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 : 웹툰과 웹소설에서 리얼을 실감하다
▲불량만화 화형식(1970. 5. 27)(제공=국가기록원)
1971년 6월 29일. 신문에는 또다시 불량만화 화형식 사진이 실렸다. “불량만화는 사회악의 근원이다”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화형식은 1960년 이후 거의 매년 행해지던 이벤트다. 불량만화 근절을 앞세웠지만 그 내부에는 만화를 둘러싼 정부당국과 교육 및 학부모단체, 출판사와 만화유통업자, 만화가단체의 헤게모니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어찌됐든 불량만화 화형식은 ‘만화는 불량하다’, ‘만화는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우리 사회에 던지는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격세지감을 느낀다. 공공도서관에 만화가 비치되고, 교과서에 만화가 실리며,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그림을 꽤 그린다는 이유로 웹툰작가가 되기 위한 진로상담을 문의해 온다. 불과 20여 년 전, 검열로 인해 그나마 지탱하던 만화산업의 기반을 붕괴시켰던 사건으로부터 오늘날의 이 변화는 웹툰이 상업적으로 성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웹툰에 대한 인식 변화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가 본격화하면서 대두된 여러 가지 환경변화의 결과였다. 여기에는 생태계를 조직한 플랫폼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변화된 디지털 환경에서 빠르게 적응하며 새로운 연출 문법을 만들어낸 창작자들의 역할과 스스로를 오덕후(오타쿠)라고 자처하는 독자들의 소비 형태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웹소설의 성장과 웹툰과의 융합은 더 큰 시너지를 창출했다.
▲카카오엔터 산하의 노블코믹스, 웹소설을 웹툰이나 영상·애니메이션으로 가공하는 2차 창작이 주력이다.
대표작으로 김비서가 왜그럴까 등이 있다.(제공=카카오페이지)
일명 노블코믹스는 웹툰이 글로벌 시장에 안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웹소설은 저비용의 고효율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지만, 번역이라는 이중의 프로세스를 거쳐야 한다. 이때 웹소설을 IP로 한 노블코믹스는 그림이라는 만국공용어로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는데 효과적이었다. 2015년 KT경영경제연구소가 ‘웹툰 1조원 시장’을 예측한지 몇 년 지나지 않은 2021년, 웹툰의 산업규모는 1조원 시장을 거뜬히 넘어섰다.
그래서일까. 웹툰, 웹소설을 둘러싼 인식의 변화를 느끼면서도 웹툰, 웹소설이 진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없는 매체라고 생각하는 편견이 여전하다는 것도 동시에 실감한다. 여기에는 웹툰의 산업규모가 얼마이며, 웹소설이 지난 5년간 몇천 배 성장했으며, 앞으로 또 얼마를 벌어들일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회자되며, 온통 ‘돈’이 우위에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명백한 오해다. 콘텐츠의 상업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 이 분야를 논단할 수 없다. 만약 그랬다면 독자들이 먼저 등을 돌렸을 게다. 상업성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 새롭게 부상한 세대-독자들의 욕망을 투영하며 그 요청들을 수용하며 변화해왔고, 변화해 가고 있다.
웹툰, 웹소설은 이제 간편하게 즐기는 스낵컬쳐, 재미만을 추구하는 매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 가볍게 여기는 그 재미 안에 리얼리티가 있다. 리얼리티를 느끼는 MZ세대의 감각이 변화했다. 환경은 변했고, 그 속에 살고있는 인간의 감각도 변했다.
지금-여기의 현실인식
불과 2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웹툰은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론으로 구성해냈다. 웹툰은 삶의 통찰과 윤리적 인식의 기능까지 확장하며 문화적·사회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정통적으로 이것은 문학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만들어진 신화였다. 웹툰은 그 신화를 보기 좋게 걷어차 버렸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장르소설과 같은 하위문화들이 인식론적, 윤리적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웹툰은 상업적 성공을 거둔 가운데 디지털 콘텐츠 시장의 선두에서 새로운 문학사를 써냈다. 웹툰을 비롯한 수많은 하위문화들은 지금-여기의 현실을 재현하며 인식론적, 도덕적 역할도 담당해 왔고, 진행 중이다. 웹툰, 웹소설이 어떻게 사회적 기능을 담당해 왔는지 몇 작품만 나열해 본다.
