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스포츠를 권하는 세계를 꿈꿉니다(함은주 전 하키선수) 첨부이미지 : 함은주.jpg

문화다양성 인터뷰에서는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달의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전 하키선수 출신으로 현재 스포츠인권연구소에서 국내 체육계의 인권운동에 앞장 서고 계신 함은주 위원을 만나봤습니다.

 

1. 함은주 위원님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스포츠인권연구소란 곳에서 대외협력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는 함은주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문화연대 집행위원으로 대안체육회라는 소위원회 활동을 합니다.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했고 대학에서 강의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2. 대학교 1학년 때까지 하키 선수로 활동하셨다고 들었습니다하키를 배우고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하키를 시작했습니다. 다니던 학교에 하키부가 있었는데 하키부를 담당하시던 체육 선생님이 너무 적극적으로 하키를 권하셨어요. 저도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고, 신체조건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습니다. 또 생소한 장비(스틱)를 들고 하는 운동이고 흔하지 않은 것이라 멋있어 보이기도 해서 못 이기는 척 하키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적극적인 선생님의 권유에 설득당하셨죠.

 

3. 대학 1학년이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하키를 그만두셨는데요운동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하키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었고 찾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렵게 대학을 왔는데 - 제가 입학할 당시 전국에 하키를 하는 여자 고등학교는 30개교가 조금 안 되는 정도였는데 대학은 한국체육대학교, 경희대학교, 인제대학교, 그리고 인천전문대학. 전문대학 포함해 4개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운동할 때와 다른 것이 없었어요. 오히려 더 힘들고, 자율성이나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았어요. 훈련 위주의 생활이었고, 강의도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오전 훈련이 없어도 기숙사 청소하고 선배들의 심부름을 하다 보면 강의시간을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강의는 물론이고 제 과제를 할 시간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선배들의 과제뿐 아니라 반성문까지 대신 써 줘야 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제가 상상한 대학 생활과는 전혀 달랐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을 졸업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겠다 싶었어요. 졸업한 선배들을 봐도 그랬구요.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사례가 없었습니다. 훈련이 재미있지도 않았고 하키를 열심히 잘 해서 무엇인가가 되거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키를 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거죠.

 

4. 비인기 종목의 선수로 활동하면서 직접 경험하셨던 애환을 간단하게 들려주실 수 있나요?

운동을 그만둔 지금까지도 겪고 있는 대표적인 애환이 있는데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제가 하키 선수였다고 하면 아이스하키를 했던 사람으로 오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필드하키라고 해야 ‘아~ ’하고 이해를 하죠. 필드하키의 공식 명칭이 하키이고 아이스하키는 ‘아이스하키’가 공식 명칭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키’라고 하면 ‘아이스하키’인 줄 압니다. 2019년, 국가대표 코치 성폭력 사건으로 인터뷰를 한창 할 때 많은 언론사에 전직 ‘아이스하키 선수였다고 소개가 되었습니다. 인터뷰 시작 전에 기자들이 종종 ’스케이트를 잘 타시겠네요‘라고 하죠. 이런 애환이야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키 ⓒ네이버스포츠백과

가장 큰 것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하키만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라는 점입니다. 은퇴 이후의 삶이 막막한 것이지요. 제가 운동할 때는 정말 운동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학생선수의 학습권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선수들은 새벽부터 야간까지 운동만 해야 했고, 정규 수업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다른 취미 활동이나 운동을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또 하키가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운동 외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어요. 배드민턴이나 탁구, 테니스처럼 생활체육 동호인이 많은 것도 아니고 -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프로팀은커녕 실업팀이라 부르기 민망한 서너 개의 직장운동 경기부만 존재하니 하키를 열심히 해서 국가대표가 되어도 전문체육(학교운동부, 직장운동경기부) 지도자가 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학에서도 강의를 듣거나 전공 관련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제 또래 하키를 했던 선수들, 특히 여성 선수들 중에서 하키는 물론, 스포츠와 관련된 일을 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랍니다.

 

5. 요즘 운동하는 여성이 많아지긴 했지만농구축구야구와 같은 스포츠 종목을 보면 여성이 스포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아주 적은 것 같습니다. ‘여학생은 운동을 싫어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스포츠 참여의 구분 중에 ‘정서적 참여’라는 것이 있습니다. 스포츠 및 스포츠 선수에 대한 선호, 즉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 응원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정서적 참여’를 설명하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카바디 좋아해요?”, 혹은 “세팍타크로 좋아하나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답을 못합니다. 카바디나 세팍타크로란 종목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카바디 경기장면(이장군 선수 제공) ⓒ아주경제

 

