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문화재단

여러분은 연극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한국 연극계의 메카인 ‘대학로’가 생각납니다. 대학로에 종종 방문해 연극을 관람하는데, 연극은 스크린이 아닌 배우들과 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지난 11월, 지난 2년 동안 비대면으로 진행되던 <종로문화다양성연극제>
가 드디어 대면으로 돌아왔습니다. 올해로 5회를 맞은 <종로문화다양성연극제>
에서는 우리 사회 내 다양한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며 다양성이 공존하는 풍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한 ‘문화
다양성’ 인식이 담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번 연극제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두껍아두껍아>,<나의 전쟁 – 리처드3세>,<여성국극 삼질이의 히어로>, <나는 사랑한다 : 김명순전>, <파란 피> 등 다섯 작품이 선정되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여성이 주체인 창극, 여성국극인 <삼질이의 히어로>
를 관람했는데요. 처음 접하는 국극이라 너무나 뜻깊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럼 제가 관람한 여성국극 <삼질이의 히어로>를 소개해보도록 할게요.

(좌)공연이 열린 소극장 창덕궁 모습(사진제공=나유민),(우)여성국극 <삼질이의 히어로> 공연 모습 (사진제공=종로문화재단)

<삼질이의 히어로>
는 평생을 여성국극 무대에서 살아낸 실존 인물인 ‘삼질이’의 삶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
어나 어머니와 자란 삼질이는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길에 오르며, 여러 위기를 맞기도 합니다. 그렇
게 어두운 현실에 좌절한 순간, 삼질이는 우연히 본 여성국극에 빠지게 됩니다. 현란한 조명과 짙은 화장을 한
임춘앵 배우의 모습은 삼질이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과 같았죠. 당시 삼질이에게는 임춘앵이 히어로 같
은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18세에 여성국극단에 입단해 잡일을 맡으며 소리와 연기를 배웠고,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 판소리를 배우며 천천히 인기배우로 성장하게 됩니다. 삼질이가 여성국극 배우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은 그녀의 부모님과 임춘앵 덕분이었어요. 그들이 삼질이의 히어로인 것이죠.
저도 삶을 살아가며 타인에 의해 영향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요. 그런 경험들이 쌓여 언젠가 제게도 히어로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연장 내부에서 촬영한 '발탈' 모습(사진 제공=나유민)

 

연극을 관람한 후 정말 감사하게도 삼질이에게 히어로였던 인물을 연기해주신 박수빈 배우님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박수빈 연출 및 배우님과의 대화를 통해 더욱 깊숙이 여성국극과 <삼질이의 히어로>에 빠져볼까요?

인터뷰 – 여성국극제작소 박수빈 연출•배우님

Q. 여성국극이 무엇인가요?

여성국극은 해방 직후 생겨났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 예인들이 주축이 되어 대본, 무대장치 연극 소리, 의상 및 분장까지 여성국극만의 고유한 색깔을 구출한 창작 장르입니다.

Q. 여성국극의 역사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해방 직후 전통 음악이 국악이란 단어로 바뀌었습니다. 전통음악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내세웠던 대중성을 높이기 위해 창극의 한 갈래로 여성국극이 생겨난 것입니다.
 여성국극의 시작은 1948년입니다. 남성 중심의 국악계 분위기에 환멸을 느낀 여류 명창들이 주축이 되어 창단했습니다. 여성 배우들이 주축이 되다 보니 비교적 화려하고 섬세한 무대를 표현할 수 있었죠. 여성국극은 당시 전쟁과 혼란한 시대 환경 속에서 대중들에게 판타지를 선사하고,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민속학자와 국악과 그리고 국립국악원, 국립창극단 등에 남성 중심 분위기는 더욱 강해졌고 여성국극은 국악계의 이단으로 취급받으며 쇠퇴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성국극은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있었고 1세대들의 꾸준한 노력과 90년대 들어 이루어진 여성학자들의 연구로 다시 수면위로 올라올 수 있었고 현재는 웹툰을 비롯해 각종 전시, 페스티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슈되고 있습니다.

Q. 여성국극 제작소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여성국극 1세대인 조영숙 명인의 두 제자 박수빈, 황지영이 주축이 되어 대한민국 근대문화예술의 정점을 이룬 최초의 K-뮤지컬, 여성국극의 명예를 고취하고 현시대와 소통하며 모두에게 공정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출판, 공연, 페스티벌,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단체입니다.

