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김민섭 작가) 첨부이미지 : 김민섭.png

문화다양성 인터뷰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달의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로 잘 알려진 에세이스트이자 출판기획자 김민섭 작가님을 만나봤습니다.

 

1. 대표님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거나 기획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등이 있고, 만든 책은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 기획한 책은 김동식 소설집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와 작가를 연결하는 북크루라는 스타트업의 대표입니다.

© 김민섭 작가 페이스북

2. 출판기획자, 에세이스트, 강연플랫폼 대표 등 글을 쓰고, 기획하며, 강연하는 등 출판과 관련된 대표적인 N잡러이십니다. 이렇게 동시에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N잡러라는 말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여러 가지의 일을 잘, 성실하게, 해낼 수 없을 거예요. 다만 저는 제가 가져가고자 하는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조금 더 일로 확장하고 싶어요. 쓰는 일, 타인의 좋은 글을 읽고 드러내는 일, 강연을 비롯한 말하는 일, 사실 모두 연동되어 있기에 할 수 있습니다. 잘해 나갈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즐겁게 해 나가고 싶습니다.

 

3. 대표님은 작가일 때, 혹은 기획자일 때 언제 보람과 행복을 느끼시나요?
그리고 자신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작가로서도 기획자로서도, 정말로 마음에 드는 책이 나온다면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작가로서는 저의 글과 삶이 일치된, 그러면서도 사회에 필요한 책이 나왔다는 확신이 있을 때 가장 기쁩니다. <대리사회>나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가 그렇습니다. 기획자로서는 그 기획이 누군가의 잘됨을 만들어냈을 때, 그리고 그의 잘됨이 우리 사회의 잘됨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확신이 있을 때 가장 기쁩니다.

 

3.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통해 우연치않게 책을 내어 작가가 되었고, <대리사회> 등 ‘노동’에 대한 경험을 쓴 글로 독자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대표님에게 그 시간들은 어떤 시간으로 회상되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지방시)를 쓸 때의 저는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를 하면서 맥도날드 물류상하차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습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건강보험도 보장받아야 했으니까요.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러면서 대학 바깥에도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고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든지 내 지도교수가 될 수 있겠다고 믿게 되었어요. 내가 어디에서 어떠한 처지로 무엇을 하고 있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구나. 다만 계속 공부해 나가면서 나의 언어로 나의 노동을 기록해 나갈 수 있다면, 나는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믿음이 함께 찾아왔고요. 그래서 대리운전을 하는 시간들은 실로 즐거웠습니다. 제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믿음이 함께해서요.

 

© (좌)<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우)<대리사회> (출처=교보문고)

 

4. <지방시>와 <대리사회>를 읽으며 위안과 용기를 얻은 독자들이 많습니다. 불안정한 내일과 경계에 선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작가님 특유의 ‘성실함’과 ‘담담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대체 그런 담담함은 어디에서 어떻게 나왔나요?

나의 언어로 나를 기록할 수 있다는 자존감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조금 더 담담하게 바라보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 조금 더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게 됐습니다. 타인의 처지에서 사유하는 연습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경계에서도 담담하게 자신과 타인과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분노보다는 담담하게 나를 드러낼수록 그 글이 사회를 더 변화시킬 수 있다고도 믿습니다.

 

5. 작가님의 책에서 아내와 함께 대리운전을 했던 에피소드들이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작가님의 인생에서 아내와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대리운전을 할 때 아내가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밖으로 함께 나왔습니다. 대리운전 콜을 기다리는 동안 아내가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던 어느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내가 밀떡을 좋아하는지 쌀떡을 좋아하는지 잘 몰랐더라고요. 그런 걸 알게 되는 시간은, 소중하잖아요.
8살 김대흔 씨와 5살 김린 씨는 저의 모든 것입니다. 몇 년 전 바다에 함께 놀러갔다가 “아빠, 여기에 살고 싶어.”하는 말을 해서, 얼마 전 강릉으로 이주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욱 바라는 게 있다면, 그들이 언어로서 자신을 정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정말 바랍니다.

