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가능성을 위한 집(하현 작가) 첨부이미지 : 썸네일11-5.png

 

외출하기 전이면 현관문에 바짝 붙어 가만히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이 이상한 습관은 무방비 상태로 벌컥벌컥 문을 열었다가 같은 층 이웃들과 몇 번 마주친 뒤로 생긴 것이다.
나도 잘 안다, 아마도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겠지. 나와 다를 것 없는 이 시대의 평범한 소시민. 알지만 굳이 마주치고 싶지는 않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타지에서 혼자 살아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껴보았을 것이다. 초원 위의 초식동물처럼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는 순간에도 괜히 주변을 경계하게 되는 마음을.
약 250세대로 이루어진 신도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내게 이웃이란 그런 존재다.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서로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에 왠지 수상하고 미심쩍은 사람들. 그들이 생각하는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날은 현관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밖이 왜 이렇게 시끄럽지? 복도에서 웃고 떠드는 건 예삿일에 술 취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도 빈번해서 또 시작인가 싶었지만 이건 그런 류의 소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건…….

쾅쾅쾅! 쾅쾅!
“계세요? 안에 계세요?”
“소방관이에요! 계시면 문 좀 열어보세요!”
 
틀림없다, 밖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맞은편 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구급대원 세 명과 관리실 직원 두 명, 그리고 몹시 초조한 듯 팔짱을 끼고 한쪽 다리를 떨고 있는 젊은 남자. 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들은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큰일이네, 이러면 뜯는 수밖에 없는데…….”
“혹시 여기 마지막으로 수도 사용한 시간 알 수 있을까요?”
“아, 지금 내려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먼저 탑승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으니 관리실 직원 한 명이 얼른 달려왔다. 잠깐 눈이 마주쳤지만 내려가는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층에서 내리는 내게 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덩달아 꾸벅 고개를 숙이고 그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지하로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저녁이 되어 돌아오니 복도는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낮에 있었던 일은 단순한 해프닝이었던 걸까? 그래, 무슨 일이 있었으면 아직까지 난리였을 거야. 그날 밤, 나는 여섯 평짜리 원룸을 구석구석 깨끗이 쓸고 닦았다.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던 한 단어에 대해 생각하면서.

ⓒ게티이미지뱅크

 

내 장래희망은 독거노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유하고 명랑한 독거노인. 결혼에도 출산에도 뜻이 없는 내가 바라는 건 든든한 남편이나 귀여운 자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재력과 건강이다. 원체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이니 그 두 가지만 있다면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깨달았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잘 죽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무연고 사망자로 집계된 인원은 총 3,159명에 달한다.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있지만 위급한 순간 곁에 아무도 없어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까지 더한다면 이 숫자는 얼마나 커질까? 1인 가구 비율이 사상 첫 40퍼센트를 돌파한 지금, 고독사는 더 이상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고독사가 두렵다는 이유로 모두가 결혼을 택할 수는 없는 법. 저마다의 이유로 미혼 혹은 비혼으로 살고 있는 다른 1인 가구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클립아트코리아

 

30대 초반인 내 친구들의 절반 이상은 현재 혼자 살거나, 과거에 혼자 살아 본 경험이 있다. 이제 막 자취 1년 차에 접어든 A는 고등학교 때부터 가깝게 지내 온 친구들과 하루에 한 번씩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이른바 ‘생존 신고’ 채팅방을 만들었다. 사전에 아무 말 없이 이틀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신고하자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지만 그 말이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20대 초반에 자취를 시작해 10년 넘게 혼자 살았던 B는 얼마 전 친한 언니와 살림을 합쳤다. 좁은 집에서 둘이 사는 일이 불편하긴 하지만 고정비용도 줄어들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누구도 함부로 믿을 수 없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은 서로의 사회적 안전망이 된다. A의 친구들과 B의 하우스 메이트는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릴 것이다. 경찰보다도 구급대원보다도, 그리고 피를 나눈 가족보다도.

언젠가 인터넷에서 ‘친구와 함께 살기 좋은 집’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그 집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거실 겸 주방을 사이에 두고 두 가구가 맞닿아 있는 구조였다. 혼자일 수도, 함께일 수도 있는 집.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친구를 태그하며 이런 집에서 함께 살고 싶다는 댓글을 남겼다. 인터넷이 아닌 현실에서 이런 집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혼인 관계로 엮이지 않은 2인 가구를 위한 집은 어떤 모습일까? 시간이 갈수록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은 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로 여겨졌던 4인 가구의 비율은 지난해 20퍼센트 아래까지 떨어졌다. 부부와 그들의 자녀, 이제 우리는 그 낡은 공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클립아트코리아

 

가족은 집에 살고, 가정은 집을 기반으로 꾸려진다. 꼭 신혼부부가 아니더라도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되어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맺어지지 않은 동거인들이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있다면, 공용 공간과 개별 공간이 어우러진 집이 보편적으로 공급된다면 많은 1인 가구들이 2인, 혹은 3인 가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과정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그들을 위해 왜 사회 전체가 변화해야 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수월하게 팀을 이룰 수 있다면 고독사 예방과 돌봄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유의미하게 줄어들 것이고,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10년 뒤 나는 어떤 집에서 누구와 함께 살고 있을까? 그때의 내 앞에 지금보다 다양한 선택지가 펼쳐져 있기를 바라며 더 많은 가능성을 위한 집을 꿈꿔 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꿈의 집은 바로 그것이므로.

 


하현
김포와 망원과 일산을 오가며 책을 쓰고, 책을 팔고, 책을 읽는다.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 《우리 세계의 모든 말》 《달의 조각》 등을 썼다. 장래희망은 부유하고 명랑한 독거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