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아웃도어 패션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Do not Buy This Jacket’ 캠페인을 시작했다. 옷을 팔아야 수익이 생기는 의류 브랜드가, 옷을 사지 말라는 컨셉의 광고를 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가능한 광고다. 그러나 2012년, 파타고니아의 매출은 30% 급증하며 결과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평가받았다. 파타고니아의 캠페인은 당시 대두되던 슬로 패션, 컨셔스 패션이라는 시대적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브랜드 가치를 높인 성공작이었다.
미국의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
’슬로 패션‘은 2007년, 영국의 지속가능 패션 센터(Sustainable Fashion Center)의 케이트 플레처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이전 10여 년간 패션계의 트렌드는 패스트 패션이었다. 매 시즌 최신 유행에 맞춘 옷을 다양하고 저렴하게 제공하는 H&M, 자라, 포에버21, 유니클로, 행텐 등의 SPA 브랜드는 승승장구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본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여 단기간 입고 버리지만 계속 유행에 맞는 새로운 옷을 입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패스트 패션은 단가를 낮추기 위하여 질 낮은 섬유를 사용하고, 쉽게 버려지기 때문에 자원의 낭비가 심하다. 의류는 화학염료가 다량 함유된 제품이 많아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SPA 브랜드는 비용 절감을 위해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제작했는데 저임금의 노동력 착취라는 비판도 있었다. 10년 넘게 승승장구하던 패스트 패션의 한계였다.
다품종을 빠르게 공급하는 패스트 패션 (출처=픽사베이)
패스트 패션에 반대하여 나온 슬로 패션은 환경을 고려하고, 유행을 따르기보다 오랜 기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천연재료나 재활용 소재 등을 활용하며, 노동자의 권리와 동물 보호에도 유의한다. 소비자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체형과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선택하며, 오래된 옷은 수선이나 리폼을 하여 입은 후 다시 중고로 재활용하는 방식이다. 최근 기후위기가 현실로 닥치면서 슬로 패션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2019년 파산신청한 패스트 패션 브랜드 포에버21 (출처=연합뉴스)
미국의 포에버21은 2019년에 결국 파산했고, 스웨덴의 H&M은 2011년부터 ‘Conscious collection’(컨셔스 컬렉션)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거나 장기간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등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마케팅이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기간 한정으로 나오는 익스클루시브 라인은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옷을 살 수 있기에 매우 인기가 좋고 많이 팔리는 것이다. 소비자는 ‘윤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친환경 소재로 제작된 H&M의 2020 F/W 시즌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 (출처=H&M)
‘그린워싱’은 기업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태도다. 기후위기가 당면의 문제로 닥치면서, 기업들은 녹색경영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환경오염을 저지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부 친환경적인 사업만을 부각하여 홍보에 열중하고, 제작과정 전반에 걸친 환경오염을 교묘히 은폐한다. 친환경 관련 기업들의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지는 '그린 버블‘이란 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셔스 패션‘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기후위기의 거대한 충격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컨셔스 패션이 기업의 마케팅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고 공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MZ 세대의 개성적인 스타일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패션 산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가치 소비‘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 소설, 만화를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