 

6. 일상에서는 보통 하루 중 언제 행복을 느끼시나요? 또 별개의 질문으로 기획이나 집필 등 창작활동을 하실 때, 어디에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으시나요?

저와 닮은 사람들과 서로를 닮은 예쁜 언어로 소통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글을 쓰게 된 날도 그렇고요.
영감과 아이디어는 억지로 떠올리지 않는 편이에요. 그렇게 한 일들은 잘되지 않기도 했고요. 대신 일상을 조금 더 섬세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해요. 그러다가 저를 즐겁게 하는 일이 있으면 거기에 조금 더 진심을 보내고, 그러다 보면 남들이 ‘너 정말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하고 말해 주는 순간이 찾아와요.

 

7. ‘소설가가 꿈이었고,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싶다’ 라는 소망을 품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학에서는 현대소설을 연구하셨다고요. 언젠가 소설을 쓰려는 계획은 없으신가요?

저 사실 올해 세 편의 단편소설을 썼어요. 에픽이라는 문학계간지,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라는 단편소설집, <하늘에서 하리보가 내려와>라는 단편소설집, 이렇게요. 쓰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쓸 기회가 주어지면 계속 쓰려고 합니다.

 

8. 좋아하는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책을 낼 제안을 하려고 정미소라는 출판사를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민섭 대표님은 어떤 작가의, 어떤 글들에 애정과 매력을 느끼는 편이신가요?

개인의 진솔한 고백에서 애정과 매력을 느낍니다. 어느 한 세계 안에 머물던 그들이 그 세계를 인식하고 깨뜨리고 나오려 하는 그 순간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들을 격려하고 사랑할 의무가 있다고까지 여깁니다. 그들의 잘됨이 우리 사회의 잘됨이 될 것을 믿고, 그러한 글들을 찾아 출간하고 싶습니다.   

 

9. 스타트업으로 ‘북크루’라는 구독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은 무엇인가요? 이러한 플랫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작가로서 초청을 받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직전에는 1년 동안 230번이나 독자들과 만났더라고요. 그런데 많은 독자들이 “작가를 만나고 싶지만 방법을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고, 제 주변의 작가들도 독자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자신을 불러주기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책을 읽다가 작가가 만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물음표에 답을 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북크루라는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스타트업을 만들었습니다. 작가들이 쓰는 사람으로서 말하는 사람으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고요. 그런데 만들자마자 코로나가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

10. 생계와 생존을 끊임없이 걱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또 기획자로서 늘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시도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의 일을 도전이라고 생각해 본 일은 별로 없어요. 다만 어떻게든 생계를 영위하고 또 생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일이 잘되든 잘되지 않든 괜찮아요. 저는 아직 젊으니까, 아침에는 맥도날드 물류상하차를 하고 저녁에는 대리운전을 하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영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든, 거기에서 내가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지, 계발의 의미가 아니라 내가 조금 더 선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행복하게 생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행복해지고 있으니까, 그러한 마음이 원동력이 되지 않나 싶어요.

 

© 김민섭

11.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자기만의 언어로 ‘언젠가’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언젠가’ 쓰지 말고 지금 쓰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글을 쓸 만한 여유가 생겼다고 판단되는 그때는, 아마 내 삶을 잘 기록할 수 있는 경계를 벗어난 후일 거예요.

 

12. ‘다양성’이란 말은 경계에 있는, 무엇 하나로는 딱 규정할 수 없는 삶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일 것 같은데요. 대표님께서 혹시 독자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다양성 도서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또 추천하는 이유도 들려주세요.

© 김민섭 작가 페이스북

 
민망하지만, 저의 신간인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양성이 연결되는 하나의 지점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책이에요. 타인에게 무해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그대 고운 사람, 모두를 사랑합니다. 인터뷰를 본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다정하게 남겨둡니다.

 

김민섭
작가. 대학 공부가 사회와 자신을 연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대학을 박차고 나온 경험을 고백한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를 펴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리 운전,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 SF 작가 김동식 발굴을 통해 자신-타인-세상 간 접점을 잇고 사유한 일들로 주목을 받았다. 작가와 독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북크루’를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