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이 된 이유(아티스트, 동물권 운동가 전범선) 첨부이미지 : 썸네일8-12.png

문화다양성 인터뷰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연대와 사랑의 가치로 비거니즘을 알리고 전파하는 아티스트 전범선님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1.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글 쓰고 노래하는 전범선입니다. 밴드 양반들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2. 저마다 비건이 되는 이유가 다양한데요. 언제, 어떻게 비건이 됐나요?

저는 대학교 2학년 때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고 채식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동물해방물결을 발족하면서 비건이 되었습니다.

도서<동물해방> (제공=연암서가)

3. 비건으로서 평소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평상시 식습관이나 식단을 소개해주세요.
 
평소 식사는 집에서 해먹거나 비건 식당 혹은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에 가서 사먹습니다. 요새는 마트에도 비건 제품이 많고 배달 앱에도 비건 식당이 많습니다. 크게 불편할 일이 없습니다. 비건으로 살면서 어려운 점은 사회적인 편견입니다. 실제로 음식을 조달하는 일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회식이나 명절이 제일 난관입니다. 비건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비건 친구를 최소 한 명이라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같이 식사를 나누는 사람, 다시 말해 식구가 본인의 비거니즘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이 핵심입니다.

4. 진로를 선택할 때,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 대신 굳이 예술가를 선택하셨습니다, 당시 가졌던 심정과 각오가 궁금합니다.

굳이 예술가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이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글 쓰고 노래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웠습니다. 안정적이지만 불행한 길을 택하는 것보다는 불안하지만 행복한 길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불안하긴 하지만 여전히 행복합니다. 기후생태위기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 불안이란 애초에 피할 수 없는 감정일지도 모릅니다.

5. 전범선이라고 하면 ‘해방’ 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연상이 됩니다. 세상의 틀에 벗어나다 보니 ‘불안’에 직면해야 하는 순간도 많을텐데, 이에 대처하는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연대와 사랑밖에 없습니다. 불안도 나누면 덜합니다. 저는 같이 음악을 만드는 밴드 양반들이 있고 운동을 하는 동물해방물결 동지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이 있습니다. 모두 저의 식구들입니다. 같이 밥을 나누고 운명을 공유합니다.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불안에 직면하는 유일한 노하우입니다.

6. 동물해방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동물해방물결’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사진 제공=전범선

2012년 <동물해방>을 읽은 것이 근본적인 계기입니다. 그 책을 고등학교 동창인 이지연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5년 뒤, 동물해방물결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운동을 하게 된 것은 친구 따라 강남 간 꼴입니다. 사상적으로 관심이 있긴 했지만, 실제 운동까지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친구가 한다니까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저는 철학 자문위원이라는 허울을 쓰고 벌써 5년 째 일을 돕고 있습니다. 주로 이론을 다듬는 일을 합니다. 동물권, 동물해방, 종차별, 종평등, 비거니즘, 비건 등의 개념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담론을 형성합니다. 관련 책을 여럿 번역하고 썼습니다. 요즘은 비거니즘을 단순 채식주의가 아닌 죽임 반대, 즉 ‘살림’의 철학으로 해석하고 확장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7. ‘밥을 먹고 삶을 사는 일에 진심인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하기도 하셨는데, 먹고사니즘에 몰두하는 MZ세대에게 삶의 태도로서 비거니즘은 왜 중요한가요?

흔히 말하는 먹고사니즘에 천착할수록 실제로 밥을 먹고 삶을 사는 일은 등한시합니다. 입시와 취업, 증권과 코인, 즉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에 잠식되기 때문입니다. 일하느라 대충 시켜 먹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진짜 먹고사니즘은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최우선시하는 태도입니다. 국어사전은 “잘살다”를 “부유하게 살다”로 정의합니다. 잘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릅니다. 행복하고 윤리적으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저는 잘 먹는 것이 잘 사는 것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하루 세 번 먹는 밥이 과연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따져보는 것이야말로 먹고사니즘의 기본입니다.

8. 윤리적으로 비거니즘에 동참하고 싶지만, 차마 고기를 끊을 수 없어서 비건이 되기를 망설이는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해보시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씩 끊었습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순으로. 고기를 끊으면 오히려 미각이 예민해져서 새로운 맛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줘도 안 먹었던 버섯, 가지, 콩, 나물 등의 풍미를 오롯이 만끽합니다. 처음에는 저도 채식이 금욕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과부화되어서 둔감해진 미각을 해방시키는 행위입니다. 이제는 현미밥에 김만 싸먹어도 행복합니다. 그렇게 달고 짤 수가 없습니다.

9 동물권 운동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갖는 오해와 편견이 있다면?

사진 제공=전범선

아직까지 동물권운동을 정치의 영역보다는 취향이나 애호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음씨 착한 사람들의 특이한 취미 활동 정도로 여기는 것이죠. 개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배부른 소리로 치부합니다. 사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비거니즘은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정치 이데올로기입니다. 인종차별, 성차별에 이어서 종차별을 철폐하려는 시도입니다.

10. 역사와 철학 공부를 많이 하셨는데, 이러한 공부가 비건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역사란 변화를 점치는 학문입니다. 저는 특별히 동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지 역사를 공부하다보니 동물 해방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운동이라고 이해했을 뿐입니다. 노예 해방과 민족 해방과 노동 해방과 여성 해방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제가 죽기 전에는 비건 세상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노예 제도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듯이 공장식 축산을 되돌아볼 것입니다. 아, 저렇게 잔혹하고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구나!

11. 비건이 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나요?

고깃집을 지날 때마다 생각합니다. 동물 사체나 부산물이 광고되고 소비되는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거의 항상이네요.

12. 기후위기 시대의 환경 문제는 개인으로서 해결이 불가능해보입니다. 글 쓰고 노래하는 예술가이자 운동가로 혹시 자신의 노력이 현실에 변화를 불러왔다고 체감했던 순간이 있나요?

요즘 여기저기서 비건 이야기가 들립니다. 이 인터뷰도 그중 일부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체감합니다.

13. 5년 뒤, 10년 뒤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마음 속으로 그리는 미래의 모습을 들려주신다면?

그때도 글 쓰고 노래하고 있을 겁니다. 다만 기후생태위기가 얼마나 심각해질지는 가늠이 잘 되지 않습니다. 이미 올해만 봐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악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5년 뒤, 10년 뒤 우리가 어떤 지구에서 살고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식구들과 꿋꿋이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14. 전범선님이 생각하는 ‘문화다양성’은?

문화다양성은 ‘변화가 싹트는 토양’입니다.
-아티스트 전범선


전범선
1991년 강원도 춘천 출생.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상을 받았다. 이후 예술가 겸 사업가, 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책방 ‘풀무질’ 대표, 출판사 ‘두루미’ 발행인이다. 비거니즘 잡지 「물결」을 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