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란과 대전환의 한국영화(김영우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 첨부이미지 : 5.png

 

*본 게시물은 ‘K-영화와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K-콘텐츠 전성시대라고 명명되며, 드라마와 대중음악, 그리고 문화 전반에 걸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더욱 커지는 요즘, 한국영화와 영화산업의 위기를 언급하는 보도와 우려들이 커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과연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지금 한국영화의 위기는 극장의 위기가 주요 요인 중 하나라고 보는 의견이 많다. 관객들이 이전만큼 극장을 찾지 않다는 말이다. 구체적인 수치로 보면, 2023년 매출액 기준으로는 팬데믹 이전 평균의 3분의 2 수준인 69.0% 정도까지 회복했고, 전체 관객 수는 팬데믹 이전 평균관객 수의 56.6% 수준까지 회복한 걸로 영화진흥위원회 결산자료는 보고하고 있다. 회복이 더딘 이유로는, 팬데믹 시기 큰 폭으로 오른 영화티켓 가격에 대한 관객의 심리적 저항이 하나의 원인이라는 의견,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내세워 파급력과 성장세를 보이며 한국영화산업의 주요한 플레이어로 안착한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와 이에 맞서는 웨이브, 티빙과 같은 국내 OTT의 경쟁력이 극장의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의견 등 나름의 진단과 처방을 담은 분석과 판단이 제기되고 있다.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동한 결과이겠지만, 중요한 점은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극장개봉에서 부가판권시장으로 넘어가는 전통적인 영화산업의 선순환방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시장, 그리고 선순환 구조를 지탱하는 주요한 동력이었던 극장매출이 완연한 회복세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한국영화계의 전반적인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신생대의 삶> 관객과의 대화 ⓒ서울독립영화제

 

한국영화의 위기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국내 영화제에 대한 논의들도 다양하게 제기되었다. 특히 후발주자로 출발한 강릉국제영화제와 평창국제영화제가 중단되면서, 영화제라는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대두했다. 논의를 다 소개할 순 없지만, 논의의 근간에는 작년 28회를 맞이했던 부산국제영화제를 필두로, 30년 남짓 대표적인 영화축제로 자리매김하며 영화문화를 주도해 온 영화제라는 형식이 지금 2023년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그리고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이러한 논의들이 점점 수면 위로 등장했고,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플랫폼이 기존의 질서와 시장을 재편하는 게임체인저로 등장하면서, 의문은 이내 마주하는 현실이 되었다. 즉, 영화제 역시 변화하는 시대가 제시하는 질문에 해답을 마련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뚜렷한 위기의 징후에도 불구하고, 2023년의 국내 영화제들은 빠르게 예년의 모습을 찾아갔다. 지난 팬데믹 시기, 부산, 전주, 부천 등의 주요 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와 커뮤니티, 그리고 지역에 기반한 영화제들은 관객참여의 제한과 규모 축소를 감내하면서 온라인 스크리닝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중단 없이 영화제를 이어가며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23년 엔데믹 이후, 오프라인 행사나 이벤트에 관람객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현상의 일환일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 영화제는 예년 수준의 회복을 넘어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의 숫자와 참여도는 오히려 더 증가한 곳이 많다는 점이 흥미롭다. 외형적인 규모나 화려함을 양보하고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위해 부대행사나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영화제들이 많았는데, 그러자 영화제 기간 중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증가하면서 오히려 영화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창작자와 관객이 직접 만나는 온전한 경험이야말로 경험 위주의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 취향과도 닿는 지점이 있어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2023년의 완연한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영화제들이 지닌 고민은 여전하다. 외부적으로는 한국영화의 위기, 대혼돈의 시대로 들어선 한국영화산업의 영향으로부터 국내 영화제들도 자유로울 순 없고, 안으로는 변화하는 시대와 변화하는 관객들을 따라 시스템 전체를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문제의식은 공유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이나 방향이 보이지 않는 시기. 이럴 때 중요한 점은, 해답 찾기가 아니라 질문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넘쳐나는 콘텐츠의 시대, 그리고 어디서든 액세스가 가능한 플랫폼의 시대, 영화제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경쟁력 있는 공간일까? 다시 묻자면, 영화제를 어떻게 그런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암중모색의 시기지만, 지금 영화제 기획자와 운영자들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우선수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변화하는 관객이다. 영민하고 트렌드에 민감한 새로운 관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팬덤 중심의 소비형태, N차 관람이라는 유행, 경험 중심의 참여 등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관객들. 2023년 한국사회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며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이 이 지점을 잘 보여주었다. <스즈메의 문단속>과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충성도 높은 관객들이 N차 관람을 이어가며 일종의 팬덤이 관람문화와 결합하는 또 다른 사례로 남게 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징후처럼 보인다.

 

영화<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서울독립영화제

 

지금 관객들은 취향과 지역 기반, 그리고 온·오프라인을 오가는 느슨한 형태의 커뮤니티 기반으로 움직이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커뮤니티 기반의 새로운 구상은 해외에서도 그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보유한 웨스 앤더슨 감독이 주도하고 에단 호크 배우 등이 참여하는 디지털 구독 기반 필름 클럽 <갤러리 Gallerie>를 오픈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씨네필과 영화팬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유사하게는 최근 전설의 영화지 <키노> 100호 발간을 첫 번째 프로젝트로 설정하며 본격적으로 홍보를 시작한 영화찐팬 커뮤니티 MMZ도 경험과 참여를 중시하는 관객들을 모아 취향 기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추세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 과거 필름 클럽이나 필름 소사이어티, 또는 인터넷 기반의 영화공동체의 21세기 버전 또는 ‘오래된 미래’ 마냥 익숙한 레트로한 감성이다.

영화제의 존재 증명은 다양성에 있다. 이건 단지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이 다양해야 한다는 말에 그치지 않는다. 변화하는 관객들의 취향과 성향을 따라 진화하면서도, 주류영화와 독립영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창작자와 관객 사이를 매개하며, 별처럼 빛나는 영화들 사이에서 관객들을 위한 나침반의 기능을 해야 하는 고차방정식이다. 장을 펼치면 손님들이 모이는 시대는 지나갔다. 팬덤과 공통 취향, 그리고 지역에 기반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는 걸 선호하는 관객을 어떻게 설득하고 접점을 만들어 내는 가에 영화제의 미래가 달려 있다.

 

 

김영우
럿거스대학교에서 영상예술과 TV를 전공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 프로그래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담당했다. 현재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 및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으며, 레드씨국제영화제, 로카르노영화제,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영국 셰필드 다큐멘터리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 프로그램 컨설턴트 및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