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 발자국을 남긴다면, ‘이인환각연쇄고리’ 첨부이미지 : 04.png

스무 살 여름, 친구들과 바다 여행을 갔다가 발을 헛디뎌 빠져 죽을 뻔했던 적이 있다. 나는 수영을 거의 할 줄 모르고, 친구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모여 있어 내가 정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찌어찌 구조되어 친구들 곁으로 돌아왔지만 바닷물 속으로 하염없이 잠겨 가던 순간의 감각은 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던 친구들의 목소리,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굳어가던 몸, 유독 뜨거웠던 햇빛과 뿌연 물속 같은 그날의 디테일들은 당장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의해, 이 순간이 생의 마지막 기억일 수도 있다는 절박함에 의해 무의식 속에 정확하게 기입되었다.
 
눈을 감으면 그날의 바다가 나의 눈꺼풀을 타고 잠 속으로 흘러 들어와 꿈의 공간을 출렁이는 물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나는 종종 꿈속에서 그날의 바다로 끌려갔다. 어느 날에는 끌려가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른 살인 나는, 스무 살에 죽은 내가 꾸는 꿈이 아닐까? 사실 그날 나는 익사했던 게 아닐까? 나는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현실로 다시 깨어나는 중인 것은 아닐까? 물에 빠지는 순간의 감각과 잠에 빠지는 순간의 감각이 뒤섞인, 물과 꿈이 형성하는 기이한 공간에 관한 이야기는 공연 ‘이인환각연쇄고리’에서 특별한 주파수를 통해 제공되는 1차 연쇄고리 텍스트로 제작되었다.

 

심야 공연 ‘이인환각연쇄고리’ 포스터 ⓒ콜드슬립

‘이인환각연쇄고리’는 저녁 여섯 시부터 아침 여섯 시까지 해가 없는 시간에만, 한 시간에 한 명씩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이다. 관람 방법부터 의심스러운데, ‘강북구 인수봉로에 위치한 공간을 임대하여 꿈 세계와 현실 세계의 교차점을 발생시킨다’는 공연 설명은 더욱 수상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꿈 연구자들은 퇴화하지 않은 기관을 소유한 ‘채널헤드’를 찾는다고 하는데, 이들이 말하는 채널헤드는 어떤 사람이며 퇴화하지 않은 기관이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무엇도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주최 측의 이름은 koldsleep, ‘차가운 잠’이라는 뜻인 것 같다.


ⓒ콜드슬립
 

공연 마지막 날인 11월 21일 오후 6시, 의문점을 해결하지 못한 채 공연장을 찾았다. 홀로 어두운 골목을 오르다 보면 정면으로 누가 보아도 비일상적인 공간이 눈에 띈다. 유리 너머 흰 침구가 놓인 불 켜진 공간에 한 사람이 잠옷을 입고 앉아 있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일의 불가능성을 증명하듯 공간은 평범한 동네 한가운데에 느닷없는 꿈처럼 놓여 있다. ‘KOLDSLEEP’이라는 이름이 유리창에 크게 적혀 있지 않았더라면, 이 공간의 모습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침대가 놓인 무균실이나 야근이 잦은 연구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곳이 ‘이인환각연쇄고리’의 공연장이다.
 
흰 문 앞에는 채널헤드를 찾는 전단지가 붙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공간에 책상, 침대, 모니터, 냉장고가 놓여 있다. 창밖에서 보았던 사람은 연구원 3. 그는 말을 할 수 없기에 아이폰에 적힌 글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소통한다. 연구원 3은 가장 먼저 벽에 붙은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어 연구원 1의 목소리를 듣게 했다. 연구원 1은 관객에게 ‘채널헤드’로서 다른 이들의 꿈의 주파수를 듣고, 꿈의 좌표가 그들 밖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돕기를, 마침내 자신의 꿈을 증언하여 환각의 연쇄를 계속되게 하기를 요청했다. 뒤이어 연구원 3은 냉장고에서 10개의 주파수가 녹음된 CD를 20분이 넘지 않는 구성으로 고르라고 지시했다. 나는 나의 꿈이 녹음된 CD 파일 하나와 무작위로 두 장을 더 골랐다. 차가운 CD를 만지는 순간 CD라는 사물의 시각적 형태와 차가움이라는 촉각의 부자연스러운 연결이 꿈에서 감각이 재현되는 방식과 매우 밀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시-촉각적 뒤틀림은 공연의 목적 자체를 환기하고 있었기에 즐겁게 공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연구원 3은 세 개의 주파수와 주파수를 재생하기 위한 CD플레이어를 상자에 담아 공연장을 나섰다. 그를 따라 나서면서부터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는 듯했고, 마치 어떤 꿈은 현실로 흘러나오듯이, 꿈의 좌표를 공연장 내부로 한정하지 않는 이러한 방식이 공연장이라는 장소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잠옷 위에 흰 패딩을 걸친 연구원 3은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의 걸음은 무척 빨랐으며 어둠 속에서 흰 패딩을 입고 걷는 타인의 뒷모습은 기이했지만 어딘지 낯익었다. 목적지를 모르는 상태로 그를 따라가는 동안 짙은 기시감이 들었는데, 이것은 너무나 꿈적인 장면이 아닌가! 기획의 섬세함에 감탄하며 한참을 걸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물가였다. 연구원 3은 바위 위에 서 내게 헤드폰을 씌워주었다. 나는 가공된 주파수를 들으며 물을 내려다보았다. 물속에서 출렁이는 어둠은 주파수의 음향과 뒤섞여 어떤 ‘꿈’을 재생산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전압기 앞에서, 공연장의 통창 곁에서 텍스트가 재현하는 공간을 경험하며 주파수를 들었다. 연구원 3은 한결같은 몸짓으로 주파수를 재생하고, 멈추고, 헤드폰을 씌워주었다. 주파수는 공간과 뒤섞이며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에 머무르지 않고, 감각 자체를 꿈적인 방식으로 치환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방식의 질료가 언어, 즉 텍스트 및 신체가 겪는 감각 자체라는 것과, 그 두 가지가 공연을 통해 뒤섞일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매료되고 말았다.

이인환각연쇄고리 컨셉 홍보물 ⓒ콜드슬립

꿈 탐험을 마친 뒤 공연장에 돌아와 연구원 3은 나를 침대에 눕히고 증언을 요청했다. 누운 채 그의 아이폰에 음성으로 증언을 마친 뒤 koldsleep의 뱃지를 받고 공연은 끝이 났다. 녹음된 음성은 3차 연쇄고리에 쓰일 소설의 재료로 사용될 예정이라고 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는 수유동을 걸어 내려와 버스를 탔는데, 두 번이나 방향을 잘못 고르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 내내 고민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공연의 시작점이 언제라고 할 수 있을까? 공연장의 문을 열었을 때? 연구원 3이 건넨 동의서에 서명했을 때? 그를 따라 공연장 밖으로 나섰을 때?
 
꿈의 시작은 언제나 기억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꿈은 재현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꿈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을까? 꿈을 둘러싼 여러 가지 질문들이 발생하는 장소를 꿈에 가까운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먼 미래에 이 날의 장면들을 떠올린다면, 나는 내가 겪은 일들이 실제인지 꿈속인지 구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겪은 일은 꿈인 걸까, 꿈이 아니게 되는 걸까? 아마 어느 쪽이든 상관 없을 것이며, 결국에는 꿈과 실제가 실은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때쯤, 낯익은 나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게는 이 역시 공연의 일부였던, 두 시간에 걸린 귀가였다.


김선오
2020년 시집 <나이트 사커>를 통해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