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K-드라마와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2023년 9월에 공개한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은 지난 1월 7일 열린 골든글로브상 TV 미니시리즈 부문에서 작품상과 남우, 여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14일 열린 에미상에서는 스티븐 연의 남우주연상을 비롯하여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했다. 2020년 <오징어 게임>의 이정재에 이어, 아시아계 배우로 스티븐 연이 두 번째로 주연상을 받았다.
바야흐로 K-드라마 열풍이다. <성난 사람들(Beef)>은 한국계 미국인이 만든 미국 작품이지만, ‘한국’이라는 키워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작품이다. 재미교포를 주인공으로 이민 국가인 미국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그린 사회드라마, 코미디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의 <성난 사람들>의 스티븐 연(왼쪽부터)과 이성진 감독, 앨리 웡 ⓒAFP연합뉴스
2022년 애플TV플러스에서 공개한 <파친코>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발표하여 호평받은 소설을 각색했다. 재미교포인 이민진 작가는, 원작을 유지한다는 애플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각본 작업에도 일부 참여했다. <파친코>의 프로듀서이며 각본에도 참여한 수 휴는 한국계다. 프로듀서 테레사 강 로우와 연출을 맡은 코코나다와 저스틴 전도 한국계다. 프로듀서 세바스찬 리는 한국과 미국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 리메이크작인 <굿 닥터>를 제작했다. <파친코>는 단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 드라마를 넘어, 한국을 잘 알고 있는 제작진이 만들어낸 글로벌 드라마이며, K-드라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성난 사람들>과 <파친코>가 미국에서 제작될 수 있었던 이유는, K-드라마의 세계적인 인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한류가 인기를 끌고, 넷플릭스의 조선 좀비 <킹덤> 등이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후 K-드라마의 폭발적인 반응은 2021년 9월 이정재 주연, 황동혁 연출의 <오징어 게임>으로 시작했다.
<오징어 게임>은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세상의 절망과 분노를 영상에 담았고, 데스 게임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감각적으로 그려내 대성공을 거두며 에미상까지 받았다.
<피지컬 100>의 포스터 ⓒYTN뉴스
10여 년 전 기획된 <오징어 게임>은 한국에서 대중적인 소재와 장르가 아니었기에 제작될 수 없었지만, 넷플릭스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2천년대부터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 산업 전반이 시스템적으로 대단히 발전했고, 주로 일본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류’가 퍼져 나가면서 해외 시장에 대한 시각도 넓어졌다. 마침내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 영상의 세계화는 정점에 달했다. <기생충>은 봉준호라는 탁월한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작품이고, <오징어 게임>은 숙련된 제작진이 함께 만들어낸 브랜드 상품이다. 두 작품 모두 지금 한국의 영상 콘텐츠 산업이 만들어낸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오징어 게임> 다음에는 <지옥>, <스위트 홈>, <지금 우리 학교는>, <디피>, <마스크걸> 등 액션과 판타지, 범죄물 등 장르물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스>, <갯마을 차차차> 등의 멜로드라마와 <나는 솔로>, <피지컬 100> 등 예능도 화제를 모았다. 하나의 장르만 인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K-드라마 나아가 K-컬처 전체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에 마음껏 도전하게 만들어준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해외의 플랫폼을 통해 한국의 뛰어난 콘텐츠 제작 역량이 더해져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성난 사람들(Beef)> 등 K-드라마의 세계적인 인기는 할리우드 일변도였던 대중문화의 흐름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에 흑인과 아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을 주인공으로 기용하고, 고전 동화의 실사 주인공에도 유색 인종을 출연시키는 등 많은 시도를 하고 있었다. 때로는 지나친 편향도 있지만 백인 일색으로 획일적이었던 대중문화의 변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시도였다.
넷플릭스는 출범과 함께 로컬 콘텐츠의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도와 중국 등 인구가 많은 지역만이 아니라 벨기에, 폴란드, 태국, 브라질 등 세계 각국의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하여 세계에 스트리밍했다. 그중에서 할리우드의 1/3도 안 되는 제작비로 높은 퀄리티의 인기작을 만들어내는 한국이 현재로서는 최종 승자가 되었다. 한국의 영상 콘텐츠는 새롭고 강렬하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빠른 시간에 많은 것들이 변화해 온 한국은 콘텐츠에서도 늘 새로운 것을 찾아 치열하게 경쟁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단지 한국 콘텐츠를 수출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K-드라마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 <엑스오, 키티>,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등 한국계가 주인공이거나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 누구나 한국 관련의 콘텐츠를 만들고 보는 시대가 되었다.
<K-드라마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의 포스터 ⓒTMDB
그러나 K-드라마가 마냥 호시절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해외에서 인기인 것과는 별개로 국내 드라마 제작 사정은 좋지 않다. 여전히 디즈니플러스의 <무빙>, 쿠팡플레이의 <소년시대>, 웨이브의 <박하경 여행기> 등 인기작이 나오고 있지만, OTT를 타겟으로 하는 드라마들의 제작 편수가 줄어들고 공중파의 드라마 제작은 고사 상태다. 90년대 아시아를 휩쓸었던 일본 드라마도 2000년대 들어서며 주춤하여 지금은 K-드라마에 완전히 밀리고 있다. K-드라마의 미래도 결코 장담할 수 없다. 호시절인 지금 K-드라마가 새로운 이야기와 창의적인 인재 발굴에 더욱 힘써야 하는 이유다.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 소설, 만화를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