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전통문화가 되기 위한 조건 (채경진 정책연구실장) 첨부이미지 : 6.png

 

 

오징어게임, BTS, Faker로 대표됐던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2023 지구촌 한류현황’에 따르면, 전 세계 한류 팬(동호회원) 수는 약 2억 2,500만 명을 기록해 2012년 926만 명 대비 약 24배, 전년 대비 4,600만 명(25.8%)이 증가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한류 열풍의 원동력을 K-POP과 드라마에서 찾고있고, 성공의 비결은 한국적 서사를 토대로 하는 한국 문화와 ‘희망’, ‘사랑’, ‘가족’ 등을 다루는 콘텐츠로부터 공감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는 과거 역사나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드라마가 유행처럼 제작•방영되고 있다. 최근의 <고려거란전쟁>, <세작, 매혹된 자들>, <밤에 피는 꽃>에서 <연인>까지. 과거 <대장금>이 한류 드라마로서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면 최근에는 좀 더 다양한 전통콘텐츠와 이야기로 저변을 넓혀가는 기로에 서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레 전통문화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경이 된 궁궐 등은 외국인들의 한국 방문 시 필수 관광지로 인기가 높다.

문화재청이 발간한 ‘통계로 보는 국가유산 2023’에 따르면, 4대궁(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및 종묘의 관람객은 약 1174만 명으로 코로나19 이전(2019년) 수준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궁궐인 경복궁은 이미 국내외적으로 높은 관광지 순위를 기록하고 있고, 지난 한 해 동안 558만 명이 입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4대궁 및 종묘 관람객 중 약 155만 명(13.2%)은 한복을 입고(국가지정무형유산) 입장했는데, 이것은 최근 5년 동안 가장 높은 수치이다. 실제 경복궁 등 주요 궁궐에는 한복을 입은 국내외 관람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지만 국내외적으로 인기가 많은 이유는 장소적, 체험적 요소가 주는 재미와 연관이 있겠지만,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 역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현재와 다른 시기, 자국과는 다른 문화를 가졌지만,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문화이지만 이를 이해하고 체험하려는 행태로 귀결된다고 이해된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세계유산 방문객이 2023년말 기준 약 2442만 명이 방문한 것이 이를 증명하는 통계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고유한 전통문화는 관람객에게 존중과 다양성을 수용하게 되는 보편적 가치를 가진 유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전통문화를 위해서는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물론 그 전제에는 전통문화를 보다 넓은 범위에서 그 가치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미래의 전통문화는 오늘이 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체류외국인이 200만 명이 넘었고, 타국의 배우자와의 결혼이 증가추세에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한국의 전통문화는 ‘단일민족’으로서의 문화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문화가 탄생할 것이다. 이에 대한 수용도 제고를 위해 현재 우리 문화에 대한 공감과 존중을 공유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얼마 전 전 국민을 분노케 한 경복궁 낙서 사례는 이를 반증하는 교훈이기도 하다.

한편, 정책적으로는 전통문화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적 환경에 맞게 적절하게 활용하고 이용자 중심의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보편화된 일이지만 2011년 경복궁 야간 개방을 시도했을 때 문화유산에 대한 훼손 우려로 인해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실제 국민의 의식 수준이나 운영 제도가 미비해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제도화 수준이나 국민 의식 모두가 높아져 주간이냐 야간이냐에 대한 개방 논쟁은 불필요한 소재가 되었다. 오히려 최근의 경복궁 ‘별빛 야행’이나 창덕궁 ‘달빛 기행’은 매표 전쟁에서 승리한 자만이 그 특혜를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렇듯 야간에 한적하게 궁궐을 산책하며 경관을 감상하고 고즈넉한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관람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정책은 오히려 권장되고 확대되어야 하며, 관람객은 특별한 경험을 통해 궁궐의 새로운 가치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전통문화를 활용한 창의적 상품기획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몇 해 전 BTS RM의 개인 SNS 통해 공유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품절 대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개발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에 전시된 반가사유상과 연계되어 대표적인 한국의 베스트셀러가 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좌)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우)사유의 방 ⓒ국립중앙박물관

 

이밖에 최근 풍속도를 활용해 술잔을 만들어 판매할 때마다 매진 행진을 기록한 ‘취객선비 잔세트’나 김홍도의 풍속도에 착안해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게 한 ‘모두의 풍속도’는 전통문화의 틀을 깬 좋은 아이디어 사례로 볼 수 있고, 누구도 이러한 시도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고 미래의 전통문화 세대에게 호응도가 높다.

 

 

(좌)취객선비 3인방 변색 잔세트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우)모두의 풍속도 *필자가 만든 이미지 ⓒ궁중문화축전

 

이렇듯 한국의 전통문화가 좋은 콘텐츠로 활용되고 호응이 높은 데에는 ‘지루하다’,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전통의 이야기나 특징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공감을 얻으려는 시도가 지속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것이 다양성 관점에서 소비자의 존중과 호응으로 이어졌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미래의 전통문화로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지에 대해 상상해본다.

 

 

 

 


채경진
국가유산정책연구원 정책연구실장
2015년부터 국가유산정책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가톨릭대학교 공연예술문화학과 겸임교수로 겸직하고 있다. 서울시 투자심사위원회 전문위원, 부천시 장기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문화체육관광부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을 역임했다. 문화유산 정책, 문화예술 정책, 정책평가에 관심이 많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다수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