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인테리어도 스트리밍이 되나요? (핀즐 진준화 대표) 첨부이미지 : 05.png

그림을 사지 못한 밀레니얼

모든 일에는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내게 있어 그림에 대한 관심의 계기는 결혼이었다.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꾸미는 과정에서 문득 그림 한 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걸고 싶다는 생각을 이전엔 해본 적이 없었고,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그림은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내게 흰 벽의 썰렁한 신혼집은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었다.

그림을 사본적이 없었기에 어떤 그림을 어디에서 어떻게 사야 할지 전혀 감이 없었고, 무작정 인터넷을 뒤졌다. 마음에 드는 그림은 너무 비싸고, 내가 살 수 있는 금액대의 그림은 너무 다 비슷하고 다양하지 않았다. 아니, 우리나라 미술시장에는 애초에 나 같은 미술 초심자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없어 보였다. 해외의 온라인 갤러리들로 눈을 돌렸다. 화풍이 너무 다양했고, 젊고 트렌디한 아티스트들의 작품도 많았다. 고가의 원화 외에도 포스터나 리미티드 에디션, 패브릭 등 소장할 수 있는 형태와 가격대도 다양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이외에, 국내 미술시장과 해외 미술 시장의 실제적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어디서 이런 차이가 기인했는지 알고 싶어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았다.

 

 

미술 시장에 대한 비교

우리나라 미술시장의 규모는 5,000억 원 정도 수준이다. 이는 글로벌 미술시장 전체 규모인 75조 기준 0.5%에 불과한 수치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GDP는 1조 6382억 달러로, 전 세계 GDP 총합 87조 7500억 달러 중 1.87% 차지하는 수준이다. 구매력에 비해 미술 시장이 충분히 크지 못한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카테고리의 문화 예술 시장과 비교해 보자. 출판 시장은 7.8조 원, 영화시장은 2.3조 원, 그리고 음악 시장 규모는 4.6조 원이다. 미술 시장과는 애초에 단위가 다르다. 생각해 보니 시장 규모만 다른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거나 즐기는 빈도 역시 차이가 크다.

언젠가부터 문화 예술 시장은, 유통 비즈니스에서 IP 기반의 비즈니스로 패러다임이 옮겨가기 시작했다. 디지털 파일로 창작되고, 무한대로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이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일상에서 더 쉽게 즐길 수 있는 형태가 되었다. 이는 더 많은 구매와 소비로 이어졌고, 미술시장을 제외한 문화 예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해올 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다. 예컨대 스트리밍으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전자책으로 독서를 하는 등의 방식이다.

미술은 어떤가? 여전히 어렵고 무겁고 비싸다. 비즈니스 형태 또한 실물 작품을 유통하는 데에 치우쳐있다. 요즘 아티스트들은 디지털로 창작하거나, 실제 작품도 스캔 등의 방식으로 디지털라이징이 충분히 가능한 시대이다. 외국의 경우 미술작품 유통뿐만 아니라 기업들과 다양한 협업 및 콘텐츠와의 결합, 상품화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세계 최초의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

내게 필요한 그림은, 평생 소장할 비싼 작품이 아니었다. 그냥 내 일상과 공간을 리프레쉬 해줄 영화나 음악같이, 하나의 콘텐츠로서의 그림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아래 조건들을 만족해야 했다.

1. 전문가가 알아서 좋은 작품을 추천해 줄 것
2. 일상과 공간의 리프레시를 위해 정기적으로 작품을 교체해 줄 것
3. 가격 부담이 적을 것

생각해 보니, 매월 새로운 콘텐츠가 담겨 정기 배송되는 매거진이 이러했다. 그림도 매거진처럼 매월 새로운 작품을 전문가가 선정하고 부담 없는 가격에 매월 알아서 보내준다면, 나 같은 밀레니얼들도 쉽게 그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세계 최초의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를 출시하게 되었다.
2017년에 첫 선을 보였으니, 서비스를 출시한지 벌써 5년이 되었다. 그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전히 순항 중이고, 구독자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서비스의 독창성과 심미성을 인정받아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불리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였고, 국내 1위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로 다양한 곳에서 소개되고 있다. 최근 현대카드 플랫폼에 탑재되어 원클릭 구독 신청이 가능해지면서, 더욱 빠르게 사용자가 늘고 있다.

 

미술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법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가 모두에게 정답은 아니다. 선보인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조금은 생소한 서비스이고, 자신의 작품이 소장이 아니라 소비되는 것을 꺼리는 아티스트들에게도 역시 맞지 않는 방식이다. 하지만 본 서비스의 이용자 중 85%는 본 서비스를 통해 처음 그림을 구매하는 경험을 맛보았고, 이 경험은 추후 더 다양한 예술을 시도하게 만드는 첫 단추로 작용하고 있다.

예술이 인간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대부분의 아티스트와 작품을 판매하는 기업 역시 이 부분을 소비자들에게 교육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실제 경험하게 해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실제 소비자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을 실질적으로 해소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미술을 경험하는 취향과 형태의 지경을 넓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진준화
아트 스타트업 ‘핀즐’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