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K-웹툰과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스마트폰 속 웹툰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전에 만화를 읽기 위해서는 만화책방이나 만화대여점을 방문하여 종이책으로 출판된 만화를 읽었지만 이제는 터치 몇 번으로 웹툰 플랫폼에 접속하여 손쉽게 웹툰을 읽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백 편의 웹툰이 플랫폼에 업로드되어 독자의 선택을 기다린다. 자신이 원하는 웹툰을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읽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
많은 사람이 웹툰 속 먼치킨 캐릭터가 혹은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진 정보를 활용하여 이전의 실패한 삶을 회복하고 최상의 선택이 가능하다)이 가져다주는 사이다 서사를 소비한다. 물론 이것이 웹툰의 전부는 아니다. 상업적으로 유행하는 웹툰들 속에서도 잘 찾아보면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다룬 웹툰도 있다. 문화다양성은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치를 지향한다. K-웹툰은 문화다양성을 어떻게 반영하는가? 이 글에서는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담은 웹툰 세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도롱이(사이사 / 네이버웹툰)
웹툰 <도롱이>는 용이 되고 싶은 이무기 ‘도롱이’와 인간의 만남을 담았다. 신화에서 용은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영험한 존재이지만 웹툰 <도롱이>에서는 그렇지 않다. 권삼복네 백정 가문은 이무기들이 승천하기 위해 모여드는 산을 터전으로 삼았다. 덫을 놓아 이무기를 사로잡고, 성대를 제거한 후 사육하거나 만병통치약의 재료로 판다. 승천하려는 이무기를 모조리 잡은 결과 세상에는 용이 사라졌다. 용이 비를 내리지 않으니 사람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용이 되어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려고 하는 이무기의 선한 의도는 이무기를 재화의 도구로 삼는 인간의 욕심과 대비된다.
관계는 상대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설정된다. 도롱이를 만나기 전 권삼복에게 이무기는 단순히 가축이다. 말을 하지 못하도록 성대를 제거하여 일말의 죄책감도 덜어낸다. 우리 역시 소나 돼지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않기 때문에 고기를 먹으면서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다. 말을 못하는 이무기는 사육이나 도축의 대상이지 관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권삼복이 말하는 이무기 도롱이를 가축이 아닌 관계의 상대로 ‘인식’하고 대화할 때 비로소 도롱이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웹툰 <도롱이>는 인간과 이무기가 타자를 인식하고 관계를 맺으며 느끼는 감정에 대하여, 그리고 폭력을 동반한 피해자의 복수와 분노는 어느 범위까지 정당한가 등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네이버웹툰
나빌레라(Hun, 지민 / 카카오웹툰)
웹툰 <나빌레라>는 70세 노인 덕출이 발레를 통해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덕출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어려서부터 마음 한구석에 담아왔던 발레를 하고 싶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예상대로 가족들은 ‘동네 사람들 보기에 부끄러우니 운동을 하고 싶으면 발레 대신 등산이나 에어로빅을 하시라’는 반응을 보이며 반대한다. 여기에서 우리 사회가 가진 ‘남자’, 그리고 ‘노인’이 발레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현실의 편견이 재현된다. 발레를 배우기 위해 발레단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발레단 식구들은 ‘어르신이 정말 발레를 할 수 있겠냐’고 걱정하지만 여기에서도 발레가 격한 활동임을 감안하더라도 ‘노인은 발레를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작동한다. 나이로 인한 몸의 한계와 사회적 편견을 깨고 덕출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이겨나가는 덕출의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에게 웹툰 <나빌레라>를 추천한다.
ⓒ카카오페이지,카카오웹툰
정년이(서이레, 나몬 / 네이버웹툰)
여성국극은 1950년대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은 한국식 종합 뮤지컬이다. 여성이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모두 연기한다. 노래, 춤, 연기에 자신 있는 최고의 여성만이 국극 무대에 오를 자격을 갖는다. 웹툰 <정년이>는 목포 출신 시골 소녀 윤정년이 펼치는 좌충우돌 여성국극 이야기다. 가난한 가정형편이 지긋지긋한 정년은 국극 배우가 되면 많은 돈을 번다는 말을 듣고 매란국극단에 입단한다. 국극단에 입단한다고 꼭 무대에 서는 것은 아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연습해도 대사는커녕 무대에 병풍처럼 서는 연구생이 한둘이 아니다. 마치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기 위해 오랫동안 소속사에서 노력하는 연습생과 같다. 동료 연구생들은 자신의 배역을 차지하려는 정년의 등장에 호의적이지 않다. 정년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국극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웹툰 <정년이>는 당시 여성에 대한 편협한 인식에 맞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여성의 주체성과 여성 간의 연대를 드러낸다. 웹툰 <정년이>는 2023년 국립창극단의 창극 <정년이>로 제작되어 대중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네이버웹툰
사람들이 웹툰에서 기대하는 사이다를 문화다양성 웹툰에서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화다양성을 다룬 웹툰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하는 모습,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치 등이 담겨있다. 그런 가치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범람하는 웹툰의 홍수 속에서 충분히 문화다양성 웹툰을 읽을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최기현
만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팀 과장.
만화에 담긴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글을 쓴다. 주요 평론 글로는 「만화 산업 중장기 계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들(문화다양성 관점을 중심으로)」, 「IP 확장 유행의 시대, 콘텐츠의 장르 다양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저서로는 『문화다양성 추천만화 vol.1』(공저)이 있다.