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에 출간된 <슬기로운 뉴 로컬생활>은 삶의 터전을 지역에 꾸린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강화도에서 활동하는 청년단체 ‘청풍 협동조합’, 광주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생태계를 만드는 ‘무등산 브루어리’, 순창의 방랑싸롱을 운영하는 가족, 목포에서 문화기획을 하는 청년들의 ‘괜찮아 마을’ 등등. 그들은 서울 밖에서 답을 찾고, 서울이 아니어도 풍요로운 지역이 되기를 원하는 이들이다. 이처럼 인프라가 부실하고 일자리도 부족한 지역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고 개척하는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도서 <슬기로운 뉴 로컬생활> ⓒSTOREHOUSE
10여 년 전부터 서울을 떠나 지역으로 떠나가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하나둘 있었다. 서울의 직장이나 프리랜서로 치열하게 일하다가 몸과 마음이 상한 이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기도 하고, 하고픈 일을 느긋하게 해보겠다며 지역으로 가는 이들도 있었다. 제주, 통영, 양양, 여수, 부여 등 그들이 가는 곳은 다양했다. 작업 환경의 변화도 하나의 이유였다. 인터넷이 있고,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에서나 글을 쓸 수 있고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는 단지 물리적 공간적 이동의 자유만이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생존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인생의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삭막한 서울을 떠나고 싶어한다.
(좌)순창 방량싸롱 ⓒ방랑싸롱, (우)무등산브루어리 ⓒ이로운넷
일본에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젊은이들이 지역으로 귀향하는 경우가 대폭 늘어났다. 미증유의 대재난을 경험하며, 삶의 진정한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 고민한 결과였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끝난 1990년대는 침체기였고, 21세기의 금융 위기를 지나며 고속 성장 신화는 완전히 무너졌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고용불안과 저성장의 시대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동일본 대지진은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2019년에 만들어진 일본 드라마 <그리고, 살아간다>는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한 젊은이들이 로컬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 <그리고,살아간다> 포스터 ⓒWOWOW
<로컬로 턴!>을 쓴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 청년들의 지역 이주와 지방 재생을 사상적 차원에서 들여다본다. 치열한 개인의 경쟁 속에서 국가가 발전한다고 믿는 기성세대와 달리 청년들은 기업과 국가가 원하는 획일적인 스펙에 넌덜머리를 낸다. 순위 경쟁과 타인의 평가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우치다는 점점 효율과 성장만을 외치며 개인의 리스크를 요구하는 대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지역으로 향하여 소규모의 커뮤니티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생산과 노동, 소비가 선순환하는 삶, 불안한 성장보다 안정적인 현상 유지에서 삶의 가치를 찾는 체제’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인류학자 샹뱌오는 담론, 중심, 국가에서 시작되는 엉성한 이야기들을 비판하고 자기, 주변, 생활, 로컬에서 출발하는 명징한 이야기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라고 말한다.
지금 한국도 일본과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다. 정규직 진입은 점점 어려워지고,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정년을 채우기란 아주 힘들다. 결혼한 가구의 절반은, 맞벌이를 해야만 생활 유지가 가능하다. 모든 자원이 집중된 대도시에서 끊임없이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는 일은 고되고 정신적으로 하중이 크다. 일자리를 잃으면 고립되기 쉽고, 생존도 어렵다. 사회가 바뀌어 가니, 젊은 세대의 생각도 변해가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경쟁과 집중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워라밸’(일과 개인의 균형)과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의미를 둔다. 적게 벌더라도 자신이 즐거운 일을 찾고, 일하는 과정과 결과물에 더욱 가치를 두는 것이다.
물론 지역, 시골에 간다고 멋진 일이 바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성장과 지방소멸의 시대에 ‘로컬’은 조금 느리지만 자신이 만들어가는 구체적인 결과물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 행정안전부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주목하여, 2018년부터 올해까지 로컬의 청년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초고령화사회와 지방소멸이 현실이 된 지금, 청년들의 로컬은 단지 새로운 흐름을 넘어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다양한 인프라를 만들어내야 할 공동체적 지향이라 할 것이다.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 소설, 만화를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 란 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