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30여 년간 다양성영화를 수입하고 배급해온 김난숙 대표님을 만나보았습니다.
1. 안녕하세요. 김난숙 대표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국내외 다양한 독립영화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수입/배급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업계에서 일한지는 어느덧 30년 정도 되었네요. 요즘 문득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바람이 있다면 천천히 오래 하고 싶습니다.
2. 영화수입/배급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걸어온 이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영화 수입업무는 1994년 대기업 영상사업단의 비디오사업부에서 판권 관리 업무를 하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화채널 사업부로 지원했기 때문에 영화채널 마케팅이나 제작일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발령받은 비디오사업부에서 비디오 유통과 판권 업무를 배우게 되면서 현재의 수입/배급 업무의 경력이 커리어가 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제 뜻대로 되지 않은 결과라고 해야겠네요. 직업은 생계 해결이 우선이라고 머리로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기업에서의 안정적인(?) 시작과는 달리 현재는 ‘좋아하는 일’을 어떻게든 계속 하고 싶다는 막무가내적 의지가 제 커리어의 동력입니다. 저는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의 암전-블랙아웃을 좋아합니다. 찰나 같은 어둠의 시간에 경험하는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의 순간을 매번 새롭게 기대합니다. 어둠을 뚫고 스크린 위로 쏟아지는 빛들의 마법 같은 순간들에 여전히 매혹됩니다. 극장에서 영화 보기를 즐거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영화사 진진의 색깔을 보여주는 대표작 몇 개만 꼽아주신다면? 이 작품을 꼽은 기준은 무엇인가요?
ⓒ영화사진
영화사진진의 색깔을 보여주기 위해서 영화를 수입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매번 영화 구매는 나름의 경제적인 손익계산을 따져가면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 철저한 손익보다는 그때 그때의 운과 상황이 많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숭아트센터에서 분사한 영화사진진의 첫 영화가 된 켄 로치 감독의 <보리 밭을 흔드는 바람>과 어려운 고비를 넘고 회사 10주년을 감사하게 해준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현재 개봉중인 <나의 올드오크>가 우선 생각납니다. 자이니치 코리안(재일 한국-조선인들)들의 아픈 역사를 알게 해 준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와 제주 사람들의 목소리로 만든 제주 4.3 영화인 <지슬> 그리고 12개관에서 24만명을 동원한 영화 <원스>도 생각나네요. 모두 저의 좁은 경계를 확장 시켜준 새로운 이정표 같은 영화들 입니다.
4.‘다양성영화’란 무엇인가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다양성 영화의 기준과 정의가 궁금합니다.
다양성영화란, 상업영화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나요? 다양성영화 중에서도 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는 각각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합니다.
엉뚱한 답변 같습니다만 저는 다양성이라는 단어 자체에 가끔 어색함과 서글픔을 느낍니다. 나와 당신의 취향과 관점은 존재의 방식만큼이나 이미 다양합니다. 그런데 뭔가 의도적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야 할 정도로 문화와 생태 환경이 점점 더 획일화되고 있다는 위협과 위험처럼 느껴집니다.
내 생각과는 좀 다른 이야기, 평소에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웃, 혹은 그 이웃의 속사정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 다양성영화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입장에서는 다양성 영화와 상업영화를 굳이 구분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영화 산업내에서는 정부 지원책과 손익분기점을 따지고 시장을 예측하는 차원에서 일정 제작비 이상과 이하를 저예산 혹은 다양성 영화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화의 경우, 국내 시장 점유율 3% 이하 국가의 영화는 해당국가에서 박스오피스 1등을 했던 영화라도 다양성영화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또한 대자본의 스튜디오 시스템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영화가 해외에서는 거대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독립영화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안정적이라고 예측되는 관습적인 소재와 주제보다는 창작자가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어 부쳤을 때, 한편의 새롭고 독특한 예술영화가 탄생하기도 하구요. 이렇다하고 딱히 정리된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높은 예산의 스튜디오 영화에서 작품성 있는 예술영화가 나오기도 하니까요. 그야말로 사전적으로 딱히 정해진 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큐멘터리는 말 그대로 픽션이 아닌 논픽션의 모든 기록들을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지요.
