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있어야 할 곳(김달님 작가) 첨부이미지 : 썸네일10-8.png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이 무너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살던 곳은 겨우 여섯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산동네. 자식들이 돈을 벌고 가족을 꾸리며 사는 곳은 그 동네와 차로 한 시간 반, 멀게는 다섯 시간이 떨어져 있었다. 그중 그나마 가까운 아버지와 내가 한 달에 두어 번 두 사람의 집을 찾았다. 우리는 밥 한 끼를 나눠 먹고 서로의 얼굴을 몰래 살피고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러니 섬세하게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몸과 정신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빠지고 있었는지. 아주 먼 데서 도미노가 시작됐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빠른 속도로 도미노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식들에겐 모든 일이 '한순간'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 

2018년 여름. 할머니가 어느 순간부터 소변 실수가 잦아지고 시간과 장소를 자꾸 잊었다. 같은 시기에 할아버지는 불면과 우울감으로 신체 능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일상이 무너졌고 가족들은 자책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방법을 찾았다. 대학 병원과 일반 병원으로 옮겨가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사이 매달 수백만 원의 병원비가 청구됐다. 넉넉하게 사는 이 없이 쪼들리며 살던 자식들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병원비 앞에서 막막해졌다. 일을 하다가도 수시로 병원과 집으로 달려가야 했던 아버지와 내 삶에도 균열이 생겼다. 노화와 질병이 함께 진행되는 두 사람의 상태는 병원에 있는 동안 잠시 좋아지는 듯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나빠지길 반복했다. 예감했다. 이건 긴 시간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집과 시설(요양병원, 요양원 등)이라는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그렇게 몇 달 후, 내가 사는 지역의 요양병원으로 두 사람이 오게 됐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병원에 두고 혼자 사는 원룸으로 돌아온 밤엔 죄책감에 눈물이 났다. 다른 자식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각각 8인실 병동에 머물렀다. 24시간 간병인이 상주하는 병실에는 많은 노인들이 있었다. 호흡기에 의지해 누워있는 노인. 말을 잃어버린 노인. 거동만 조금 불편할 뿐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노인들도 있었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를 노인들이 한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의 간격을 두고 각자의 침대에서 지냈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침대와 서랍, 환자복과 실내화, 종이가방 하나에 다 담길 수 있는 소지품이 전부였다. 분명 그곳에도 삶은 흐르지만 타인과 구별되는 개인의 삶, 내 선택과 의지로 이루어지는 생활은 쌓일 수 없었다. 병실에서 오래 지낸 할머니들은 각자의 침대를 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집 할매, 저 집 할매. 매일 같이 할머니 병실을 드나드는 동안 알았다. 집을 떠나 병원으로 온 이들은 여기가 집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구나. 하지만 커튼 하나로 겨우 가려지는 침대가 과연 '나의 집'이 될 수 있을까. 

차츰 적응해가던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자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몇 날 며칠을 온몸으로 시위를 했다. 그즈음 퇴원을 만류하는 가족들에게 할아버지는 한치의 흔들림 없이 또렷하게 말했다. 

내 죽음은 나의 것이다나는 병원이 아닌 내 집에서 죽고 싶다.” 

ⓒ김달님

그토록 할아버지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집. 그 집은 공사장 인부로 오래 일했던 할아버지가 예순 즈음에야 처음으로 산 집이자 몸으로 익힌 기술로 직접 지은 집이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사람이 20년 동안 살아온 집의 풍경은 내게도 익숙한 곳이라 구석구석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집주인의 깔끔한 성격이 드러나는 싱크대와 할아버지의 취향대로 산 그릇들, 직접 담근 물김치, 창가에 놓인 화분들, 벽에 걸려있는 사진과 손때 탄 리모컨,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수첩, 서랍 속 손톱깎기, 계절에 맞게 걸어둔 옷과 모자들. 집이란 그런 곳이다.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사람들의 고유한 시간과 생활이 스며들어 있는 곳. 그래서 집에서 죽음을 맞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완고한 바람을 꺾을 수 없었다. 분명 나 역시도 같은 바람을 가지게 될 테니까. 

ⓒ김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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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 가운데 15.7%, 4년 후인 2026년이 되면 국민 5명 중 1명 이상이 노인이 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노인 돌봄 불안과 더불어 '노인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묻는 목소리는 특정 개인이 아닌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2020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인의 83.8%가 본인의 건강이 유지된다면 현재 집에서 거주하기를 희망한다고 응답했고, 거동이 불편해지는 등 건강이 악화된 후에도 노인의 56.5%가 재가서비스를 받으며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노인 단독가구가 노인 가구의 72%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 섬세한 돌봄과 의료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노인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집에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 결과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들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평균 707일을 보내다 생을 마감한다(국민건강보험공단, 2018년). 그렇다면 이 희망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다행히 희망에 응답하는 정책이 있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 사회를 겪고 있는 영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커뮤니티 케어’다.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지역사회통합 돌봄)란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주거·보건·의료·돌봄을 제공하는 지역 주도형 사회 서비스 정책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8년 11월부터 중앙정부 중심으로 지역사회 통합 돌봄이라는 명칭으로 커뮤니티 케어가 본격화됐고, 2019년 6월부터 16개 지자체에서 지역사회 특성에 적합한 커뮤니티 케어 개발을 위해 선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계획'을 살펴보면 낯설게 느껴지는 커뮤니티케어 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떤 것을 바꾸려고 하는지,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일상생활 동작에 어려움이 있는 노인이 사는 집의 문턱을 제거하는 등 집수리 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의료(왕진 등)를 본격 제공한다.
-퇴원 후 건강관리가 필요한 노인 등의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건강관리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확충한다.
-또한 약 2,000개 병원에 지역연계실(사회복지팀)’을 설치하여 퇴원을 앞둔 환자의 퇴원 계획을 수립하고 돌봄 자원과 서비스를 연결한다.
-이러한 서비스(커뮤니티 케어)가 본격적으로 제공되면 노인이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계속 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전망이다.

ⓒ김달님

국내 커뮤니티 케어 정책과 관련해 보완할 점이 많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실패하는 부분은 실패하더라도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안심이 된다. 그리고 동시에 희망과 슬픔을 함께 느낀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가 있음에, 그 미래를 당장 당겨올 수 없음에. 

살아있는 한 우리는 결국 노인이 된다. 이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노인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은 당장 이 문제에 직면한 이들의 질문만이 아니라 모두의 질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노후를 보낼 권리를 키우는 일,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을 지금부터 천천히 지어가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할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이 더욱 명징하게 떠오를 것이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죽음은 바로 나의 것이라는 말. 

 

김달님
좋아하는 이야기로 남은 시간과 사람들을 글로 적습니다.
세 권의 산문집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 <나의 두 사람>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