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강타한 한국 인디게임의 저력 (김재석 기자) 첨부이미지 : 9.png

 

 

*본 게시물은 ‘K-게임과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흔히 인디게임은 "AAA급 게임과 달리 대형 퍼블리셔의 재정 및 기술 지원 없이 개인 또는 소규모 팀이 만든 비디오게임"으로 정의되곤 한다. 개발 비용을 충당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재정 및 기술 지원' 없는 게임 제작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서 '인디'를 모종의 도전정신으로 분류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그렇지만 구분의 편의를 위하여 인디게임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를 중심에 놓고 논의해 보자.
 
한국에서도 다양한 세대에 걸쳐 인디게임의 개발이 이루어졌다.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하이텔 등 동호회를 거점으로 머드(Multi User Dungeon; PC통신 접속 환경을 통해서 플레이하는 텍스트 기반의 게임)나 격투게임을 만들었던 일군의 개발자들이 있었고, 게임산업이 커진 이후에는 회사에서 습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소규모 개발에 도전한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산업의 규모가 더 커지고 모바일 마켓, 스팀(Steam) 등 디지털 유통망이 확대되면서 인디게임은 '비주류 층만이 향유하던 게임'이라는 인식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열렸다. 밀레니엄 세대가 본격적으로 게임 제작에 뛰어들고, 한국의 대형 게임사와 유관 기관들이 인디게임 개발을 지원하면서 이런 시도는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네오위즈와 스마일게이트 등 한국의 대형 게임사들은 인디게임 유통을 위해 관련 팀을 운영하거나 자체 게임쇼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관련 기관들도 개발비 지원이나 개발공간 임대 등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렇게 2020년대 들어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는 인디게임들이 속속 탄생했다.
 
2020년 출시된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사우스포게임즈)는 2D 액션게임으로 유사 장르의 범람 속에서 200만이 넘는 누적 판매를 달성했다. 조종하는 캐릭터에게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로그라이크(최초의 던전 탐색 RPG인 <Rogue>의 특징과 시스템을 모방하여 만든 게임)' 문법을 계승한 게임으로 머리를 교체해 새로운 캐릭터로 변신한다는 시스템을 도입해 주목받았다.
 
지난해 9월 정식으로 출시된 <산나비>(원더포션)는 퇴역 군인이 가족을 잃고 복수에 나선다는 줄거리로 많은 유저에게 호평을 받은 게임이다. 역시 2D 액션게임으로 사이버펑크 세계관을 도입해 사슬 팔을 뻗어 적과 맞선다는 콘셉트를 도입했다. 이 게임은 일본과 대만의 게임쇼에도 출전해 이용자와 업계의 박수를 받았다.

 

원더포션이 개발하고 네오위즈가 유통하는 액션게임 <산나비>. 작년 출시후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기록했다. (ⓒ 원더포션)

 

위의 두 게임은 스팀 이용자들에게 관심이 많은 고난도의 2D 액션게임이다. 2D 공간을 질주하며 다양한 공격기를 재빠르게 사용하는 직선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로 볼 수 있다. <할로우 나이츠>와 <데드 셀>의 흥행에 힘입어 인기를 확보했는데, 한국에서 만들어진 두 게임은 장르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기믹과 감동적인 스토리 라인을 도입해 차별화를 꾀했고, 결국 시장에서 자기 영역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한국 인디게임 개발자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블루 웬즈데이>(버프 스튜디오)는 리듬게임의 요소를 가미한 내러티브 어드벤처 게임이다. 에반스 시티에서 살아가는 재즈 피아니스트 모리스가 마트의 직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그린다. <편집장>(데카트리 게임즈)은 신문사의 신입 편집장이 되어 1면을 편집하는 만들어내는 내용의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신뢰도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판매 부수를 고루 챙겨야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에게 저널리즘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당신의 안녕을 위하여>(겜성게임즈)는 동물 세계의 법의관이 되어 부검과 해부를 통해 사망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게임이다. 이용자에게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는 의학 용어를 쉽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즈 피아니스트의 삶을 그린 버프 스튜디오의 <블루 웬즈데이>. 게임은 우울한 분위기와 함께 재즈가 흘러나온다. (ⓒ 버프 스튜디오)

 

이러한 인디게임 생태계에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이가 있으니 바로 '소미'다. 그는 <레플리카>와 <리갈 던전>, <더 웨이크>의 '죄책감 3부작'을 내놓으며 평단과 유저의 호평을 두루 받았다. 1인 개발자로서 법치주의와 사법권에 대한 성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편,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의미를 탐구하기도 한다.
 
그의 2024년 신작 <미제사건은 끝내야 하니까>는 텍스트 퍼즐게임으로 늙은 퇴직 경찰 '전경'이 젊은 여경을 만나 흩어진 기억을 재구성해 어린이의 실종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게임이다. '해시태그'를 통해 증언과 정황을 오가며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전할 수 있는 문제해결의 묘에, 감정의 소용돌이를 뒤섞으며 플레이어를 놀라게 한다.
 
이렇듯 한국 인디게임 창작자들은 스팀 등의 디지털 유통망이 펼쳐준 전 세계 시장에서 인기 장르를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플레이어에게 편집장, 피아노 연주자, 법의관, 그리고 경찰의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단언컨대 오늘날 K-인디게임의 저력은 우리 상상 이상이다.

 

<미제사건은 끝나야 하니까>는 게임의 스토리텔링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플레이를 권한다. (ⓒ 소미)

 

 

 

김재석
약력 쌓을 겨를도 없이 게임만 했다.
그러나 손이 느려서 치트키와 에디터의 권능을 사랑한다. 
2018년부터 게임전문지 디스이즈게임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게임제너레이션, 모터스라인 등의 매체에 게임, 메타버스, 게이밍기어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홍대 문화공간의 소멸을 다룬 독립출판물 <굿바이, 에반스라운지>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