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K-영화와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한국 최초의 영화라 불리는 <의리적 구토>(1919)를 필두로, 1920년대에 한국영화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확실히 해방 이전의 한국영화사는 그 형태가 미미했다. 연간 제작편수가 10편 이하로 적기도 했지만, 기존의 영화유산조차 대부분 전쟁으로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50년대를 전후로 상황은 전환되었다. 신파적 색채의 멜로드라마가 ‘눈물의 미학’이라 불리며 대중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소동, 김기영, 이만희, 유현목, 신상옥 등 재능 있는 감독들의 이름이 한국영화사에 대거 등장하게 된다. 그럼에도 당시 해외영화계에서 한국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었다. 몇몇 필름들이 수출되거나 국제영화제에 초대받았지만, 미학적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좌)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의 신문 광고(출처=위키백과), (우) 김기영 감독의 영화<하녀>스틸컷(제공=한국영상자료원)
198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미학은 조금씩 외부세계에 드러났다. ‘회고전’의 형식으로 일부 작가들이 집중적으로 주목받았는데, 그중 임권택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1989년 낭뜨 3대륙 영화제는 <임권택 오마주> 전을 기획해서 그의 영화 12편을 상영했으며, 프랑스의 시네마테크는 그의 영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993년 퐁피두센터는 한국영화 특별전을 기획하며 <서편제>(1993)를 개막작으로 선정했는데, 이 행사에는 무려 85편의 한국영화들이 소개되었다. 4개월간 진행된, 이례적으로 큰 한국영화 특별전이었다.
그럼에도 2000년대 중반까지 우리영화를 바라보는 해외시장의 시선은 다소 관찰자적이었다. 김기덕의 <빈집>(2004)은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했지만 비평적으로 엇갈렸고, 홍상수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는 칸영화제에서 극찬 받았지만 대중적 평가는 그리 뜨겁지 않았다. 물론 그 사이에 한국영화에 대한 미학적인 기대는 서서히 높아졌다. 전세계 시네필들은 한국을 미지의 대륙이자 매력적인 미학의 활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좌)영화<서편제>를 보기 위해 몰려 든 관객들의 모습(제공=한국영상자료원),(우)영화<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스틸컷(제공=CJ엔터테인먼트)
당대 새로운 흐름이 일부의 변주에만 멈췄다면 지금의 K-영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의 한국영화시장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당시의 영화계는 정말이지 다이나믹했다. 특히 곽재용의 <엽기적인 그녀>(2001)의 해외반응은 상상이상이었다. 이 영화는 각국에서 리메이크 됐고, 드라마 등의 다른 장르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2001)과 김지운의 <장화, 홍련>(2002),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2003) 등의 수작들이 연이어 개봉했다. “지역성이 높을수록 보편적이다”라는 장 르누아르의 명언은 정확히 이 시기 한국영화들에게 해당된다. 그렇게 2019년 봉준호의 <기생충>이 전세계를 석권하기까지, 소위 ‘K-’ 시리즈라 불리는 2세대 한류의 영역에서 ‘K-영화’의 자리는 굳건해졌다. 한국영화는 더 이상 세계무대에서 낯선 부류가 아니었다.
(좌)영화<복수는 나의 것>포스터,(우)영화<살인의 추억>포스터 (제공=CJ엔터테인먼트)
2023년 초, 한국문화전문가 오펠리 쉬르쿠프는 프랑스의 국영라디오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녀는 K-컬처가 인기 있는 이유를 4가지의 요소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방탄소년단(BTS)의 활동, 두 번째는 <기생충>(2019)의 성과, 세 번째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021)의 인기, 그리고 네 번째는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2016~2018)의 즐거움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한국문화가 지닌 장르적 다양성에 집중해야 한다. 음악과 영화, 웹툰과 드라마 등 한국의 영향력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리고 “예술이 오락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한국영화 특유의 포스트모던한 미학은 큰 힘을 얻었고, CJ엔터테인먼트가 주도한 <기생충>은 마침내 오스카 최고상을 거머쥐었다.
영화<기생충>스틸컷(제공=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가 존재한지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현재 국경의 바깥에서 K-영화가 행사하는 문화적 헤게모니의 파워를 더 이상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봉쇄시기가 지나간 자리에서 한국영화는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선두에 봉준호의 신작 <미키 17>이 서 있다. 이 영화가 언제 개봉할 것인지를 두고 해외의 인플루언서들은 제각각 의견을 전달했다. 작년에 진행된 할리우드의 더블 파업이 얼마나 이 영화의 갈래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해외의 각종 매체들은 연일 보도했다. 다만 ‘영화관/극장’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여지만을 남긴 채, 한국의 주류 영화들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영화 <미키 17> 티저 스틸 (제공=워너브러더스)
어쩌면 한류는 ‘다양성의 규칙’으로 정리될 수밖에 없는 영역인지도 모른다. 이를 ‘산만함의 규칙’이라 바꾸어 불러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과거에 우리는 ‘신파’라든지 ‘리얼리즘’, 혹은 ‘한’이라고 불렀던 한국영화의 별칭에 쉽게 수긍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더 이상 이러한 작업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저 박찬욱의 영화, 이창동의 영화, 나홍진의 영화, 연상호의 영화라고 연출자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새롭지 않으면 K-영화의 힘은 분명 약화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각각 다른 장르의 작가들이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의 가능성으로 향후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K-컬처라는 소용돌이 속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숨어 있다. 요컨대 한국문화가 살아있는 한, 한국의 영화는 소멸되지 않는다. 대중이 오락에 집중하는 동안 한국영화의 뉴웨이브는 가라앉지 않는다. 그 힘을 믿는다.
이지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고등학교 시절에 프랑스영화에 빠져들어서 학부를 졸업한 뒤 곧바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국내로 돌아와서 다큐멘터리를 몇 편을 만들었고, <씨네21>과 <GQ>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며 평론가로 활동했다. 현재 고양무빙이미지페스티벌의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몇몇 대학교에서 웹스토리텔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