.

몇 년 전에 쓴 ‘완결 후 에반젤린’ 이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웹툰이 나오고 여러 언어로 번역이 되고 있어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각 나라마다 다른 문화를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현지에서 달라지는 뉘앙스 때문에 주인공의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웹소설을 깊이 이해하는 웹소설 전문 번역가가 길러지고 그분들이 작가만큼 각광받는 시대가 오면 해외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 생각해요.
 
양판소, 또 회빙환? 등 웹소설의 소재와 세계관에 대한 비아냥, 혹은 자성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디로든 이동할 거예요. 웹소설은 자생적 발전을 거듭할 겁니다. 이 시장은 권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철저히 독자가 주도해 갈 시장이니까요. 거기에 몸을 싣고 어디든 두둥실 떠 있고 싶습니다. 오래오래.

 

 

 

 

 


정무늬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이자, 웹소설로 먹고사는 이야기 생산자. 문단 문학과 웹소설 사이의 가파른 벽을 넘나들며 성실하게 작품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웹소설 작가 지망생들이 꿈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길 바라며 유튜브 채널 <웃기는 작가 빵무늬>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