▲주호민 작가 웹툰 <무한동력> (제공=교보문고)
▲책과 드라마로도 나왔던 윤태호 작가 웹툰 <미생> (제공=교보문고)
취준생인 청년세대의 고민과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다룬 <무한동력>(2012),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의 현실을 그리며 노동현장의 문제를 제기한 <미생>(2012)과 <송곳>(2013), 20대 사회 초년생 여성의 불안정하고 불안전한 주거문제와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다룬 <혼자를 기르는 법>(2015), 사적 공간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은폐되어 왔던 가정 내 폭력을 고발한 <단지>(2015)와 <아 지갑 놓고 나왔다>(2015),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이라는 이중의 억압으로 자살을 결심한 여중생의 성장이야기를 다룬 <여중생 A>(2015), 일본군 성노예 피해사실에 대한 역사적 재현을 다룬 <곱게 자란 자식>(2013)과 <다시 피는 꽃>(2018), 우리 사회의 젠더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정년이>(2019)에 이르기까지 웹툰은 청년문제부터 젠더, 세대, 가족, 돌봄, 퀴어 등 다양한 목소리들을 담아내며 삶의 가치와 방향을 통찰해왔다.
▲ 웹툰 <송곳>, <혼자를 기르는 법> (제공=창비)
▲ 웹툰 <아 지갑 놓고 나왔다>, <곱게 자란 자식) (제공=daum웹툰)
또한 소위 잘 팔리는 패턴을 조합한 ‘양산형’ 작품들도 지금-여기의 현실을 담아왔다. 일례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우리 사회의 젠더 문제에 대한 고민과 요구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와 역하렘물로 나타났다.
▲도서로 발간된 웹툰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 <하렘의 남자들> (제공=교보문고)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성-의 구도를 깨고 진짜 적을 향해 연대하는 여성들을 다룬 <하루만 네가 되고 싶어>(2020)와,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를 해체하고 여성이 황제가 될 수 있는 역하렘의 세계 속에서 로맨스 대신 정치 대서사를 쓴 <하렘의 남자들>(2020)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웹툰과 웹소설은 때로는 독자들의 요구를 즉각적으로 수용하며 상호소통하고,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포착하며 인식의 지평을 넓혀왔다. 이 수많은 웹툰, 웹소설들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쾌락 본위로만 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정전화 된 문학교과서 위주의 교육을 탓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흥미로운 점은 10대, 20대 독자들 가운데 꽤 많은 이들이 웹툰과 웹소설에서 리얼리티를 느낀다는 사실이다. 가상의 기호에 불과한 캐릭터에 이입해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허구의 상상력이 만무하는 이세계(異世界) 속에서 리얼하다는 실존의 감각을 읽어낸다. 문학만을 정수로 배운 세대들이 알면 기함할 일이지도 모르겠다. 이제, 세계와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변했고, 우리는 그 경계선 어디쯤에 서 있다.
더 이상 공상과학 만화가 아니다
▲이정문 만화가의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 (출처=광주디자인비엔날레)
2017년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오래된 만화를 지목했다. 1965년 만화가 이정문이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였다. 이 만화는 전기자동차, 태양열을 이용한 집, 우주여행, 소형TV전화기, 로봇청소기, 인터넷 신문, 인터넷을 활용한 원격 학습 및 진료 등 ‘앞으로 35년 후 달라질 생활 풍경’을 담았다. 만화가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 사람들은 이 만화를 ‘공상과학’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예언-공상-이 적중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기술 입국을 주창하면서도 만화가 보여주는 과학적 상상력에는 ‘공상과학(空想+科學)’이라는 모순된 배치를 언어화했다. 스스로 과학기술의 실현불가능성을 전제해버린 꼴이다. 여기에는 선망하는 과학이지만 기술부족과 자원부재로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독한 개도국의 현실인식이 담겨있다.