5. “영화는 관객을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하셨는데요. 최근 영화제나 다양성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의 모습에서 이전과 달라진 변화가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해 잠깐 생각해 봤습니다. 지난 주에 극장에서 만난 관객과 지난 달에 만난 관객들 그리고 작년 5월 다르덴 형제 감독들을 보러 극장에 왔던 관객들까지 기억해 보고 있습니다. 저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극장에 오는 관객들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상업영화 상영관들은 텅텅 비어 있는데도 다양성 영화 관객들의 수는 존재했습니다. 다양성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영화는 포기할 수 없는 일상인 셈이지요. 아니 영화라는 일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남보다 영화를 한편 더 보는 다양성영화 관객들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최근 영화제나 영화관에 다양성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은 그 느낌과 만족을 소유하기 위해 영화 관련 굿즈에 집중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의 소재나 주제에 따른 어떤 인물이나 이슈에 대해서 동의하고 응원하고 있다면 ‘영혼 보내기 티켓 구매’ 같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지지를 실천하면서 ‘나 여기 있다’라는 존재감과 연대의식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6. 변화된 플랫폼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다양성영화를 수입하고 배급하는 데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다운로드에서 IPTV로, OTT로 지금은 그야말로 ‘대세 OTT’ 혹은 넷플릭스의 시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영화관에서 보는 극영화보다도 OTT오리지날이 회사 동료와 친구들 사이에서 즐거운 스몰톡이 되는 시절입니다.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둔 영화 제작자들에겐 심란하고 수상한 시절인 셈이지요. 저희도 TV 시리즈 구매도 검토해 봤습니다. 그러나 구매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플랫폼을 통해 유명해지거나 새롭게 부각된 트렌드나 배우들은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만 그게 영화구매로 이어지기는 매번 쉽지는 않습니다. 또 워낙 재미있는 OTT드라마가 많아서 관객입장에서 영화관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가 어떤 영화일까를 숙제처럼 고민하고 있습니다.
7. 지난해 개봉한 <토리와 로키타> 등 유독 영화사 진진에서 공동체나 소수자에 대한 작품들을 많이 소개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켄 로치 3부작 ⓒ영화사진
없습니다. 단지 신뢰하는 영화감독이나 아티스트들의 신작이 우리 시대에 당면한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8. 다양성영화와 문화다양성은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몇몇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시네아스트들도 많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영화 한 편이 여러분과 나라는 사회구성원들의 편견과 상식을 바꾸거나 방향을 바꿔 주기도 합니다. 코로나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개봉했던 <나는 보리>라는 작품과
<학교 가는 길>이라는 다큐멘터리가 그 예인 것 같습니다. 청각장애인 부모와 역시 청각장애인인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 소녀 보리는 가족 간의 친밀감을 느끼기 위해 자신도 청력을 잃고 싶어합니다.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에 대한 이야기로 김진유 감독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자신의 고향인 강릉에서 완성한 로컬영화의 대표작 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김진유 감독의 제안으로 영화를 볼 대상을 장애인-농인과 비장애인-청인이 함께 보는 수어 통역 시사회를 준비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일반 관객들에겐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는 낯선 관람이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함께 본 농인과 청인 관객 모두의 감동과 공감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강릉 바다에서 날아온 이 보석 같은 이야기는 부산국제영화제 한국감독조합상, 감독상 2관왕, 정동진영화제 대상, 독일 슈링겔국제영화제 관객상 등을 받으면서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편견도 바꾸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중단하지 않고 담담하게 잘 담아내 준 김진유 감독의 영화 ‘나는 보리’는 지금도 다양한 곳에서 관객과 만나며, 그 자체가 문화다양성의 중요한 문화콘텐츠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나는 보리>시사회 ⓒ영화사진진
영화 <학교 가는 길>포스터 ⓒ영화사진
다큐멘터리 <학교 가는 길>은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발달장애아 엄마들의 긴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지역주민과 장애인 부모들과의 갈등만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김정인 감독은 모두들 불편해하는 기피시설이 유독 많은 강서지역민의 아픈 뒷얘기들과 정서까지 잘 담아냈습니다. ‘ 님비현상이 그저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고 뉴스에서 보던 장애인 엄마들의 투쟁이 곱게만 보이지 않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Annamom’) ‘라는 리뷰가 이어지며,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의 많은 곳에서 꼭 필요한 특수학교 건립을 위한 모색과 논의의 물꼬를 트는 단체 상영 의뢰로 이어졌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듣는 자리, 내 생각이 조금은 부족한 것 일 수도 있다는 양보와 질문과 숙제를 던져주는 영화들이 문화다양성의 건강한 지도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9. 지속가능하게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어디에서 희망을 얻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을 듣고 보니, 그렇습니다. 늘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웃음)
내일도, 내년에도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 답과 방향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아까 서두에 말했던 것처럼 막무가내 정신으로 버티자, 한번 더 버텨보자 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영화관을 여전히 찾고 있는 모든 세대에게서 희망을 보려고 합니다. 교통편이 좋지도 않은 극장에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여행처럼 찾아온 관객들을 확인할 때 뭔가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10. OTT시대, 그리고 사유보다는 짧은 것을 선호하는 시대.
다양성영화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나요? 다양성영화를 만나기 위해 관객들은 여전히 영화제나 극장을 찾을까요?
숏폼과 비대면 선호의 시절에 오히려 극장이나 영화제라는 공간에서의 유의미한 만남을 더 찾게 되지 않을까요? 감독 및 창작자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자리 – 직접 소통이 이루어지는 자리는 오히려 꾸준히 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웃음)
김난숙
영화 수입/배급업 일을 꽤 오래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택한 댓가와 열매가 달콤쌉싸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