운동이, 스포츠가 무엇인지 모르고, 참여 경험이 없는데, 그것이 좋고 싫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여학생이 운동을 싫어한다’라는 표현이 불편하고, 또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모르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겁니다.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특정한 여성상, 즉 성별 고정관념과 스포츠에 대한 남성중심적 사고(이 역시도 고정관념)와 편견이 교육과 스포츠 관련 문화 제도에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여학생은 운동을 싫어한다’라는 고정관념이 고착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교사로 구성된 초등성평등연구회 ‘모두의 넷볼’ 강습 사진 ⓒ서울신문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여학생을 움직이게 하자’라던가 ‘여학생이 좋아할 만한 스포츠(운동)’를 골라 ‘여학생 특화 스포츠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기획하고 제공하는데, 이 역시도 차별과 차이를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여학생의 스포츠 참여 기회를 여학생들이 할 만한(?) 특정 스포츠 범주로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 우연히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를 경험한 여성들이 ‘이 좋은 걸 왜 남자만 하고 살았냐?’라고 질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6. 은퇴 이후스포츠 인권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연구라고까지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계속 공부 중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스포츠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국가대표 지도자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 혁신위원회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위계적이고 폭력적이며 폐쇄적인 운동부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고 대학원에서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대학원 시절부터 문화연대를 후원했고 조금씩 활동을 해왔었습니다. 그때부터 스포츠계 폭력이나 성적 지상주의 문화, 학습권 등의 이슈가 있을 때마다 목소리를 내는 활동들을 해오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저도 이 질문을 계기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특별한 계기나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스포츠계에 내재된 다양한 구조적 문제들이 많고 이를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변화에 대한 열망이 계속 있었고 더디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해왔고, 그 과정에서 체감한 부족한 역량을 조금씩 보충, 보완하고 있을 뿐입니다.

 

함은주 위원이 체육계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 ⓒ MBC 100분 토론

 

7. 함은주 위원님께서는 은퇴 후에도 운동을 하시나요어떤 운동을 즐겨 하시는지요?

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공이고 강의를 위해서 해야 하는 부분도 있구요. 저는 몸을 부딪히며 하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하키와 유사한 플로어볼이라는 뉴스포츠가 있어요. 핀란드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는 프로리그까지 있는 매우 인기 있는 스포츠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중심으로 보급되기 시작해서 스포츠클럽 활동으로 인기가 있는 스포츠입니다.

 

플로어볼 경기 장면 ⓒ 네이버 지식백과

 

동호회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근래에는 운동을 못하고 대회 출전도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주 1회 동호회 운동을 하고 매해 2~3회 이상 대회 출전을 했었지요. 현재 대한 플로어볼협회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집에서 유튜브를 보며 꾸준히 줌바나 요가, 순환 운동 등 홈트레이닝을 합니다. 아주 가끔 배우자와 골프를 칠 때도 있고, 겨울에는 주말마다 스키를 탑니다. 운동(sport)하고 운동(movement)도 합니다.

 

8.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예전 스포츠경기에서 메달에 연연했던 것과 달리 올림픽과 선수들을 대하는 정서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위원님께서는 이번 올림픽을 보며 느끼셨던 소감이 있으셨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도 그리고 올림픽을 시청하는 대중들도 변화하고 있음을 저도 느낍니다. 올림픽 메달, 성적을 떠나 스포츠의 탁월성을 구현하는 선수들의 멋짐, 그런 스포츠의 탁월성을 즐기는 대중들의 인식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던 올림픽이었습니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우상혁 선수의 경기 장면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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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올림픽을 통해 갖게 된 스포츠, 특히 비인기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스포츠 참여로 이어지기엔 우리나라 스포츠 현장의 문화나 인프라가 너무 비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배구나 펜싱, 양궁, 다이빙, 높이뛰기 같은 스포츠를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참여하고 관람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까지 우리나라 현실에서 스포츠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포츠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고 스포츠가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권하지만, 현실은 누구나 쉽게 스포츠를 할 수 없습니다. 아직 우리나라 현실에서 스포츠 참여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는 못 되는 것 같습니다.

 

9. 도쿄올림픽은 역대 가장 많은 여성 선수가 참여하여 성평등 올림픽이 될 거란 기대를 모았었는데요

실제 성평등의 관점에서 이번 올림픽을 평가해주신다면?

점수를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올림픽, 스포츠에서의 성평등을 동등한 성비의 올림픽 출전이나 스포츠 참여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나 임원의 비율, 올림픽 참가자와 회원국, 그리고 조직 전반의 문화에 이르기까지 성평등의 가치가 실현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2020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중 여성 비율이 48.5%로 역대 올림픽 중 남녀선수 비율 50:50에 가장 근접한 대회라고 합니다만, 역대 IOC 집행위원 중 여성은 33.3%에 불과하고 IOC는 지금까지 여성 위원장은 한 번도 선출한 적이 없습니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본 적지 않은 국가들의 단복은 성별에 따라 달랐고 육상 혼성 종목의 경우엔 같은 팀인데도 불구하고 성별간 유니폼의 길이가 달랐습니다. 자녀를 둔 기혼 여자 선수들은 엄마 영웅, 로켓맘 등으로 지칭 됩니다. 남자 선수들에게는 결혼 여부, 자녀 유무가 언급조차 되지 않는 데 말입니다.