당시로서는 그것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의 전부였다. 하지만 불과 30년도 지나지 않아 공상(空想)의 세계는 실현되었다.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공상과 과학이 한 끗 차이임을 학습했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인식 변화와 과학기술의 진보로부터 웹툰과 웹소설을 읽어낼 때, 요즘 독자들은 ‘공상과학’에서 리얼을 실감한다. 과학기술이 공상을 압도한 것이다. 웹소설, 웹툰의 이세계(異世界)로 진입하고 회귀하며 환생하는 세계가 더이상 불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의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제공=네이버시리즈 유튜브)
<전지적 독자 시점>의 김독자가 자신이 읽던 <멸망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이라는 책 속으로 빙의해 캐릭터들과 동고동락하지만, 독자들은 그것이 개연성 있다고 믿는 시대가 도래했다. 수많은 게임의 플레이어로서, 그리고 점차 진보하는 VR, AR과 같은 실감콘텐츠를 이용해본 적 있는 경험으로부터 독자들은 과학과 기술이 언젠가는 이러한 상상력을 실현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한다. 이것은 웹툰과 웹소설을 향유하는 방법을 확장한다. 이전 세대가 정통소설을 통해 리얼리티를 느꼈다면, Z세대는 웹툰과 웹소설에서 구현하는 이세계로부터 더욱 리얼한 실감을 획득해 버린다. 그렇다면 정통소설을 읽었던 이유로, 웹소설과 웹툰을 읽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수많은 팬을 확보한 <소드아트온라인>은 앞으로 과학의 진보가 우리의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VRMMORPG에서 벌어지는 게임 속 세계는 더 이상 실현불가능한 놀이의 세계가 아니다. 그곳은 <나혼자만 레벨업>의 주인공이 D급 헌터로 돈을 버는 생계의 터전이듯이 ‘나-독자이자 플레이어’의 세계가 될 수 있다. 주인공이 VR기계를 이용해 직접 게임에 접속하고, 실제 그것을 체감한다. 그 세계 안에서 통증을 느끼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죽음을 실감한다. 웹툰, 웹소설, 게임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에 내가 직접 들어가서 체험하고 실재감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의 리얼리티다.
<나혼자만 레벨업>, <악역의 엔딩은 죽음뿐>, <후궁공략> 등 많은 웹툰, 웹소설들이 차용하고 있는 RPG, MMORPG와 같은 게임시뮬레이션에서 독자들은 자신이 했던 게임을 떠올리며 주인공으로 이입한다.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어의 몰입을 높임으로써 어떻게 실감을 부여할 것인가이다. 독자들은 지금 게임의 경험을 2D와 3D로 체험할 뿐이지만, 실제 그것을 체감할 수 있을 날이 머지않았음을 ‘안다’. 기술은 진보하고 독자들에게 현실보다 더 리얼한 실감을 느끼게하려는 업계와 플랫폼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제, 웹툰과 웹소설이 단순한 스낵컬쳐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이쯤에서 접어두자. 기성세대가 정통소설을 읽어내듯이 Z세대에게 웹툰, 웹소설, 라이트노벨, 게임은 당신이 읽었던 정통소설과 다를바 없다.
서은영
만화연구자 및 만화평론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포럼위원 위원장. 만화로 한국 근대의 문화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천만화대상에서 ‘학술평론상’을 수상했으며,
단행본 『박기정』, 『이정문』, 『주호민』 등을 비롯하여 만화와 웹툰 관련 다수의 논문과 평론을 집필하였다.
최근에는 과학기술로 맞닥뜨린 인류의 전환기를 맞아 만화, 웹툰, 웹소설의 상상력이 새로운 리얼리즘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