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의 세계화와 새로운 도전 (임영묵 작가) 첨부이미지 : 그림4.png

*본 게시물은 ‘K-컬처의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칼럼입니다.

오늘날 K-컬처라고 불리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종의 새로운 지구적 현상으로서 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국 문화가 최근 국제화되기는 했어도 결국에는 비주류 문화이며 미국 대중문화라는 세계적 보편 문화의 패권은 계속될 것이다’라는 전망은 BTS와 드라마 <오징어게임> 등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K-컬처의 신화는 이제 웹툰 등의 다른 매체를 통해서 확장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예 음식, 언어, 패션 등 전방위적 수준에 걸친 ‘한류 붐’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립아트코리아

 

그러나 K-컬처의 지구적 부상은 단순히 기뻐하기만 할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 이는 시장이 확장되고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다는 차원에서 즐거운 현상으로만 해석되었다. 하지만 한국 문화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세계의 한류 팬들은, 곧바로 한국 콘텐츠가 국외의 다양한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는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20년에는 세계적인 걸그룹 블랙핑크가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을 냈을 때, 인도의 네티즌들은 힌두교의 주요 신인 가네샤가 화면의 밑에 등장한 것을 두고 ‘우리들의 신을 바닥에 두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YG 측은 의도치 않았던 실수라며 사과하고 뮤직비디오를 수정했다.

2022년에는 MBC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빅마우스’의 대사가 태국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극 중에서 등장한 ‘네 엄마가 너 같은 사이코를 낳고 대체 뭘 드셨냐, 똠양꿍?’라는 식의 대사에 태국 네티즌들은 왜 자국의 대표 식문화인 똠양꿍이 비하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두고 드라마를 비판했다.

드라마 <빅 마우스>의 한 장면 (출처=MBC캡처)

 

이런 논란이 일어난 것은 K-컬처의 부상이 한국인으로서도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대중문화는 그동안 철저히 한국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제작되었고, 소수 해외 소비자는 부수적 이익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OTT와 플랫폼을 통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 문화에 주목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전 세계 무수한 민족과 문화를 고려해가면서까지 콘텐츠를 제작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 결과 일부 콘텐츠가 문화 희화화 및 비하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고, 마침내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문제가 새롭게 등장한 거대한 해외 소비층에게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음을 점차 깨닫고 있다.

그런데 세계에 대해 갖는 한국의 둔감함이 만들어내는 ‘실수’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더 큰 파급효과를 만들 수 있다. 사실 K-컬처의 ‘실수’를 짚어내는 소비자들은 해당 국가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높은 집단이다. 계속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국의 한류 팬끼리 소통하면서 문제점을 파악하고 집단으로 항의하는 식이다. 그러나 애정으로 시작한 관심은 한국 콘텐츠의 부주의함을 계속 접하다 보면 ‘배신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 문화를 가장 열정적으로 소비하는 ‘한류 전도사’들은, 방향만 바꾸면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가장 널리 전파하는 ‘한국 안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한국 네티즌과 인터넷 전쟁을 벌이는 중국 네티즌의 상당수는 과거에도 지금도 한류 팬인 경우가 많다. 한중 양국의 감정이 악화되었을 때, 한국에 관심이 원래부터 많던 중국의 한류 팬은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집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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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례는 물론 한국의 콘텐츠 제작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여러 변수가 많이 개입되었기에 무척이나 예외적인 경우다. 하지만 중국의 선례는 해외의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 문화의 위상을 획득한 한국이 그 부주의함으로 인해서 한국에 대한 반발도 동시에 키운다면, 그것은 분명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아직은 K-컬처의 아우라가 환하게 빛나고 있는 지금, 콘텐츠 제작자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반의 ‘글로벌 감수성’을 키울 때 K-컬처는 세계 문화로서 지속가능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임명묵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대학원에서 서아시아 현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동시에 역사, 국제정치, 대중문화, 20세기와 21세기의 사회 및 문화 변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으며, 덩샤오핑 시대에서 시진핑 시대로의 전환을 다룬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과 한국 사회 비평서인 <K를 생각한다>를 저술했다. 그 외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시사저널 등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