Q. 여성국극 <삼질이의 히어로> 대한 간략한 줄거리를 소개해주세요.

여성국극 삼질이의 히어로는 삼월삼짇날 태어나 삼질이라 불리는 한 여인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교사의 꿈을 꾸며 어머니와 둘이 살아가던 한 소녀가 한국전쟁이라는 고난을 만나 홀로 피난길에 오르고, 우연히 보게 된 여성국극에 빠져 여성국극단에 들어가 배우 생활을 하다 그곳에서 우연인 듯 운명인 듯 만나게 된 아버지와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판소리 명창의 딸로서, 여성국극 인기배우로서, 발탈 예능 보유자로서 살아오신 저희 스승님의 인생사를 각색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Q. 여성국극 <삼질이의 히어로>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중심 가치는 무엇인가요?

한 사람의 인생을 추적하며 급변하는 지금의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논리, 감정,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 또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사건을 통해 성장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며, 소통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Q. 비주류문화인 여성국극을 다루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세요.

주류문화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공연을 올리거나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제작할 때, 항상 걱정되고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홍보인 것 같아요. 여성국극이 공연예술인지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작고 소소한 활동일지언정 자주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여성국극의 문화적 입지를 넓혀 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여성국극이라는 소재에 발탈 새로 더하셨는데 특별히 발탈을 사용한 이유가 있나요?
(*발탈 : 발에 탈을 씌우고 갖가지 동작을 연출하는 민속연희)

삼질이의 모티브이자 저희 스승님이신 조영숙 명인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조영숙 선생님께서는 여성국극 1세대 배우로 활동하신 여성국극 원로배우이자, 현 국가무형문화재 발탈 예능 보유자로, 두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계십니다. 아흔이 가까운 지금까지도요. 발탈 역시 고유한 한국의 연희임에도 불구하고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번 공연을 통해서 실전 위기에 놓인 무형문화재 중 하나인 발탈에 대해서도 알리고 싶었습니다.

Q.  전통적인 국극임에도 불구하고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악기들이 기타와 콘트라베이스  서양 악기인데 특별히 해당 악기들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국극’이라는 이름 때문에 여성국극이 전통이고 고전적인 장르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물론 판소리, 전통음악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장르인 것은 맞지만 여성국극은 그 당시 전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창작 장르임과 동시에 무대에서 행해지는 공연예술이었습니다. 기존에 사용되지 않던 음계나 장단구조, 서양의 소설들을 각본화하여 무대에 올리곤 했죠. 그런 여성국극의 특징을 반영하고, 그 정신을 이어 나가고 싶어서 이번 작품에서는 서양악기와의 협업을 진행해 봤습니다.  

Q. 여성국극이나 삼질이의 히어로에서 찾을  있는 문화다양성 요소는 어떤 것이 있나요?

아이라서, 전쟁 국가의 국민이라서, 여자라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 삶 안에서 꿈을 꾸고 주변의 누군가와 소통하며 살아가는 한사람의 일생을 통해 정해진 답은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느꼈으면 했습니다. 또한 여성국극이라는 장르를 아무런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 그 시대에 존재했던 장르로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 중 가장 중심적인 키워드는 ‘공정’입니다.

Q.   앞으로 여성국극제작소가 나아갈 방향이나 시도해보고 싶은 장르  주제가 있나요?

 누구에게나 공정한 디자인을 의미하는 ‘유니버셜 디자인’의 개념에서 착안하여 저희 여성국극 제작소가 만든 ‘유니버셜 스테이지’라는 콘텐츠가 있습니다. 정체성, 국적, 장애 여부를 떠나 하나의 무대로서 더 많은 사람이 즐기고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그런 무대를 제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제작했습니다. 올 7월에 첫 유니버셜 스테이지 쇼케이스를 선보였는데요, 앞으로 더 확대시켜 본공연까지 올리고 싶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출판, 페스티벌, 영상 제작 등 다양한 콘텐츠로 나아갈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저희 여성국극 제작소의 활동 지켜봐 주시고,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성국극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할 수 있게 해준 <종로문화다양성연극제>
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공연을 직접 관람하고 이야기를 들으며,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
데요. 

주류문화가 아니던 비주류 작품들을 알리고, 주류문화로의 발전까지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잊혀 가는 것들에 대해 귀 기울이고 손을 내민다면 모두의 문화가 더 다양해지고 풍부해지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앞으로도 매년 열릴 종로문화다양성연극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