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패션 이야기(오픈플랜 이옥선 대표) 첨부이미지 : 2이옥선.jpg

문화다양성 인터뷰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하여 ‘오픈플랜’의 이옥선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1.안녕하세요, 이옥선 대표님. 간단하게 자기소개와 오픈플랜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반갑습니다. 저는 잠을 잘 자고 야생동물을 좋아하고 책벌레가 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오픈플랜을 디자인하고 있고요. 사람들은 저를 이옥선이라 부릅니다.
2017년 겨울 론칭한 오픈플랜은 SUSTAINABLE fashionable ETHICAL poetical 이란 슬로건 하에 플라스틱 없는 비건 컬렉션으로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오픈플랜은 인테리어 용어로, 큰 공간을 사용함에 있어 벽과 같은 고정된 구조물 없이 가구 등의 유동적인 집기로 나누어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디자인을 하거나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 오픈플랜의 개념처럼 유연하고 열린 태도로 임하고 싶어서 브랜드명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하고자 하는 것(plan)을 세상에 열어 알리면(open) 언젠가는 그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평소 생각을 담아 ‘Open your plan and let universe know what you want.’라는 메시지를 오픈플래너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오픈플랜

 

2. ‘오픈플랜’ 을 어떻게 론칭하게 되셨나요? 오픈플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패션 디자이너로 일한지 20년이 좀 넘었는데요. 그동안 저를 둘러싼 지구 환경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지켜보는 것이 편하지가 않았어요. 개인적인 생활에서 환경을 생각한 실천들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무언가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 내는 일을 직업으로 삼다 보니 더욱 불편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만든 모든 것이 지구로 돌아갈 때 누군가의 먹이, 혹은 독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만드는 사람의 역할이 참 중요하잖아요. 지구상의 모든 것은 지구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으니 매립하면 땅에 남고 소각하면 공기 중에 남고요.
그렇다면 ‘옷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환경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지역사회에 끼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은 없을까?’ 고민하며 오픈플랜을 론칭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실천하고 있는 기본 가치는 플라스틱성 소재와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디자인을 하는 것이에요. 2020년 선보인 컬렉션부터는 모든 제품을 통틀어 플라스틱 프리 98% 비건 100%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공=이옥선)

 

3. 오픈플랜을 론칭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의 시간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동안 공들여 가꿔온 브랜드도 모두 정리하셨다고 들었는데 당시의 각오와 심정이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법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향하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방법으로는 더 이상 옷을 디자인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만큼 기후위기나 쓰레기 문제에 대한 고민이 누적되었던 것 같아요. <플라스틱 차이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오픈플랜 론칭의 트리거가 됐었다고 종종 얘기하는데요. 그 영화를 계기로 제가 아무리 정성껏 디자인한 옷이라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없이 겉모습만 그럴싸하다면 그건 그저 예쁜 쓰레기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멋진 삶이란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아직 어린 디자이너였다면 겉으로 보기에 멋진 것, 패셔너블 한 것, 트렌디한 것을 좇느라 바쁘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커져가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4. 비건패션 브랜드는 많지만, 플라스틱 프리를 선언한 브랜드는 드문데, 플라스틱 프리를 달성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플라스틱을 계속 사용하는 이유는 저렴하고 다루기 쉬운 소재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제품에 사용되면서 우리 눈에 예쁘게 보이기 때문일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혹하기 쉬운 특성에도 불구하고 오픈플랜이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썩지 않고 지구에 남아 생태 질서에 혼란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플라스틱이 우리의 적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꼭 플라스틱이란 소재가 필요한 영역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의료기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물건 등을 만드는 데에요.
 
그런 측면에서 오픈플랜이 제안하는 패션 안에서는 꼭 플라스틱을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섬유에서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합성 섬유를 입거나 세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은 그 크기가 너무 작아서 하천 정화 필터에 걸러지지 않는다고 해요. 보이지도 않고 냄새가 나지도 않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강으로, 바다로 흘려 보낸 후 다시 우리가 먹을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를 생각한다면 이 소재로 만든 제품을 아름답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려워집니다.
 
말씀하셨듯 다른 비건 패션 브랜드와 달리 재생 폴리에스테르나 비건 가죽으로 불리는 선인장 가죽, 와인 가죽, 한지 가죽 등의 대체 가죽들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오픈플랜의 가장 다른 점인데요. 대부분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미세 플라스틱이 발생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생명에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기 때문에 잔인함이 덜하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사용 중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 문제를 생각한다면 다른 생명에 여전히 해를 끼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5. 패션 분야에서는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는데 ‘연대’라는 가치를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흔히 사용하는 컬래버레이션의 개념을 ‘연대’라고 표현했는데요. 옷의 전 생애주기(재료의 재배에서부터 수확, 가공, 제조, 기획, 유통, 사용, 폐기 등의 전 단계)를 생각해보면 옷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갑니다.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소재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나 기업의 노력에 그치지 않고 서로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향한다면 말이에요.

