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음식 낭비와 환경 위협에 대항하여 등장한 식문화 ‘푸드셰어링’을 주제로 한 외부 전문가의 문화다양성 칼럼입니다.
40톤 트럭이 지구를 일곱 바퀴 돈다. 트럭에 실려있는 건 다름 아닌 음식물 쓰레기. 일 년에 지구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양이 이 정도라는 사실을 숫자로 확인하고도 잘 믿기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양에 놀라기도 했지만 한없는 미안함도 든다. 아프리카 동쪽에 있는 큰 섬 마다가스카르 남부지역에서는 가뭄으로 먹을거리가 부족해 야생 열매에다 진흙으로 연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구에 사는 8억 명이 넘는 인류가 배를 곯는데 이토록 많은 음식이 버려진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부정의하다.
그렇다고 모든 인류가 버려지는 음식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음식을 쓰레기로 만드는 지구인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 건 한 편의 다큐멘터리였다. 2010년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영화제작자인 발렌틴 툰이 제작한 ‘쓰레기를 맛보자 Taste the Waste’는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상품성은 없지만 먹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버려지는 것을 고발했다. 또한 식품 진열대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음식, 과잉으로 생산된 먹을거리들이 버려지면서 그걸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마저 소비자들이 부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 역시 까발렸다. 실제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의 1/3은 소비되지도 않고 버려진다. 생산단계에서, 유통 과정에서, 그리고 우리의 젓가락 끝에서. 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음식을 쓰레기로 만들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 고민의 결과 탄생한 것이 ‘푸드셰어링’이다. 푸드셰어링의 시작은 발렌틴 툰을 비롯한 제작진들이었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그들은 무심코 버리던 음식을 나눴고 웹사이트를 만들어 거리에 냉장고를 설치했다.
ⓒ클립아트코리아
푸드셰어링이란 온라인 플랫폼이나 오프라인 냉장고 등을 매개로 해서 누구나 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활동이다. 독일에서 푸드셰어링이 정착된 배경에는 그들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독일 사람들은 전쟁 등으로 위기를 겪으면서 서로를 지켜줄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푸드셰어링 역시 이러한 연대 의식의 표출인 셈이다. 푸드셰어링은 거리 곳곳에 공용 냉장고를 설치하고 여분의 음식이 있는 사람이 냉장고에 가져다 두면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언뜻 생각하면 누가 가져다 놓은 어떤 음식인지 과연 안전한지 등에 의문이 잔뜩 붙을 법하다. 그런데도 독일의 푸드셰어링이 활성화될 수 있었던 건 ‘푸드 세이버’라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컸다. 냉장고를 관리하는 푸드 세이버들은 보통 2, 3명으로 냉장고를 청소하고 음식을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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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음식을 나눠 먹는 문화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고만고만하게 담장 낮은 집에서 살던 시절, 어쩌다 음식을 장만하는 명절이면 넉넉히 전을 부치고 떡을 해서 이웃과 나눴다. 담장 너머 음식을 나누면서 일상의 안부를 묻던 그 시절엔 단순한 나눔을 넘어 소통하며 살았다. 아파트로 주거 환경이 바뀌면서 음식이 오가던 문화가 사라졌다. 옆집에 비는 쌀독을 내 집에 주체 못 할 음식이 채울 수 있다는 방법도 함께 잊혔다. 이 아름다운 문화를 소환한 게 푸드셰어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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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이미 음식을 나누는 제도가 있긴 하다. 1998년 IMF를 계기로 푸드뱅크가 도입되었고 2000년에는 푸드뱅크 활성화가 100대 국정과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주관하여 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여러 이유로 품질에는 문제가 없는데도 유통이 어렵게 된 식품을 기부받아 저소득 및 소외계층, 복지시설에 나누어주는 제도도 있다. 지자체마다 아름다운 곳간, 나눔 곳간, 공유 냉장고 등의 이름으로 음식을 나누는 문화가 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식물 쓰레기양이 줄지 않는 까닭은 왜일까? 음식물 쓰레기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 가정이라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규모 있는 장보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도 음식이 남는다면 아파트마다 공유 냉장고를 두면 어떨까? 여행 등으로 며칠 집을 비워야 할 때, 생각보다 많이 만든 음식을 처리하느라 곤혹스러울 때 공유 냉장고를 활용해 본다. 이왕이면 음식과 함께 공유하는 사연도 간단히 메모해둔다면 주민들 간에 소통은 더 활발해질 테고 아파트 안에 설치된 음식물 쓰레기통은 헐렁해지지 않을까? 문제는 있다. 음식의 안전성을 어떻게 담보하고 누가 공유 냉장고를 관리할 것인가이다. 실제 아파트에 공유 냉장고 설치를 제안했다가 관리사무소에서 난색을 표한 사례도 있다. 독일의 푸드 세이버들의 활동에서 힌트를 얻으면 좋겠다. 내가 사는 동네 주민들과의 신뢰가 어쩌면 공유 냉장고를 통해 더 돈독해질 수도 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이 시혜를 베풀고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다는 인식으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음식물 쓰레기에서만 지구 전체 온실가스의 8%가 배출된다. 기후 재난이 일상화된 지금 음식 생산부터 유통 그리고 버려지는데 들어가는 에너지와 물, 토양 그리고 배출되는 온실가스까지 생각한다면 음식이 쓰레기가 되는 일을 지금 당장 멈춰야 하지 않을까?
최원형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민들을 만나 생태, 환경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연히 자작나무 한 그루에 반해 따라 들어간 여름 숲에서 아름답게 노래하는 큰유리새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와 자리를 갖지 못한 존재들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뭇 생명과 조화로운 삶이 세대에 걸쳐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연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잡지사 기자와 EBS, KBS 방송작가로 일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환경과 생태 쫌 아는 10대>,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착한 소비는 없다>, <라면을 먹으면 숲이 사라져>, <최원형의 청소년 소비 특강>,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 <왜요, 기후가 어떤데요?>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