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K-전통과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필자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전통’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지난 시대에 이미 이루어져 계통을 이루며 전해 내려오는 사상, 관습, 행동 따위의 양식이라고 한다. 전례 없이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한 1990년대의 한국에서 태어난 내 또래에게 변화의 속도에 올바르게 탑승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강박이기도 했고 사회로부터 주어진 의무이기도 했다. 따라서 ‘전통’이란 극복해야 할 대상 혹은 구시대적인 낡은 것 정도로 여겨왔던 것 같다. 그러나 전통에는 죄가 없다. 새로움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전통이라는 단어를 오염시켜 왔을 뿐이다. ‘전통’이라는 단어를 누군가 씻어준 것처럼 새롭게 느꼈던 경험이 있는데, 한국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밴드 씽씽의 무대를 처음 보았던 2017년이었다. 국악의 구성진 가락과 맛깔 나는 창법은 그대로 살리면서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음악 장르를 결합한 그들의 무대는 화려한 연출을 통해 흔히 모두가 갖기 쉬운, 국악은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갖고 놀고 있었다. 해외의 인디 뮤지션을 만나는 창구 중 하나였던 유명 유튜브 채널 <NPR Tiny Desk Concert>에서 씽씽의 음악이 소개되었을 때 매우 놀랐지만 동시에 역시 좋은 것은 모두가 알아본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친구의 생일 선물로 달항아리를 선물했다. 전통 공예 공방에서 주문한 것이었다. 달항아리란 말 그대로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닮은 둥글고 희게 빛나는 형태의 항아리를 의미한다. 달항아리를 검색했을 때 항아리를 제작하는 공방도, 종류도 너무 많아서 인터넷 페이지를 한참동안 뒤적거려야 했다. 지난해 유명 잡화점에서 풍수지리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출시된 달항아리 화병은 품절 사태를 겪기도 했다고 한다. 이토록 새롭고 재미있는 물건들이 차고 넘치는 요즘 달항아리라는 오래된 물건이 사랑 받는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데가 있었다. 씽씽 밴드가 <NPR Tiny Desk Concert>에 소개된 후 큰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환영받기 때문인 것일까.
친구의 선물로 달항아리를 골랐던 이유는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방문했을 때 친구가 전시관의 달항아리 앞에서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넋 놓고 바라보았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달항아리 곁에 붙어 있던 설명은 이러했다.
“생긴 모양이 달덩이처럼 둥그렇고 원만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달항아리는 유려한 공간감과 독특한 질감을 지닌 것이 매력이다. 달항아리의 특징은 위, 아래 반구형을 각각 빚어 접합하여 완성한다는 점이다. 백자는 태토가 견고하지 않아서 한 번에 달항아리 형태를 차내면 기울어지거나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한 번에 물레로 올리지 못하고 상하 부분을 따로 만든 후, 가마 안에서 구워 만들어내어 붙이고, 다시 깎아 형태를 완성한다. 그러다보니 완전한 구형체가 아니라 좌우 비대칭이 생기는데 이처럼 이지러진 달항아리의 불완전성을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본다. 한쪽으로 약간 기운 달이 더 운치 있고 멋스럽 듯 말이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글이었다. 청자와 같은 보통의 도자기는 물레로 한 번에 빚어내 굽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달항아리는 무게나 크기 때문에 상하 부분을 따로 만든 후 가마에서 구워 붙이고 다시 깎아서 형태를 완성한다. 그러므로 완벽한 구가 아니라 비대칭의 형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지러진 달의 모양을 우리가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그 자체를 아름다운 것으로 존중하듯, 달항아리 역시 완벽한 구형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으며 그 불완전성을 고유의 형태로 여긴다는 사실은 어떠한 위안이 되기도 했다. 오래도록 달을 바라보며 달과 닮은 모습의 항아리를 빚어왔을 과거의 사람들의 지혜와 품위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달항아리 ⓒ국립중앙박물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보름달이 뜬 밤에 정화수를 떠 놓고 소원을 빌었을 수많은 마음들을 떠올린다. 세상에 켜켜이 쌓인 그 마음과 소망들은 달항아리의 형상이 되어 빚어졌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각자의 보금자리에 소중하게 놓여 있을 달항아리 화병들을 상상해 본다. 하나의 달항아리는 한 가정의 모든 소망을 담고 있을 것이다. 달항아리는 완전하게 둥근 모습이 아니다. 태생적으로 어딘가 일그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달항아리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그렇다. 삶의 한복판에서는 어딘가 부족하고 모난 것처럼 보이더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 되돌아봤을 때에는 그 비대칭의 형상마저 멋과 아름다움으로 느껴지는 달항아리처럼 하나의 삶 역시 그 자체로 온전하고 완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달항아리로부터 배운 소중한 교훈이었다.
김선오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좋아하는 것이 많지 않지만, 무한히 변주되고 갱신되는 피아노와 시만큼은
자신 있게 좋아한다 말하는 시인. 시집 『나이트 사커』와 『세트장』, 에세이 『미지를 위한 루바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