우편 봉투를 재활용해 만든 이옥선 대표의 명함 (제공=이옥선)

식품 포장지를 잘라 뒷면에 만든 이옥선 대표의 명함(제공=이옥선)

 

 6. 오픈플랜의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플라스틱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점이 타 비건 패션 브랜드와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기본적으로 전체 컬렉션을 통해 플라스틱 프리 98% 비건 100% 디자인을 실천하고 있고요. 이를 넘어 화학 물질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유기농 섬유의 사용을 늘리고 보태니컬 다잉 (식물염색, 흔히 천연염색이라고 불리는 원단 염색 방법에서 동물성 염료를 제외하고 식물성 염료만을 사용한 염색 방법)의 비율을 늘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소재와 공정의 선택 시 환경 영향을 줄이려는 실천 외에도 오픈플랜 SNS를 통해 옷을 만드는 봉제기술자들을 소개하고 다양한 사용자들과 만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는데요. 감사하게도 이런 모습들을 진정성 있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7. 일반인들을 모델로 쓰는 ‘오픈룩북 프로젝트’, ‘리텍스타일 프로젝트’, ‘I made your clothes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당신의 옷을 만듭니다’ 캠페인 (제공=이옥선)

 

패션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쉽고 효과적인 매체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패션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사회 변화가 있었던 시기를 보면 패션이 나름대로의 의미있는 역할을 했던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우리가 살고 있는 기후위기 시대의 멋진 패션이란 어떤 것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픈플랜이 그 대답을 찾아 제안하는 멋진 메신저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헬싱키 패션위크 패션쇼 백스테이지(제공=이옥선)

 

8. ‘친환경은 비싸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갖고있는 편견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속 가능한 패션 브랜드의 제품 구매를 망설이는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질문에 대답하기보다는 묻고 싶습니다. '무엇에 비해 비싼가요?' 아마도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진 제품들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왜 그런가요? 세상에는 비싼 제품과 브랜드들도 아주 많잖요. 지속가능성에 대한 실천 없이도 말이에요.
또 다시 묻고 싶어요. ‘혹시 우리가 익숙해진 지금의 옷의 가격이 적당한가요? 너무 싸진 않은가요?’
지난 20년간 물가가 상승한 것에 비해 평균적인 옷의 가격은 하락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그동안 우리가 지불하지 않았던 비용은 무엇일까요?

 

지속가능한 패션 서밋 서울 2019 강연 (제공=이옥선)

 

9. 기후위기 시대의 환경문제는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디자이너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계신가요?

환경문제가 더 이상 북극곰과 바다 거북이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점점 느끼게 되었습니다. 미세먼지는 날로 심해져 마스크를 쓰고 지내야 하는 날이 점점 늘어났고, 몇 년 전에는 쓰레기 대란을 겪으며 분리수거 잘 해서 배출한 쓰레기가 어딘가에서 멋진 제품으로 재탄생할 거라는 제 생각이 얼마나 막연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책과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남의 나라 다른 동물의 이야기로만 생각하던 일들이 제 삶에도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더 이상 늦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하지만 플라스틱 없는 비건 패션으로 지속가능한 패션을 실천하고 있지만, 당당한 자신감이 생기진 않았습니다. 죄책감이 없어지지도 않고요. 환경이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무력감을 느낄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습니다. 개인으로선 작은 노력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을 수 있다면 분명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거든요.

 

10. 오픈플랜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오픈플랜을 인정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좋아해 주시고 댓글로 응원해주시는 오픈플래너들. 그리고 제안하는 컬렉션을 바잉해주는 바이어들 덕분에 오픈플랜이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11.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내 노력이 현실에 변화를 불러왔다고 조금이나마 체감했던 순간이 있다면?

 뻔한 대답일 수 있지만, 오픈플랜 제품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직접 만나는 순간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저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아름다운 옷을 디자인해서 제안하는 것이니까요.
오픈플랜을 론칭하고 나서는 패션업계 사람들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도 되고요. 이런 변화를 통해서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고민이 점점 넓어지고 성숙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늘어나는 것 같거든요!

 

12. 5년 혹은 10년쯤 뒤, 오픈플랜의 옷을 구매했던 고객들에게 오픈플랜의 옷들은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고 바라나요?

 그 시간동안 그들의 삶에서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나게 하는 버튼 같다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전히 사랑받으며 옷장 속의 다른 옷들과 잘 어울리면서요.

 

13. 끝으로, 대표님이 생각하는 문화다양성을 멋지게 정의해주신다면?

나에게 문화다양성이란 내가 나로서 존재하면 충분한 이유
-오픈플랜 이옥선

 

photo by 최남용 (제공=이옥선)

이옥선
OPEN PLAN 디자이너
㈜투데이브랜드 대표
사단법인 한국윤리적패션네트워크(KEFN)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