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식문화의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칼럼입니다.
세계의 음식을 탐구하다 보면 나라별로 유사한 음식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긴다. 수많은 유사 음식을 낳게 한 오리지널은 무엇이며 누가 만들었을까. 무엇이 원조이고 어디서 유래했는지 묻고 따지는 일은 원초적인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세계 수많은 음식 중에는 족보가 뚜렷한 음식이 있는 반면 그 누구도 유래와 기원을 알지 못하는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음식의 기원과 유래를 명확히 알기란 사실상 어렵다. 당대 기록된 여러 자료와 정황으로 그랬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썰’의 진위 여부는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만두를 예를 들어보자. 만두는 중국과 한국에만 있지 않다. 이탈리아의 라비올리, 독일의 마울타셴, 터키의 만티, 스페인의 엠파나다 등 밀가루 반죽에 속을 넣고 찌거나 굽거나 튀긴 만두 같은 음식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만두 요리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서 유럽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누가 만두요리를 전하고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동서로 퍼져나간 만두가 저마다의 고유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서로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넓게 보면 비슷한 음식을 먹고 있는 셈이다.
(좌) 엠파나다, (우) 라비올리 (출처=pixabay)
큰 범주에서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나라마다 독특한 식문화 방식으로 변형되어 보전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유럽에서 순대 비슷한 음식을 처음 본 한국인은 ‘이 나라도 순대를 먹네’하며 신기해한다. 사실 동물의 창자에 속을 채운 후 익히거나 말려 먹는 방법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는 요리법이다. 미처 다 소비하지 못하고 남은 부산물을 알뜰하게 식재료로 가공한 인류의 지혜가 담겼다. 단지 지역에 따라 속을 어떤 재료로 채우고, 어떻게 조리해 먹는지 방법에 있어 차이가 날 뿐이다.
흔히 살라미라고 부르는 건조발효소시지는 돼지 창자에 다진 돼지고기와 향신료, 소금을 넣어 익히지 않고 건조해 만드는데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 비교적 겨울이 많이 춥지 않고 여름이 건조한 기후를 가진 남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사용된 재료와 지역에 따라 살라미(이탈리아), 살치촌(스페인), 소시송(프랑스)으로 불린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동유럽에도 말린 건조발효소시지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시지처럼 익혀 만든 소시지를 훨씬 많이 소비한다. 남유럽보다 동유럽이 겨울이 더 춥고 길기에 생겨난 식문화 차이다.
(좌)살라미(ⓒpixabay), (우)초리소(ⓒcorreosca)
각 나라마다 독특하게 변형된 식재료를 발견하는 것도 여행 중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다. 한국에 피순대가 있는 것처럼 프랑스에는 돼지피를 넣어 만든 부댕 누아르가 있다. 옆 동네 스페인에도 비슷한 피순대인 모르시야가 있다. 차이점이라면 모르시야는 한번 훈연을 거친다는 것이다. 고추를 유럽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인 스페인 포르투갈 지역에선 건조 소시지에 고춧가루를 넣는 문화가 있다. 스페인의 초리소와 포르투갈의 초리수는 건조 소시지에 맵지 않은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다. 가끔 매운 고춧가루를 넣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의 매운맛에 비하면 귀엽게 봐줄 정도다.
(좌) 순대(ⓒflicker), (우)모르시야(ⓒ클립아트코리아)
식문화는 지역의 기후와 정치, 사회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각 지역에서 고유하게 자생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문화 간 충돌이나 교류를 통해 서로 한데 섞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퍼져나가며 변형되기도 한다. 인류가 세세하게 식문화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나마 남아 있는 문헌과 기록을 통해 음식의 본류를 더듬어 볼 수 있다는 건 다행인 일이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과, 앞으로 다른 곳에서 먹게 될 음식들이 어쩌면 유사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만들어져 있거나 문화 교류의 산물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하며 음식을 대하면 조금은 식사 시간이 흥미로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