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반한 '달멍' 트렌드를 만든 전시 기획자(이애령 관장) 첨부이미지 : 1.png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MZ세대도 빠져든 '달멍'을 유행시킨 전시를 기획한 이애령 국립광주박물관장을 만나보았습니다.

1. 안녕하세요. 이애령 관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 도자기의 메카인 광주·전남 지역을 대표하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관장을 맡고 있는 이애령입니다.


2.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여러 학예와 관련된 직무를 역임하시고,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의 관
장을 역임하고 계시는데요. 이렇게 한 분야만 오랫동안 전념해 오실 만큼
학예사란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배울 학(學), 예술 예(藝). 학예사는 말 그대로 예술과 문화를 공부하는 직업입니다. 영어로는 큐레이터(curator)라고 하고요. 제가 근무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의 학예사 업무는 전시 기획, 디자인, 교육, 보존과학, 유물관리, 국제교류 등으로 전문화되어 있지만, 그 중심에는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보던 귀중한 문화유산을 실제로 눈앞에서 만나고 논의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학예사라는 직업이 갖는 최고의 매력이지요.

3. 도자기 역사를 전공하시고 그와 관련된 많은 학술조사보고서들도 발표하시고, 2025년에 국립광주박물관에 도자문화관 개관할 준비를 하고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끼는 도자기 한두 가지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도자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공예이고, 신석기 시대부터 수천 년의 역사가 내려온 만큼, 그 종류도 다양하고 복잡해서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도자기를 꼽으라면, 한국적인 자연미를 품은 백자 달항아리, 질박하면서 대범한 멋이 넘치는 분청사기를 들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의 백자 달항아리 방 ⓒ이애령 제공


4.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으로 계실 때, 박물관을 힐링하고 사유하는 공간이란 의미를 더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물관에 새로움을 더한 전시를 기획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미술부장으로 일했던 기간이 2020년 3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즉 ‘코비드 19 팬더믹 시기’ 였습니다.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서, 그에 맞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과 시스템을 찾기 위해 다각도로 논의하고 시도해야 했어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전시가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문화유산을 보여주고 전달한다고 한들, 전시될 수 없다는 것이 팬더믹을 통해 얻은 제 결론이었습니다. 팬더믹은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전시 기획자와 관람자의 쌍방 소통이라는 점을 각성시켜 주었지요.
특히, 무엇보다 팬더믹으로 지친 삶에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주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고, ‘힐링’이라는 키워드를 주목하게 되었죠. 역사와 문화유산을 학습하러 방문하는 곳을 넘어 사유하고 힐링하는 공간으로 박물관 전시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5달항아리를 보며 멍때리는 ‘달멍’이 요즘 MZ세대와 미술관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인기가 높습니다. 관장님께서 지난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도자공예실에 기획한 백자 달항아리 방이 달멍’ 유행에
끼친 영향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그 ‘달멍’ 공간은 
관장님께는 어떤 의미를 갖나요?
백자 달항아리 방은 자연을 보면서 마음을 비우듯 달항아리를 감상하며 힐링하는 공간이지요. 오랜 친구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통하는 것처럼 언제 와도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달항아리 방을 기획했지요. 하지만, 이 공간을 만들면서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어려움이 컸습니다. 결국 아름다움은 강요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경험이 힐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전통 한옥의 사랑방을 모티브로 화이트 큐브 형태의 독립 공간을 만들었고, 그 속에 달항아리 하나와 특별 제작한 영상이 상영됩니다. 달항아리를 관람하는 것을 넘어 사유할 수 있는 고요하고 절제된 공간을 조성했어요. 다행히 관람객들이 기획 의도를 잘 알아봐 주시더군요.

