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리스 패션의 역할 (박세진 패션 칼럼니스트) 첨부이미지 : 2박세진 젠더리스패션의 역할.jpg

패션은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걸 대변한다. 누구나 옷을 입고,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옷이기 때문에 드러내기가 쉽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세계를 면밀히 구축하고 사람들은 거기서 영감을 얻어 선택과 조합이라는 소비를 통해 자기 만의 패션을 만들어 간다. 이게 패션이라는 현대의 문화를 아마도 가장 근사하게 대변하는 말일 거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근육질, 마른 몸, 글래머러스, 가는 허리 등으로 재단된 인체는 강력한 이미지의 광고에 의해 계속 반복되며 패션을 즐기기 위해 갖춰야하는 필수품처럼 되었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기준에 부합하는 옷을 입어야 잘 살고 있는 사회인으로 여겨지고, 체질과 상관없는 몸을 만들기 위해 건강을 희생하며 도전한다. 기준을 따라하지 못하는 이들은 게으름, 자기관리 부실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어느새 이런 기준은 내면화되어 그렇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자기검열을 하게 만든다.

주류 패션은 이렇게 죄책감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라는 규범을 확대하고 재생산했다. 사회적 편견, 성별 역할은 이러한 재생산 속에서 강화된다. 스스로 기존의 남성상, 여성상에 맞춰 만들어진 불편한 옷을 입으면서 이건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거나 훌륭한 자기 관리의 결과라는 식으로 정당화를 한다. 예능 방송 같은 데서는 사회적으로 '잘못된' 옷을 입은 사람들을 희화화 한다.
 
다양한 직업과 환경, 인종이나 성소수자의 영역 등등으로 가면 문제는 더 복잡하다. 조금 더 단순했던 예전처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남성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남성, 여성처럼 대해지고 싶지 않은 여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게 정말 개성인가 하는 의문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그래도 다들 좋다는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생각은 지속되어 왔다.

2019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드레스를 입었던 빌리 포터 (출처=허프포스트코리아)

본격적인 변화가 찾아온 건 외부요인 덕분이다. 미투 운동이나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 등이 지나가며 사회 속에서 성별 역할, 인종 다양성과 문화 다양성, 성별 역할과 성 다양성의 문제는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그리고 패션에는 반성이 찾아왔다. 사실 반성보다 사람들의 비판이 먼저 찾아왔고, 변화를 강요받게 되었다.

BLACK LIVES MATTER와 ME TOO 집회 현장 (출처=위키피디아)

 

젠더리스 패션은 이런 과거에 대한 대응 중 하나다. 옷의 성별 구분 없이 기능성과 편리함을 바탕에 깔고 그 자리에서부터 패션의 새로운 미감을 찾아나선다. 옷으로 기존의 성별 구분을 희미하게 만든다면 겉모습만 보고 무의식적인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며 대하는 태도도 나오지 않을 거다. 성을 감추는 듯한 태도는 자신의 몸을 자랑스러워 하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자기 몸 긍정주의와 얼핏 충돌하는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양쪽 다 패션은 누가 상관할 바 없는 자신 만의 것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한다.
 
이는 상업적으로도 이미 의미가 있다. 구찌나 루이비통 등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부터 자라나 유니클로 같은 대중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까지 다들 젠더리스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단순히 장사의 측면에서 봐도 자발적으로 고객을 특정해 한정시키는 건 소비자의 수만 줄일 뿐이다. 전통적 분류의 고집은 브랜드의 이미지도 낡게 만든다. 특히 아웃도어나 캐주얼한 의류는 접근도 쉽기 때문에 늘어나는 추세다.

 

2022 봄여름 콜렉션에 등장한 스코트(쇼츠+스커트), 나이키의 젠더리스컬렉션 (출처=프라다 홈페이지, 나이키코리아)

 

국내에서도 스파오나 에잇세컨즈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에서 젠더리스 컬렉션을 내놨다. 특히 아더에러나 오호스, 비건타이거 등 젊은 디자이너들이 이끄는 국내 브랜드 중에도 젠더리스 룩을 포함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교복 같은 분야에도 젠더리스 패션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영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교복에서 남성, 여성을 분류하는 걸 아예 금지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최근들어 편하고 실용적인 이유로 후드나 바지 등 젠더리스 패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와 일본의 성중립교복 사례 (이미지 출처=드네딘노스중학교, 조선일보)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옷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 사실 그건 옷의 문제가 아니다. 옷만 보고서 다르게 대응하는 사람의 문제다. 그런 사회라면 사기꾼은 제일 먼저 좋은 옷을 사러 갈 거고 그게 아주 잘 먹힐 거다. 하지만 나와 남이 생긴 것, 습관, 취향, 직업, 삶의 방식 등 모든 게 다르듯 옷도 다르다. 남이 왜 저 옷을 입었는지는 알 길이 없고 알 필요도 없다. 타인의 패션은 존경이나 폄하,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받아들이는 대상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게 현대 사회가 아닌가.

이미지 출처=비건타이거, 라카

 

사실 젠더리스 패션은 과도기적인 측면이 있다. 취향은 다양하고 옷이 만드는 불편함과 갑갑함을 즐기며 자기 마음에 드는 걸 입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불편함을 감수할 생각이 없는 경우에도 사회적 저항이 전혀 없는 경우에 논의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옷과 외모에 대해 품평하고 지적하는 문화와 사회적 압력이 남아있는 한 젠더리스 패션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여전히 많다.

 

박세진
패션에 관한 글을 쓰고 번역을 한다. 『패션 vs. 패션』, 『레플리카』, 『일상복 탐구: 새로운 패션』를 썼고 『빈티지 맨즈웨어』, 『아빠는 오리지널 힙스터』,『아메토라: 일본은 어떻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구원했는가』등을 번역했다. 이외 다양한 매체에 기고를 하고 강연, 자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