성평등 올림픽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보니 제게는 차별이 더 확연히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도쿄올림픽은 IOC의 성평등 프로젝트가 이행된 첫 번째 올림픽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여성 선수들의 참여비율을 높이고 혼성 종목을 도입하는 등의 시도는 분명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영복 대신 긴바지를 입고 올림픽에 참가한 독일여자기계체조 대표팀 ⓒ 파을린쉬퍼 SNS

 

10. 한 칼럼에서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고 차별에 민감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렇다면 스포츠에서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기준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스포츠에서의 성별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고 차별에 민감해져야 한다는 것은 성별의 다름이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명제를 의미합니다만, 우리가 인지하는 성별 간의 차이가 정말 차이인지 예민하고 민감하게 살펴야 한다는 의도를 담은 글이기도 했습니다. 스포츠 현장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성별 간의 차이, 혹은 차이라고 믿는 것이 정말 차이인지 혹은 성별 고정관념으로 인해 굳어진 허위의식이 아닌지 말이죠. 그래서 차별의 상황을 스스로 묵인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아닌지.

예를 들면, 최근에 은퇴한 여자 선수로부터 ‘여자 선수들은 남자에 비해 선수 생명이 짧다’ 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왜 짧은지, 정말 짧은지에 대해선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이를 증명할 만한 과학적 근거도 없습니다. 왜 짧다고 생각할까요? 결혼과 출산 때문일까요?

그리고 여자 실업팀이나 프로리그가 남자팀에 비해 적거나 거의 전무한 것, 대학 운동부도 여자 운동부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것, 여자 지도자가 적고, 여자 임원이 적은 것, 심지어 스포츠 조직의 남자들이 임용할 만한 역량을 갖춘 여자 지도자, 임원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 등은 ‘여자 선수들은 남자에 비해 선수 생명이 짧다.’는 허위의식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고 민감해져야 한다는 것은 차이가 맞는지 관습적으로 생각한 차이가 차별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차이라는 말로 숨겨진 차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발견되고 보여야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11. <뭉쳐야 찬다>, <노는 언니등 스포츠 스타들의 세컨드 라이프를 다룬 예능이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진지하게 축구에 최선을 다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골때리는 그녀들>도 신선한 화제를 모으고 있고요이러한 트렌드에 대한 위원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트렌드 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노는 언니>와 <골 때리는 그녀들>은 결이 다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E채널 ‘노는언니’

 

먼저 <노는 언니>라는 프로그램은 그동안 남자 스포츠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던 스포츠 예능과 방송계에서 여성 스포츠 선수들에게 길을 터 주었다는 점,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커리어 패스를 연장해주고 다양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제작진(CP)과 출연진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콘텐츠의 서사나 카메라의 시선이 남성 중심의 스포츠 예능과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 SBS ‘골 때리는 그녀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여성 셀럽들이 남성의 스포츠라고 여겨졌던 축구를 통해 일종의 스포츠리터러시(스포츠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그 가치와 의미를 체감하는)를 경험하고 그것을 방송을 통해 전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전이되고 공감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골 때리는 그녀들>은 출연진을 제외하고는 남성들에 의해 이끌려 가는 느낌이에요. 스포츠, 축구는 역시 남성들의 스포츠라는 울타리를 쳐 놓고 여성 출연진을 입장시켜 준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울타리 밖에서 남자들이 지시하고 설명하고 중계하고 시청자들은 구경하고... 회를 거듭하면서 관점이 약간 달라지긴 했지만, <골 때리는 그녀들>은 ‘맨스플레인’ 프레임이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들이 축구에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여성들이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와 장은 희소하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12. 마지막으로 함은주 위원님이 바라는 스포츠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요?

누구에게나 열린 모두의 스포츠 세계가 제가 원하는 스포츠 세계입니다. 특정인, 체육인이라 지칭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세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체육인인 세계. 그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스포츠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누구에게나 쉽게 스포츠를 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스포츠를 권했을 때 그 권유를 이행할 것인지의 여부는 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따른 것이지 환경, 제도, 계층, 사회문화적, 경제적인 조건이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포츠 하다가 죽는 선수가 없었으면 좋겠고 좋아하는 스포츠를 폭력, 성폭력 같은 인권침해 때문에 그만두는 선수가 없었으면 합니다. 여성은 물론,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모두가 다양한 스포츠를 향유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스포츠의 재미를 경험한 사람들은 스포츠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고들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스포츠 없는 삶을 상상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스포츠계의 폐쇄성도 자연스럽게 변화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과 사고들을 반영해야 하니까요.

 


함은주
하키선수 출신으로 운동(sport)하는 운동가(activist)를 지향한다. 스포츠사회학을 전공했으며, 스포츠인권구소 대외협력위원장, 문화연대 집행위원을 맡아 스포츠 문화정책, 스포츠인권, 성평등 스포츠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시체육회 성평등위원회 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양성평등정책위원회 위원, 대학스포츠협의회 인권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