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시대 영화의 미래는?(김도훈 대중문화평론가) 첨부이미지 : 2.png

 

*본 게시물은 ‘K-영화와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극장에서 관객이 사라졌다. 사실 이 문장은 이미 지난 1년간 수많은 매체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코로나 판데믹 동안 줄어든 관객 수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이것은 영화의 죽음을 예견하는 걸까? 영화의 미래가 눈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걸까? 물론 아니다. 영화는 죽지 않는다. 뭔가가 죽는다면 그것은 극장이다. 자, 여기서 이제 조금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영화는 무엇인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영화는 ‘시네마'였다.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만이 영화라고 불릴 자격을 갖고 있었다. 영화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작은 상영관에서 단관 개봉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영화진흥원의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될 가능성이 없었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오스카 시상식이나 칸영화제는 극장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후보에 올리지 않았다. 극장이라는 것은 영화가 영화로 인정받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요건이었다. 적어도 2017년쯤까지는 그랬다.

 

(좌)영화<옥자>포스터 (제공=넷플릭스),(우) 2022년 오스카를 수상한 영화<코다>(제공=애플TV+)

 

2017년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해다. 프랑스 극장협회는 넷플릭스 영화 <옥자>의 출품을 끝까지 반대했다. 결국 경쟁 부문 진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영화제 내내 논쟁은 이어졌다. 칸영화제 첫 상영회에서는 넷플릭스 로고가 등장하자마자 야유가 터져 나왔다. 심사위원장이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극장 상영하지 않는 영화가 수상하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같은 논쟁이 벌어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2019년 OTT 영화들을 오스카 후보에서 제외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영화들이 오스카 후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겨우 몇 년 만에 세상은 바뀌었다. 애플의 OTT 애플 티브이 플러스로만 공개된 영화 <코다>가 2022년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영화가 영화로 존재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더는 극장이라는 요소가 필요하지 않다는 선언이었다.

사실 이런 변화가 가장 빠르게 벌어지고 있는 곳은 할리우드가 아니다. 한국이다. 2021년은 한국 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전기였다. 코로나 판데믹 상황으로 제대로 된 극장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된 대규모 블록버스터들이 OTT 개봉이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승리호>와 <서복>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극장 개봉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마케팅비가 쓰이게 마련이다. 판데믹 기간 중 줄어든 관객을 생각하면 OTT로 공개하고 마케팅비를 보전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넷플릭스는 그 시점을 시작으로 아예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지 않는 오리지널 영화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판데믹 기간 중 <반도>로 흥행 참패를 맛본 연상호 감독, <악녀>로 차세대 액션 감독으로 떠오른 정병길 감독,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마니아층을 거느린 변성현 감독 등 많은 충무로 재능들이 넷플릭스로 몰려갔다.

 

영화<서복>스틸컷(제공=CJ ENM)

 

<독전> 속편도 전편과는 달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만들어졌다. 극장 개봉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자 이런 트렌드는 더 가속화될 조짐이다. 2023년 개봉한 극장용 대자본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는 류승완의 <밀수>와 김성수의 <서울의 봄> 밖에 없다. 한국 영화는 이제 극장을 버리고 OTT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걸까? 이건 혹시 한국 영화의 죽음일까?

 

(좌)영화<밀수>포스터(제공=NEW), (우)영화<서울의 봄>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꼭 그렇지는 않다. 이 글의 처음에 밝혔듯이 영화는 죽지 않는다. 한국영화는 죽지 않는다. 뭔가가 죽는다면 그건 극장일 뿐이다. 극장이 쉽게 죽을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넷플릭스 영화는 아직 질적인 부분에서 극장용 영화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연상호의 <정이>, 정병길의 <카터>, 변성현의 <길복순>을 비롯한 대부분의 넷플릭스 영화가 비평적으로는 죽을 쑤었다. 관객들의 반응도 마뜩잖았다. 넷플릭스는 아직 오래된 충무로 제작사들만큼 영화를 제대로 프로듀싱할 시스템이 없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감독이 넷플릭스로 향하게 될 것은 틀림없다. 창작자들에게 넷플릭스 영화는 거대한 장점이 하나 있는 덕이다. 자신이 만든 작품이 전 세계 수천만 명의 관객에게 동시에 소개된다는 것은 놀라운 장점이다. 나는 <승리호>가 실패작이라 생각하지만 그 영화는 공개 28일 만에 전 세계 2,600만이 넘는 가구가 시청했다.

 

영화<승리호>스틸컷(제공=넷플릭스)

 

가만 생각해 보시라. 넷플릭스 시청자는 한국과 유럽과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에도 동남아시아에도 남미에도 있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관객들이 한국영화를 동시에 지켜보는 시대가 시작됐다. OTT 시대는 한국영화의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지도 모른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을 위해 만드는 한국영화는 예전의 한국영화와는 달라질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문화적 다양성을 과감하게 포용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지금 영화는 극장이라는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국경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 역사에서, 한국영화 역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시기를 마주한 것일지도 모른다. 멋지든 아니든, 신세계가 왔다.

 


김도훈
작가 겸 대중문화평론가. 고양이 키우는 남자.
영화전문지와 패션지의 기자로 경력을 쌓았고 현재는 허핑턴포스트코리아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