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가 되어버린 게임음악 (성용원 작곡가) 첨부이미지 : 성용원.jpg

사회 현상을 바라보고 음악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에 관해 생각해보는 대학 교양수업 강의. 음악전공자가 아닌 가지각색의 전공이 섞인 이들 100명에게 가장 좋아하고 감명 깊게 들은 음악과 작곡가는 누구냐는 앙케이트에서 1위를 차지한 인물은 누구일까? 베토벤? 슈베르트? 윤종신? 영예의 1위를 차지한 작곡가는 올해 70살을 맞는 일본의 히사이시 조다.

 

▲작곡가 히사이시 조 ⓒOmar Cruz (출처=지니뮤직)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ST)을 작곡하고 올 6월에 새로 출시된 국산 모바일 게임의 음악을 감수하기도 한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사용된 게임을 플레이하면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마치 한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몰입감과 설렘을 느낄 수 있다.

▲히사이시 조가 음악 감수를 맡았던 신작 모바일 게임 <제2의나라> (출처=넷마블)

 

2021년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콘서트가 완판을 기록했다. 코로나 감염예방으로 인한 객석 간 거리 두기 적용으로 전체 좌석의 66%만 개방한 총 4000석은 오픈하자마자 매진되어버렸다. 공연 이름은 ‘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 디 오케스트라’. 공연을 앞두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앞에는 바드, 아무무, 티모, 트위치, 블리츠크랭크 등 리그 오브 레전드의 사랑받고 있는 챔피언 5종의 대형 풍선이 세워졌고 지휘봉을 든 티모 외에 나머지 네 캐릭터는 바이올린, 퍼커션 등 악기를 하나씩 들고 챔피언 악단을 연출했다. 지금까지 이런 류의 음악회가 게임개발사의 이벤트성으로 개최되어 공연예술계와 분리되어 있었다면 이번 공연은 한국 제일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KBS교향악단이 명실상부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한 게임과 정통 클래식 음악계와의 만남이었다.

 

▲게임음악 콘서트<리그 오브 레전드 : 디 오케스트라>의 포스터와 당시 공연장 설치물 (제공=라이엇 게임즈)

 

물론 게임음악에 대한 관심은 이전부터 있었다. 2002년부터 게임 음악 콘서트가 게임 유저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열렸지만 게임업계 중심으로 기획되다 보니 정작 공연계에선 서브컬처 정도로만 인식되다가 2017년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게임 속의 오케스트라'로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 등을 꾸준히 선보이다가 올해 이번 공연으로 현대 사회에서 게임의 높은 위상과 성장 가능성을 다시 증명하였다. 과거에는 단순한 전자 효과음이나 단일 악기의 멜로디 정도로 구성하며 비디오게임의 효과음 혹은 단순한 배경음악 정도로 인식되었던 게임 음악, 일부의 게임중독과 과요금제, 그리고 킬링타임용 하위오락이라는 게임에 박힌 뿌리 깊은 선입견과 경계를 뛰어넘어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디지털 사회의 핵심 산업으로 주목받은 게임이 코로나19 이후에 현실과 가상이 융합된 초월적 세계의 대표주자인 메타버스로 도약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 살아있는 방증이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 디 오케스트라>에 참여한 KBS교향악단의 모습(제공=라이엇 게임즈)

 

일반적으로 OST(Original Sound Track)라고도 하고 언더스코어(Underscore)라고 하는 게임음악은 일반 음악과는 달리 대사와 바람, 파도, 발자국 등 많은 효과음 또한 함께 수록되기 때문에 OST라고 불리는 사운드라는 전체적인 소리의 틀 안에 대사, 효과음이 더불어 존재한다. 이 소리들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게임 속에서 함께 움직이면서 게임의 스토리와 장면, 스테이지에 부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어울리는 기존의 곡을 사용하기도 하고 영상의 이미지와 완전히 일치할 수 있는 창작곡을 만들기도 한다. 게임음악은 게임이라는 미디어 안에 포함되어 있는 범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음악과 게임이 함께 좋은 기억으로 남을 때, 게임을 하고 싶고 음악만 들어도 당장 게임을 키고 싶게 만드는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설레임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게 게임음악의 역할이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지 모른다’의 현대판 버전인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의 작곡가 폴 로메오(Paul Romero),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의 메인타이틀곡 <프론티어>의 재일동포 작곡가 양방언, 이미 영화음악의 대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한스 짐머(Hans Zimmer), 상술한 히사이시 조와 더불어 류이치 사카모토 같은 작곡가들은 클래식, 영화, 애니메이션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횡으로 넘나들면서 훌륭한 음악으로 예술성을 인정 받아 게임 음악을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격상시켰다.

▲(왼쪽부터) 작곡가 양방언, 한스 짐머, 류이치 사카모토(출처=양방언 공식 트위터, 위키백과, 지니뮤직)

 

또한 2011년 제5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문명 4> 주제곡인 <바바 예투>가 최우수 연주음악편곡상 합창 부문을 수상하는가 하면, 2012년부터는 영화와 드라마 OST와 함께 ‘시각 매체 음악’(Music for Visual Media)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게임 음악을 따로 카테고리로 분류해 놓았다.

 

🔗<문명4> 주제곡 '바바 예투'

 

모바일과 비대면 OTT 콘텐츠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와 범람으로 언제 어디서든 자기가 원하는 걸 감상하고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동성(Portability)과 반복성(repeatability)이 확대되었으며 미디어가 다양화되면서 새로운 체험감각 또한 다양해졌다. 또한 사운드기술이 발전하고 멀티미디어형태로 발전하면서 인간과 컴퓨터가 상호작용하면서 음악의 작곡, 연주 및 감상을 할 수 있는 Interactive Computer Music이 활성화 되어 인간의 음성 및 감성을 인지하여 곡을 자동으로 생성 또는 연주하는 기술, 청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해지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게임음악의 영역에 포함될거라 전망한다.

 

🔗 스타크래프트 라이브 콘서트 영상

 

게임음악 콘서트는 게임을 했던 사람들이 게임에 삽입된 음악을 알고 게임의 팬이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이 명확하고 주제가 확연하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내용을 알고 모이기 때문에 동질감과 몰입도가 강할 수밖에 없다. 게임 음악은 장르, 구성, 스토리, 상황에 맞게 적절한 모든 장르의 음악과 악기들이 적재적소에 쓰이면서 게임을 하나의 복합문화상품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

게임음악이 원 소스 멀티유스로서 다른 장르와 결합되어 여러가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처럼 게임 음악은 무궁무진한 미래친화적인 산업이다. 분명한 건 자신이 현재 즐기며 이 시대의 플랫폼에 적용되는 음악만이 세월이 흐르면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아 영원불멸을 얻을 것이란 사실이다. 이미 유럽에선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의 학생 오케스트라에서 전통 클래식 레퍼토리가 아닌 게임 음악만을 선곡하여 정기연주회를 꾸미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이제 한국에서도 베토벤의 교향곡과 슈퍼 마리오가 유명 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의 한 무대에서 같이 연주될 날이 멀지 않았다.

 

 

 

 

 

 

 

 

글  성용원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