6. 힐링과 감성의 공간으로 거듭난 ‘도자공예실’, 고 이건희 회장의 기증 1주년을 기념하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성찰을 다룬 ‘세한,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 조선시대 승려 장인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은 ‘조선의 승려 장인’,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를 통해 몸에 대한 우리 문화를 살펴보는 “나는 몸이로소이다, 한글 해부학 이야기” 등 정말 다양하고 굵직한 전시들을 기획 총괄하셨는데, 지금껏 전시를 기획하실 때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일까요?
20여 회가 넘는 크고 작은 전시들을 기획했지만, 가장 어려웠던 만큼 깨달음 컸던 순간은 2014년 국립제주박물관에서 ‘한국의 馬, 시공을 달리다’ 특별전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한국의 말 문화를 망라한 전시였는데, 열심히 준비하면서도 뭔가 빠진 듯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말 구경이라도 할 생각에 어느 목장을 찾았는데, 당근을 안 주니까 말이 갑자기 성질을 버럭 내면서 제 옷깃을 물어뜯는 사고가 벌어졌지요. 이때 벼락을 맞은 것처럼 그동안 제가 했던 전시 기획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깨닫게 되었어요. 유물 수집은 열심히 했지만, 막상 그 대상인 말이 어떤 생명체인지 관심이 없었고, 말과 함께했던 분들의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지요. 그날의 우연한 사고가 계기가 되어서, 문화유산을 오브제로만 대하던 그동안의 태도에서 벗어나, 그 안에 깃든 사람들의 삶을 주목하고, 오늘날 관점에 맞춰 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4년 특별전 <한국의 馬, 시공을 달리다> ⓒ국립제주박물관

 

7. 관장님께 박물관(혹은 미술관)은 어떤 장소인가요?
한마디로 ‘일상’이라고 할까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는 행위가 저한테는 동네 마트에 들리듯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8. 전시 기획이나 박물관 프로그램과 관련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전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최대한 많은 전시를 보려고 노력합니다. 한국 전통 도자기를 전공하지만, 제 전공과는 무관한 현대미술이나 공연을 볼 때도 많아요. 요즘은 실력 있는 젊은 기획자들이 많아서 박물관 밖에서 배울 점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나름 노력해 왔는데, 다른 전시들을 보면서 영감을 얻을 때가 많지요.
저만의 특별한 노하우라고 한다면, 망했다고 소문난 전시나 공연을 일부러 찾아갑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잘 파악해서, 제가 전시를 기획할 때 그런 실수들을 미리 배제하는 방식이죠. 망한 전시가 주는 가르침이 오히려 더 클 때가 있습니다. 이 밖에 K-POP과 아이돌 그룹에도 관심을 두고, 요즘 MZ세대와의 소통과 공감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9. 지난해 국립광주박물관의 박물관 음악회를 통해 ‘아시아실버윈드 오케스트라’ 공연도 열렸고, 재개관한 어린이박물관에서 도자기 제작 과정부터 유통, 소비까지 체험가능한 어린이용 프로그램 등 정말 다양한 박물관 프로그램을 시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번 연도엔 어떤 프로그램들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올해는 ‘조선의 공간과 도자기’를 주제로 한 특별전이 6월에 열립니다. 호남 지방의 누정과 정자에서 이뤄졌던 문화적 퍼포먼스와 공예의 관계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또한 작년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교사 대상 교육 프로그램인 뮤지엄 토크를 올해 더욱 확대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박물관과 학생의 매개자인 현직 교사들에게 박물관의 주요 교육과 전시를 설명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데요. 특히 올해는 전라남도 문화소외지역 소재 학교도 추가로 초청하여 지역민의 문화향유기회 확대에 힘쓰고자 합니다. 그 외에도 ‘아시아실버윈드오케스트라’ 음악회 사업과 더불어 박물관에 방문하는 분들에게 더 많은 즐길거리를 제공하고 편안한 박물관을 만들고자 합니다.

 

2025년 완공 예정으로 공사 중인 국립광주박물관 도자문화관 ⓒ이애령 제공

 

10. 관장님이 생각하시는 문화다양성이란 무엇인가요? 
'바다'요. 모든 생명을 품는 바다처럼 함께 어우러지면 좋겠습니다.

 

 

 

이애령
現 국립광주박물관장
글쓴이 이애령은 공예와 공간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